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연(金炳淵 1807∼1863)
"처와 첩"
不熱不寒二月天 一妻一妾最堪憐
불열불한이월천 일처일첩최감련
鴛鴦枕上三頭竝 翡翠衾中六臂連
원앙침상삼두병 비취금중육비연
開口笑時渾似品 飜身臥處燮成川
개구소시혼사품 번신와처섭성천
東邊未了西邊事 更向東邊打玉拳
동변미료서변사 경향동변타옥권
춥지도 덥지도 않은 이월 달에 아내와 소실이 견디는 꼴이 가련하다
원앙금침엔 머리 셋이 나란히 있고 비취 이불 속에는 여섯 팔이 나란하구나
함께 웃을 때 어우러진 입의 모습은 마치 品자와 같고 몸 뒤집어 누운 옆모습은 川자와 같구나
동쪽이 다 끝나기도 전에 다시 서쪽으로 돌아눕고 또 다시 동쪽을 향해 옥 같은 손목을 쓰다듬네
강원도의 어느 지방을 지나다가 주막에 들른 김삿갓은 본의 아니게 옆자리에 앉은 남자들이 술에 취해 하는 말을 엿듣게 되었다.
"정말 고민이야.
이놈의 마누라들이 하루도 빼놓지 않고 으르렁대니 내가 중간에서 살 수가 있어야지."
지금까지 그들 패거리의 말을 들어본 결과, 그는 백만수라는 30대 남자였는데 부인을 둘이나 데리고 사는 행복한 사내였다.
"이 사람아, 나는 아직 나이 서른이 넘도록 장가도 못 갔는데 자네는 여자를 둘씩이나 데리고 살면서
매일 만나기만 하면 그리 호강에 겨운 소리만 지껄이는가?"
"그러게 말이야. 하나가 아니고 둘인데 뭐가 불만인가?
오늘은 큰마누라, 내일은 작은마누라, 이렇게 번갈아가며 품고 잘 수 있으니 얼마나 큰 복인가!"
백만수의 친구들은 불만스럽다는 듯 투덜거렸다.
"그런 소리 말게.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들어 보면 아마도 그런 말은 못할걸세."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건가 우리가 해답을 줄 테니 한번 말해 보게."
김삿갓도 자뭇 그의 사연이 궁금해져 탁주 한 사발을 들이킨 다음 귀를 기울였다.
사연은 이러했다.
그는 한집에서 큰마누라와 작은마누라를 데리고 살고 있었는데 두 여자의 사이가 좋지 않아 하루도 다투지 않는 날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두 여자가 눈을 뜨자마자 마당에서 서로 으르렁대다가 서로 머리채를 잡고 대판 싸움을 벌였다는 것이었다.
백만수는 그 꼴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가 없어 싸움을 말리려고 끼어들었으나 어느 편을 들어야 할지 난감했다.
그래도 누군가 하나는 나무래야겠기에 작은마누라의 머리채를 움켜잡고 방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나이도 어린 것이 어디 윗사람한테 대드는 거야!
너 오늘 나한테 죽어봐라!"
그러나 정작 작은 마누라를 방바닥에 쓰러뜨리고 본격적으로 혼을 내려고 하는데
탐스런 젖무덤이 옷 사이로 비어져 나와 그의 욕정을 자극하고 말았다.
그래서 결국 식전부터 그는 작은마누라를 껴안게 되었는데 한창 열이 오를 무렵 큰마누라가 방문을 벌컥 열고 들이닥친 것이었다.
큰마누라는 사내의 등덜미를 낚아채면서 소리쳤다.
"이런 잡것들을 봤나!"
백만수는 무안해서 아무 소리 못하고 머리만 긁적거렸다.
그러나 큰 마누라가 사내에게 죽일 듯이 달려들어 씩씩거리며 다시 소리쳤다.
"이 잡놈아, 그런 식으로 죽이려거든 차라리 나를 죽여라, 나를 죽여!"
김삿갓은 그 말을 듣자 배꼽을 움켜잡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