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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다운 사람들끼리 원문보기 글쓴이: 삿갓
[최보식의언론=박주현 객원논설위원(재담 엔터테인먼트 대표)]
MBC 화면 캡처
인터넷 커뮤니티를 떠돌던 얄팍한 밈 하나가 있었다. 이른바 '나만 빼고'.
타인에게는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자신의 허물 앞에서는 한없이 관대해지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독한 이중성을 조롱하던 네티즌들의 뼈 있는 농담이었다. 우리는 그저 그것을 권력자의 '내로남불'을 비꼬는 시니컬한 유머쯤으로 소비했다.
그러나 어제 공개된 짧은 투표소 영상은, 그 우스갯 소리가 농담이 아니라 한 인간의 내면을 완벽하게 지배하는 서늘한 진심이자 통치 철학이었음을 끔찍하게 증명해 냈다.
민주당은 별거 아닌 거 가지고 왜 이리 호들갑이냐며 무시하려들지만 이게 과연 그들 말대로 별 거 아닐까?
문제의 대화는 단 두 마디였다. 기표소 밖으로 투표지를 들고나온 이재명을 향해 선관위 직원이 다급히 제지했다.
"보여주시면 안 되고요."
법과 원칙이 작동하는 공화국에서 지극히 당연하고 상식적인 국가 기관의 통제였다. 그러나 그 금계 앞을 가로막은 직원을 향해, 이재명은 손짓하며 툭 내뱉었다.
"아 걱정말고... 난 상관없으니까."
이 짧은 대화는 단순히 무례한 해프닝이 아니다. 민주 공화국의 궤도를 완전히 이탈해버린 초법적 권력자의 서늘한 자백이다.
"이리 와봐요"라는 호명부터 불길하다. 어떤 국민도 투표사무원을 저렇게 손짓으로 오라가라 하지 않는다. 국가의 선거를 관리하는 헌법 기관조차 자신의 심부름을 처리하는 하수인으로 여기는 뼛속 깊은 특권 의식이 농축되어 있다.
더욱 치명적인 것은 "난 상관없으니까"라는 덧붙임이다. 이 일곱 글자는 대한민국의 정치적 수준을 1215년 영국의 마그나카르타(대헌장) 제정 이전의 중세 암흑기로 전락시켜 버린 끔찍한 퇴행의 선언이다.
인류는 피 흘리는 투쟁의 역사 끝에 마그나카르타를 탄생시켰고, 아무리 무소불위의 권력을 쥔 '왕조차도 법 아래에 있다'는 거대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그것이 근대 법치주의와 공화국을 지탱하는 뼈대다.
공화국 체제에서 법의 통제에 '상관없는' 예외적인 인간은 단 한 명도 존재할 수 없다. 룰을 초월하여 "나는 상관없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자는 역사상 오직 절대군주뿐이었다.
그런데 이재명 대통령은 대낮의 투표소에서 천연덕스럽게 선언했다. 공직선거법이 무엇을 징벌하든 나 이재명은 예외라는 거대한 오만. 내가 곧 법인데, 감히 종잇조각에 적힌 낡은 규정 따위가 내 행동을 제약할 수 있느냐는 뜻이다.
네티즌들이 비웃던 '나만 빼고'라는 그 조롱 섞인 밈이, 800년의 인류 법치사를 일거에 무너뜨리는 가짜 군주의 입을 통해 완벽한 실화로 완성된 순간이다.
우리는 지금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성스러운 공간에서, 스스로를 근대를 거슬러 중세의 왕이라 확신하는 기괴한 권력자의 행차를 목도했다. 법은 타인을 탄압할 때 들이미는 흉기일 뿐, 자신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저 지독한 예외주의.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도 이토록 천연덕스럽게 공화국의 근간을 뭉개는 자가, 밀실에서 권력의 칼자루를 온전히 쥐었을 때 이 나라의 법치와 시민의 일상을 어떻게 유린할 것인가.
마그나카르타 이전의 야만 시대로 회귀한 절대군주의 귀환. 투표소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난 상관없으니까"라는 저 서늘한 한마디 앞에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공화정은 지금 참담하게 능멸당하고 있다.
PS: 독자 여러분은 행여라도 누군가 조롱이나 알량한 공명심으로 투표소에서 '이재명 따라 하기' 퍼포먼스를 벌일 생각은 꿈에도 하지 마라.
기표소 밖으로 투표지를 들고나와 선관위 직원을 향해 "이리 와봐, 이재명은 되고 나는 왜 안 되냐"며 호통을 치며 그들의 이중잣대를 꼬집고 싶은 유혹이 들 수 있다. 특히 일부 맹목적인 우파 커뮤니티 등에서 이런 치기 어린 퍼포먼스를 통쾌한 무용담처럼 기획하고 공유할까 봐 심히 우려스럽다.
단언컨대, 그런 행동은 이재명 대통령에게 타격을 주거나 선관위를 멋지게 꼽주는 사이다 복수극이 아니다. 그저 당신의 가장 치명적인 무기인 '소중한 한 표'를 허공에 찢어 날리는 가장 멍청한 자해극일 뿐이다.
분노를 배설하는 방식은 언제나 차갑고 정교해야 한다. 얄팍한 흉내 내기로 스스로 흠집을 잡히는 미련한 짓은 접어두고, 가장 떳떳하고 완벽하게 룰을 지키며 투표함에 표를 꽂아 넣자. 법 위에 군림하려는 초법적 권력과 그 발밑에 엎드린 비굴한 선관위를 동시에 심판하는 가장 잔혹하고도 유효한 무기는, 어설픈 퍼포먼스가 아니라 침묵 속에서 건조하게 행사된 '유효표' 한 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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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정다운 사람들끼리 원문보기 글쓴이: 삿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