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 선암사와 벌교
순천 땅에 접어드니 메타세콰이어 키큰 나무는 이 곳 저 곳 가로수로 심겨져
천군만마의 기치창검이듯 일렬로 선 나무들이 하늘을 찌른다.
입동을 지나 추워지기도 하련마는 날은 푸근하여 단풍조차 물들지 못 하고
어떤 나무는 그저 칙칙하게 잎들이 말라 떨어진다.
돌로 쌓아 둥그런 아치형으로 만든 다리가 참으로 아름다워 멈추는 발길에
보물로 지정된 승선교가 있다.
선암사를 소개하는 어느 책자에도 첫 장에 소개되는 모습이 이 승선교라
다리 아래로 흐르는 맑은 물과 함께 그 자태 아름답다.
승선교를 지나 처음 만나는 건물 강선루 옆에는 계절을 잊은 동백꽃이 빨갛게 피었고
휴일을 맞아 절로 오르는 길손들은 왁자하다.
돌다리를 일러 신선이 승천하는 승선교라 이름하고
이웃한 누각을 일러 신선이 내린다는 강선교라 하니 속인의 눈에도 이치가 맞다.
순천과 벌교는 한 동네라 꼬막이 이름나니 아니 맛볼 수 없음이라
양념넣어 버무린 꼬막에 그저 삶아 담백한 꼬막하며 전에 들어간 꼬막도 맛있다.
언젠가부터 여수가서 멋 자랑하덜 말고 순천서 인물 자랑말고
벌교에서는 돈 자랑 주먹 자랑하지 말라 했다.
조정래 씨의 태백산맥 이후 벌교는 달라진다.
작가 한 사람의 힘으로 동네가 달라지기는 봉평도 그렇거니와 벌교 또한 그렇다.
그의 태백산맥 문학관 옆으로 소설의 무대 현부잣집이 있고 소화의 작은 집도 있어
신발을 잘잘 끄는 소화의 발걸음소리가 들려 올 듯...
그의 문학관에는 태백산맥을 육필로 쓰노라 쌓아올린 원고지가 작은 산을 이루었으니
명성에 맞추어 쓰는 정성 또한 지극하였겠다.
쌍계사
섬진강을 따라 쌍계사로 오르는 길은 벗나무로 터널을 이루었기
봄에는 화사한 벗꽃이 십 리를 가고,
가을이면 붉은 잎새 또한 꽃 못지 않게 아름다워 또한 십 리를 간다.
예로부터 섬진강엔 은어 참게가 많이 나고 재첩 또한 별미라
문을 연 식당마다 은어 참게 재첩으로 길손을 맞이한다.
좋은 벗들과 함께 하는 아침식사로 재첩국을 아니 들 수 없으니
시원하고도 구수한 국물은 술꾼이 아니어도 십 년 묵은 주독을 털어내는 듯 하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처음 만나는 금강역사는 눈을 부르뜨고
누가 들어오는지 지켜보는 듯 하고,
코끼리에 앉은 보현동자와 사자 등에 올라 탄 문수동자는
들어와도 좋은 사람인지 헤아리는 듯 하다.
이 문을 지나 다시 심판을 받아야 하니
울끈불끈 왕방울눈을 크게 뜬 사천왕이 또 길을 가로막는다.
날은 화창하여 뒤로는 지리산 자락이 멀리까지 보이고
정선의 풍경과는 달리 민가의 마당에는 붉은 감이 주렁주렁 열렸는데
노란 감보다 어쩌면 더 아름답다 느끼기도 할 만큼 감잎 또한 붉게 물들었고
녹차의 시배지라 이름하여 야산에는 야생의 녹차나무가 많기도 하다.
인파에 밀려 앞서거니 뒤서거니 내려와서는 화개장터로 간다.
화개장터와 화엄사
일찍이 경상도와 전라도가 강을 사이에 두고 정답게 살아왔으니 화개장터라
두 동네 어우러지면 그만이라 집산물도 그저 그러 했겠으나
지금은 팔도 사투리가 모두 모여 부산하니 장마당엔 대장간도 있고
감을 파는 할머님의 말대로 없는 것 빼고는 모두 있다.
말린 녹차 말린 감 오미자 구기자 산수유 산나물에 해산물까지
정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다.
특히나 정선 땅에서 온 길손들의 눈에는 정선에서는 볼 수 없는 감이 탐스러워
대봉이라나 뭐라나 커다란 감을 많이도 산다.
어디 가건 제 철에 나는 음식을 제 철에 드는 일이 제일이요 행복이다.
노고단을 머리에 인 화엄사는 웅장하다.
쌍계사와 마찬가지로 이 곳에서도 드나드는 길손들은 금강역사가 지키는 문도 지나야 하고
사천왕의 부릅뜬 위압적인 눈도 견디어야 들 수 있다.
쌍계사의 문수동자는 사자를 타고 앉았는데
여기의 문수동자는 사자는 사자려니와 전설의 동물 해태를 타고 앉았다.
무릇 불교가 주는 가르침은 방대하여 필부의 평생 공부로도 모두 알 수 없음이라
문수동자가 해태를 타고 앉은 이유가 있겠으나 이를 알 수 없다.
노고단을 올라 임걸령 능선을 타고 종주한 오래 전의 지리산 산행은
이미 꿈이런 듯 아련하고,
멀리서나마 산을 바라보는 눈빛은
지난 그 날의 그리움이다.
정선
늦은 밤 도착한 정선은 밤기운 싸늘하고 달빛은 푸른데
집을 지키던 두 마리 개는 주인을 보고는 길길이 뛰어오른다.
그리고
아침에는 서리가 하얗게 내렸다.
첫댓글 흡사 한편의 수채화를 보는듯 매그럽게 써내려간 여행담이 넘 정겹 씀니다...정선 나그네님 좋은글 감사...
공감하여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좋은 날 되소서...
많은걸 담아오신 남도여행이셨군요.
정선나그네 님 덕분에 눈에 아른거리는 익숙한 남도 여행지의 옛 추억을 더듬으며
여행후기 글따라 나섰다가 정선이 아닌 달구벌에 도착을 했네요 *^^*
달구벌이라 하면 대구를 말하지요? 다음에 또 같이 가요. ㅎ
늘 정선장날 구경도 시켜주시고,
정선 풍경을 구경시켜 주셔서
쫄 쫄 뒤따라 댕기고 있답니다.ㅎㅎㅎ
감사합니다.
남도 여정을 이렇게 한 눈에 볼 수 있게 글로 올려주시다니요~ㅎ(감솨..^^)
백양사의 첫 목탁소리로 새벽을 맞으시고 지리산의 문수보살님 계신 화엄사까지~^^
벌교의 조정래문학관에서 어른 키를 넘는다는 그 원고더미를 보셨군요~(부럽..^^)
다음 여행지는 어디가 되실까 궁금 해 집니다~ㅎ
불교를 믿지는 않아도 절이 갖는 고요함이 좋아 다니지요.
다음 여정은 경북 예천이 될 듯 한데 아직 미정...
와,,,,남도의 유명한 절 5군데를 너무도 자세하게 설명과 곁들여 맛깔스럽게 구상하셨네요,
역시 문인다우신 여행기입니다,,,
우리들은 여행하면서 그냥 웃고 떠들고 즐기다가 집에 오면 잊어버리고,,,,,ㅎㅎㅎ,,,,
어디를 갈 적에는 사전에 공부 조금 하고 가면 재미도 있고 또 더 배움도 갖고 오지요. ㅎ
여행을 골고루 잘하셨네요. 다음엔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인 통도사를 다녀가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근처엔 여러 사찰이많은데....... 혹여 계획이 있으시면 미리 연락 한번 꼭 주시길....... 하얀서리 내린날은 따뜻하다고 하던데요.건강하시길....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중 하나인 양산 통도사...
오래 전에 갔었으나 기억이 가물가물 하니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다시 가렵니다.
남도 여행의 멋진 구성에 감탄을 금치 못하겠습니다..
제가 가보지 못한곳을 담아 보여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다 하시니 제가 도리어 감사하지요.
가을의 끝자락에 남도의 명찰 순례를 하시고
언제나 그렇듯 쉬운 어휘로 어떻게나 잘 묘사해 주셨는지
저 역시 함께 참배 한 것 같습니다.
추억속의 남도 음식은 많이 먹어 보셨는지.....
나날이 좋은 날 되세요.
식당에서 먹는 남도음식은 예전의 맛이 아닙디다.
그저 바닷가 갯마을 할머님들께서 만든 음식이라야...
글을 참 매끄럽게 잘 쓰시네요 소개한 곳중에서 한 곳 쌍계사만 가보았나봐요 나머지는 지나만 가보았어요..ㅋ
동해쪽은 거의 다 아는데 전라도는 잘 몰라서 잘 보았어요.
서리가 하얗게 내렸나봐요. 이쁘겠다..감기조심하세요
기회가 되면 남도 쪽으로도 다녀오시라 권합니다. 특히 운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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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따라 오르는 화개장터는 벗꽃이 만발하는 봄이면 더욱 아름답겠더군요.
운주사만 빼고는 다 갔다 왔지만 정선님의 맛깔나는 글로써 제가 한 여행은 눈도장에 그친걸 느꼈네요...ㅎㅎㅎ 나날이 문인으로 일취월장 하시는것 같습니다....ㅎㅎㅎㅎ
운주사는 신비스러운 곳이라 꼭 다녀오시길...
남도 여행, 이순신 장군을 생각하면 눈물을 아니 흘릴 수 없다. 조선 수군의 눈물이 서려있는 타루비,
여수시 고소동 타루비(墮淚碑) 보물
타루비에는 “영하의 수졸들이 통제사 이공순신을 위하여 비를 세우니 타루라 말하니라. 그 비를 바라보면서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 만력 31년(1603) 가을에 세우다(營下水卒 爲統制使李公舜臣 立短喝 名曰墮淚 蓋取襄陽人思羊祜 而望其碑 則淚必墮者也 萬曆三十一年秋立)”라고 쓰여 있다.
그러고보니 남도를 돌며 여수를 못 갔네요. 다음 기회에는 꼭 가겠다는...
여행이라면 강원도쪽으로만 고집했는데 이젠 아기자기한 멋이 있는 남도쪽으로 발길를 돌릴까봐요 덕분에 남도구경 잘 했어요 나중에 갈 기회가 주어지면 이글을 또 읽고 가렵니다
여기저기 다녀보니 우리나라는 어디나 모두 아름답다는 생각...
남도 여행을 하셨네요~
저도 올여름 8월28일에 화엄사와 지리산 노고단에 다녀와 너무좋아서 가을 11월13일에 구례시장~ 화엄사 ~지리산 노고단에~ 다시 다녀왔습니다
좀 늦어서 화려한 단풍구경은 못하였고 노고단은 벌써 춥고 바람이 많이불어서 이른 겨울같은 느낌였습니다
구례시장은 이승기가 팥죽을 먹었다는 조그만 가게에는 긴줄이 서있고 먹거리가 많았고 감이 풍부했습니다 .
정선에서는 못 보는 감이 익어가는 풍경에 마음을 뺏겼습니다. 또 나설 날을 기다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