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는 세계사]
카틴 숲 학살 사건
50년을 숨겨온 소련의 비밀…
1940년 폴란드인 2만명 대학살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백악관에서 폴란드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미군을 독일에서 폴란드로 이동시킬 것"이라고 밝혔어요. 독일에 주둔 중인 미군 일부를 폴란드로 재배치하겠다는 것인데, 줄곧 미군 추가 유치를 희망해온 폴란드는 이에 크게 환영하는 입장이라고 해요.
폴란드는 왜 미군 유치를 원하는 걸까요? 러시아에 의해 혹독한 고초를 겪었던 뼈아픈 역사가 있기 때문이라고 해요. 폴란드는 1795년부터 123년간 러시아와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의해 분할통치되다 간신히 독립했어요. 하지만 1939년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또다시 소련의 침공을 받았습니다. 이 기간에 일어났던 가장 잔인한 역사적 사건이 소련에 의한 '카틴 숲 학살 사건'이에요.
◇2차 세계대전 중 발견된 폴란드인 시신
'카틴 숲 학살 사건'은 1940년 소련 비밀경찰(NKVD)이 카틴 숲(러시아)과 하르키프(현 우크라이나), 메드니(러시아), 트베리(러시아) 등에서 폴란드 지식인 2만여명을 집단으로 살해한 사건을 가리킵니다. 카틴 숲에서 4100여명, 하르키프에서 3900여명, 메드니에서 6300여명, 트베리에서 6200여명 등이 학살됐지만, 카틴 숲에서 처음 시신이 발견돼 이렇게 부릅니다.
▲ 폴란드 중부 시비엥토크시스키에주에 있는 '카틴 숲의 학살 사건' 추모 기념비예요. 1940년 러시아 카틴 숲과 우크라이나 하르키프, 러시아 메드니에서 자행됐던 폴란드인 학살 사건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위키피디아 |
1939년 9월 1일 나치 독일이 폴란드 서쪽을 침공하면서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었어요. 소련은 독일과 한 달 전 맺은 '독소 불가침조약(독일과 소련이 서로 전쟁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 조약)'을 앞세워 폴란드 동쪽을 침공해 폴란드 영토의 절반을 차지했지요. 폴란드는 이후 동서로 분할되었습니다.
전국에서 저항하던 100만명 넘는 폴란드인이 소련으로 끌려갔습니다. 특히 소련은 장교나 경찰, 의사, 예술가, 성직자, 정치인 등 폴란드 주요 엘리트 지식인을 끌고 가는 데 혈안이 되었어요. 이 중 상당수는 오스타시코프, 스타로벨스크, 코젤스크 등 소련의 세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습니다.
1940년 봄 무렵, 수감됐던 폴란드인들의 소식이 갑자기 끊깁니다. 당시 폴란드 정치인들이 세운 '망명정부'가 소련 측에 수감됐던 폴란드 장교들의 소재를 물었는데, '폴란드인 모두를 석방했고 이후 만주로 갔기 때문에 행방을 모른다'고 답이 돌아왔다고 해요.
◇소련, "나치 독일이 저지른 짓" 부인
1943년 4월 13일 독일 나치군이 소련 스몰렌스크 인근 카틴 숲에서 거대한 시체 구덩이를 발견합니다. 조사 결과 대부분 3년 전 행방이 묘연해졌던 폴란드인들인 것으로 드러났어요. 수많은 폴란드인이 집단으로 죽임을 당해 소련 땅에 매장됐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소련이 대학살의 주범이 아니냐는 의심이 확산됐습니다.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괴벨스는 이 사건을 소련을 공격하는 소재로 이용했습니다. 그는 폴란드 언론인 등을 현지로 보내 사실을 확인한 뒤, 라디오로 이 소식을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독일군이 소련 땅 스몰렌스크 인근 카틴 숲에서 길이 28m, 폭 16m 구덩이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시신 4100여구가 12겹으로 쌓여 있었다!"
하지만 소련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나치가 학살의 주범'이라고 거꾸로 독일을 공격했어요. 1944년에는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해 진상을 알아보는 시늉도 했습니다. 소련의 조사 결과는 '카틴 숲의 학살은 나치 독일이 저지른 것이다'라는 것이었지요.
당시 미국과 영국 등 연합국은 이 사건에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어요. 소련이 연합국으로 참전한 데다 나치 독일 편을 들고 싶지 않았던 거죠. 실제 윈스턴 처칠 당시 영국 총리는 폴란드 망명정부 수장이던 시코르스키 장군에게 '행방불명자에 대한 개입을 중단하라'고 권고했다고 해요. 또 프랭클린 루스벨트 당시 미국 대통령도 '소련이 그런 일을 저지르지 않았다고 확신한다. 이건 독일의 음모다'라며 소련을 비호했지요.
◇50년만에 밝혀진 진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의 승리로 끝났지만, 소련은 줄곧 카틴 숲 학살 혐의를 극구 부인했어요. 사건은 어쩔 수 없이 한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진실이 드러난 것은 1989년 소련 역사학자들이 카틴 숲 학살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찾아내면서부터였습니다. 스탈린을 비롯한 소련 주요 인물들이 서명한 문건에는 폴란드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의 여러 수용소에 수감 중인 폴란드인 약 25만명을 처형하라는 내용이 뚜렷하게 담겨 있었어요.
너무 명백한 증거 앞에 1990년 4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카틴 숲 학살 사건은 소련 비밀경찰의 소행이며, 그동안 소련 당국이 이를 은폐하려 했다'며 잘못을 공식 인정합니다. 1년 뒤에는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학살과 관련된 정부 공식 문건을 공개했어요. 이 문건에 따르면 1940년 4월 3일부터 노동절인 5월 1일을 제외하고 약 두 달간 소련 비밀경찰에 의한 폴란드인 대학살이 자행됐습니다. 문건에는 소련군이 살해한 폴란드인 2만1768명의 명단이 들어있었는데 장군 등 군인을 비롯해 대학교수, 의사, 작가, 언론인, 변호사, 엔지니어, 교사 등 지식인이 대부분이었지요.
소련은 폴란드 지식인들을 모두 제거해 '폴란드의 미래'를 산산조각 내고자 했던 것이에요. 2차 세계대전 후에도 소련 공산당의 지배 아래 놓이며 비극적인 역사에 대해 계속 침묵할 수밖에 없던 폴란드는 사건 발생 50년이 지나서야 이를 언급할 수 있게 된 것이랍니다.
[추모 70주년 앞두고 추락한 폴란드 대통령 탑승 비행기]
지난 2010년 4월 10일, 카틴 숲 학살 사건 70주년 추모 행사에 참가하려던 폴란드 대통령 내외 등이 러시아 스몰렌스크 인근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전원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비행기 안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국가안보국장, 육군 참모총장, 육해공군사령관, 중앙은행 총재 등 폴란드 주요 지도층 인사 100여명이 타고 있었지요. 추락 사고의 원인에 대해 여러 의혹이 제기됐지만 아직 밝혀진 것은 없다고 해요.
서민영 경기 함현고 역사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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