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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너……라는 말 속에는 슬픔도 따뜻해지는 밥상 이 살고 너……라는 말 속에는 눈곱 낀 그믐달도 살고 너……라는 말 속에는 밤마다 새 떼를 불러 모으는 창호지문도 살고 너……라는 말 속에는 물구나무 선 채 창밖을 몰래 기웃거리는 나팔꽃도 살고 너……라는 말 속에는 스스로 등 떠밀어 희미해지 는 바람도 살고 너……라는 말 속에는 진즉이 버렸 어야 아름다웠을 추억도 살고 너……라는 말 속에 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약속 그래서 더욱 외로운 촛불도 살고 너……라는 말 속에는 죽음도 두렵지 않은 불멸의 그리움이 살고 너……라는 말 속에는 평생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을 안고 괴로워하는 상처 도 살고 너……라는 벼락을 맞은 뼈만 남은 그림자도 살고
- 고영
밤은 깊어 시간은 새로 두 시를 훌쩍 넘어버렸다. 아무리 뒤적거려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들을 찾아 헤맨다. 찾아 헤매는 것보다는 차라리 시를 써야 옳지 않은지, 창밖을 내다본다, 흰 눈이 또 아침을 더디게 열지는 않을지, 그 폭설에 걸음은 늦춰지지 않을지. 내리지도 않는 눈을 상상하며 내일의 고단함을 먼저 끌어당겨본다. 폭설이라든가 서설이라든가, 혹은 눈 속의 당나귀 울음소리 들릴 것 같은 시를 찾았으나 빈 손이었다. 아무것도 나와는 연관이 없는 듯 하였으니 길은 또 멈춰서버렸다.
페어 러브, 혼자 사는 오십대의 남자가 처음 사랑을 하는 이야기였다. 아니 오십대의 남자를 사랑하는 이십대의 여자에게도 아마 처음이었던 사랑이었겠지. 영화사에서 일하는 후배가 모처럼 시사회 초대를 한다고 게시판을 채웠다. 일이 끝나고 도심 한복판으로 달려 나가 오래된 극장 안으로 또 들어섰다. 영화가 시작되기 전에 감독과 배우 안성기씨의 무대 인사가 있었다. 처음 보는 감독이었는데 그의 얼굴을 보니 영화가 어떤 빛깔일지 알 수 있었다. 안성기씨의 모습은 스크린 속 보다 조금 더 단아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그들의 길지 않은 인사가 끝나고 어두운 스크린 위로 필름이 투사되었다. 저예산으로 영화를 만들겠다 마음 먹고 준비했는데 투자자가 없어서 삼년이라는 세월을 기다렸다는 영화, 필름이 스크린에 투사되었어도 여전히 어둡고 무거운 화면이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 낯익지 않은 배우들, 우리 곁에서 흔하디흔하게 보는 배우들의 모습이 리얼했다. 작은 가게 안을 차지하고 앉은 두 명의 직원과 늙은 노총각인 사장이 전부인 사무실은 점방 같았다. 툭하면 쳐들어와서 같이 밥을 먹거나 술판을 벌이는 후배인지 손님인지 알 수 없는 인물까지 친근하다. 그 점방에 모처럼 등장한 젊은 아가씨에게 촉각을 내세우는 사람들의 모습 그대로 이웃이었다. 어눌한 듯한 대사가 툭툭 던져질 때마다 웃음을 뱉어 내게 하는 영화였다. 그래, 사랑이 그런 것이지, 처음에는 설핏 온갖 사람들의 눈길을 두려워하다가도 불붙기만 하면 눈에 보이는 것은 서로의 존재밖에는 없게 되는 것은 아무리 나이가 많아서 시작한 사랑이어도 같은 거겠지. 날은 여전히 추웠고 특히나 오래된 그 극장 안은 불기 하나 없어 점점 싸늘해졌었기도 했고, 퇴근하기 전에 참을 수 없는 콧물과 기침 때문에 먹은 감기약으로 영화의 갈등의 절정에서 설핏 잠이 들었다. 깨고 나니 오십대의 노총각과 여자이기도 하고 여자가 아직 아닌 것 같은 이십대의 사랑은 갈등의 끝이었다. 온갖 닭살 행각을 벌이던 그들은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헤어졌고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처럼 병원에 누웠다. 처음 마음을 이어가던 때의 장면과 오버랩 되면서 이십대의 여자는 계속 반복해서 대사를 되뇐다. 우리 다시 시작해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우리 다시 시작해요.
그 둘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도 다시 만나겠지. 이것은 우리의 바람이고, 그 둘은 어쩔 수 없는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영영 헤어질지도 모르겠지. 아무런 결론을 내려주지 않고 영화는 끝이 나고 있었다. 딱, 영화감독의 첫인상과 그의 분위기와 너무나 꼬옥 맞은 결말이었다.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문자로 늦은 새해인사를 하는 재학생 후배 녀석이 딱 공감이 가는 영화라고…… 그래, 너무 늦어서 늘 하는 뒷풀이도 하지 못하고 그냥 보내서 아쉬웠는데 언제고 다시 영화이야기를 해봐야겠다.
영화를 보면서 즐거웠던 것은 배우 안성기씨의 모습이었다. 라디오스타였던가, 거기서부터 그는 영화 속에서 더 이상 배우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냥 그의 살아온 시간들이 조근조근 녹아 들어있는 것 같았던 편안하고 튀지 않는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이번 영화에서도 그는 그런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어설픈 것에는 어설프면서도 자신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 우리는 살면서 얼마나 나를 다른 이에게 보여주고 살 수 있을지, 그를 보면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라디오스타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가장 자신의 아버지 모습과 같다고 안성기씨 아들이 그랬다고 했던가. 아무튼 영화를 보기 전에 무대 인사위의 배우 안성기씨나 스크린 속의 안성기씨나 다르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 곳에서 서 있더라도, 어느 자리에 있더라도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참 소박하고 멋진 배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배우 안성기. 얼마나 이름에 걸맞는 모습이었던지. 꾸미는 것 없이 우리 사는 모습 그대로 잔잔하게 그려준,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가 아름다운 영화였다. 그들의 사랑이 첫사랑에서 끝나고 다른 첫사랑을 찾을지 그대로 서로에게 돌아갈지는 각자의 해석에 따르겠지만, 소박하면서 아름다운 영화여서 보고 난 후에도 자꾸 생각이 나는 기분 좋은 관람이었다.
어느 만큼의 세월을 살았던, 어느 만큼의 자리를 차지하고 살고 있던, 축적한 부든 명예든 다 가지고 있어도 사람 그 자체로의 모습을 함께 사는 사람들에게 보이고 살 수 있는 여유가 있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가질수록 덧옷을 입지 않아도 춥지 않고 많이 누렸을수록 바람처럼 가벼워 질 수만 있다면 이 세상 사는 일이 그렇게 조급하지도 않을 테고 서두르는 일도 없이 여유롭고 자유로울텐데. 그 즈음, 그 지점은 어디 즈음일까요. 각자 선택하는 자리 그 자리가 바로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어야하겠죠.
너……라는 말 속에는 죽음도 두렵지 않은 불멸의 그리움이 살 수 있도록, 너……라는 벼락을 맞은 뼈만 남은 그림자도 살 수 있도록.
2010. 1. 13. 수. 03:27 꽃아그배
* 그냥요, 물론 마이클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마이클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몰론 이 영화 때문은 아니구요. 그냥 글을 쓰다가 보니까 마이클 생각을 하게 되네요.
**그가 죽었다는 것보다 그가 죽은 후에 그를 만나게 되서 너무 많이 우울했습니다. 아이처럼 울기도 했었죠.ㅎ 그를 보면, 그의 글이나 그의 사진, 그가 아이들하고 마주한 사진들, 아기를 보는 모습 등등 많은 모습들을 보면서 그는 점점 사람과는 좀 다른 사람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요. 물론 그도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겠지만 마음 속에 어떤 신성같은 것이 자라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그의 미소, 그의 말투, 어찌보면 우리나라에서 그의 춤을 보고 공연을 할 수 없게했다던 그 사유를 보면서도 그는 참 섹시하기도 한데 참 어린아이같았고 부드러운 인성을 가지고 있었고, 수줍어했어요. 그런 그를 잘은 모르지만 그냥 사람들이 올려놓은 영상이나 글들을 보면서 참 다른 사람이구나 생각합니다. 그가 지키고 싶었고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 일은 끝까지 하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얻은 부를 어디에 사용해야 하는지도 ...... 목소리 이전에 그는 보이지 않게 실천을 하고 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를 비난해도 자신은 부끄러운 일을 하지 않았다고 부드럽게 대답하지요. 그는 점점 사람 속에서 사람보다 더 큰 존재로 성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속물적으로 그냥 단순하게 그의 공연을 한번이라도 눈으로 봤으면 정말 좋았을거라는 아쉬움은 여전히...... 그리고 살아있는 그를 만나보지 못한 슬픔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마이클의 연설문을 제가 들락거리는 곳에 실었는데, 제가 다시 쳤었거든요. 올려둔 최근 글에 대한 답글을 오늘 달아봤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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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맞아요 죽은 후에 알았다는게 억울한거죠
아쉬운 마음이 너무 커서....
아쉬운 빈자리에 따뜻한 그의 마음을 가득 담아야겠지요.
그의 마음처럼, 감히 따라가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하나씩 그를 좇아봐야겠지요.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잭슨형님은 돌아가신게 아닙니다. 사람이 언제 죽는다고 생각되세요? 총알이 심장을 관통했을때...? ...아니요. 불치의 병에 걸렸을 때? ....아니요. 맹독의 버섯 스프를 마셨을때...? 아니죠!!! 사람들에게서 잊혀졌을때 입니다.
닉네임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마이클은 죽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 마음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니까요. 사람들에게 잊혀질 수 없는 그, 마이클. 그의 미소를 그려봅니다.
영원할껍니다!
마음속에 살아있는 영환한 불꽃, 순수한 불꽃,
아마.. 언젠가 지구가 없어질때.... 지구에서 사는동안~~세상사람들에게 가장 마지막까지 기억될 이름도 마이클일것 같아요
그는 정말 진실이니까요 그와 같은 사람이 이젠 없을테니깐요 ㅠㅠ
마이클 같은 사람이 없을테죠. 온유하고 열정적이고 순수한 사람, 아이를 품에 꼭 안은 모습이 그대로 천사같아요. 아니 마이클은 천사였죠. ㅎ
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커져만 가는 사람이예요... 감동의 글 잘 읽었읍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고맙습니다. 흐르는 시간 속에 점점 무한해지는 그는, 따뜻한 등불입니다. 어두운 곳을 밝히려고 부단히 스스로 몸을 태우는 등불이죠.
참, 표현을 잘 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를 알았지만 그를 이렇게 가슴 밑바닥까지 품게 된 것은
그를 떠나보내고 나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많이 아프고 그래서 더 많이 그립습니다.
님처럼 그의 공연을 현장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이 하루에도 몇번씩 꿈틀꿈틀 치솟아서 울컥하게 되고요.
너무 늦지 않았나, 왜 이렇게 바보 같았는지 무에 대단한 인생을 산다고 뒷전으로 밀쳐두었었는지 가슴을 칩니다.
아니, 그는 항상 그곳에 있을 줄 알았나봅니다.
'I'm here with you, I'm here to stay'라고 했던 그의 노랫말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