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해균은 퇴원했지만 그의 영웅적인 회복을 기억하고 아주대병원에 기부금을 내는 국민들이 늘어났
다.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정성을 보태주는 사람들은 대개 형편이 넉넉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매월 몇
천만 원씩 용돈을 써재끼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무관심하여 어디에도 기부금을 내지 않는다. 기
부금은 이국종이나 외상외과를 지명하여 입금되었지만 병원에서는 그 돈을 일반 수익계정에 넣고 외
상외과에는 한 푼도 주지 않았다. 외상외과는 여전히 쪼들렸다.
2012년 여름 김준규 중앙구조단장이 퇴임하고 후임자가 그 자리에 왔다. 이국종이 인사하러 찾아갔
을 때 신임 단장은 이국종은 쳐다보지도 않고 곁에 서 있는 행정계장에게 말했다.
“앞으로는 계통을 밟아서 절차대로 지원을 요청하라고 해!”
이국종이 경기소방방재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중앙구조단에 헬기 지원을 요청해온 걸 두고 한 말이
었다. 김준규는 이국종이 중앙구조단에 직접 요청하도록 허락했고, 중앙구조단에는 요청이 오면 즉
각 협력하라고 지시했었다. 그 동안 원활하게 이뤄지던 헬기 지원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고위공직
자 가운데는 이처럼 공적인 권한을 사적인 감정에 따라 오용하는 자들이 대부분이다.
며칠 뒤에는 소방방재청 구조구급과 이재열 과장이 아주대병원으로 이국종을 찾아왔다. 이재열은 중
앙구조단에 직접 헬기 지원을 요청하지 말고 반드시 경기소방방재청을 거치라던 신임 중앙구조단장
의 말을 되풀이했다. 이재열은 그렇게 계통을 거치다 보면 출동시간이 늦어 외상환자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규정대로 계통을 거치면 빨라야 2~3일 후에나 헬기 출동
이 가능하다. 그때는 환자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헬기가 출동할 필요도 없다. 이 나라 관료조직은 그
렇게 돌아가고 있다. 신임 단장의 강경한 요청을 전하기는 했지만 못내 미안했던지, 며칠 뒤 이재열
은 부족한 항공 출동장비를 사는 데 보태 쓰라는 간곡한 격려의 편지와 함께 중앙구조단 간부들의 후
원금을 거둬 이국종에게 보내주었다.
이국종의 몸은 몇 년 전부터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폐렴 정도는 치료받을 시간이 없어 잊고 지내
다 보면 제풀에 지쳐 떨어지기도 했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발목이 부어
올라 격심한 통증이 왔다. 이국종은 그 상태로 절뚝거리면서 수술과 집중치료를 계속했다. 정형외과
의 조재호 교수가 그 사실을 전해 듣고 이국종을 불렀다.
“결절종인 것 같네요. 인대가 상하기는 했지만 다행히 찢어지지는 않았군요. 너무 커서 좀 아플테니
힘을 쭉 빼고 참으세요. 결절종을 빼내도 이내 재발하는 거 아시죠? 완치하려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시간 나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초음파검사 결과를 설명한 조재호는 주사바늘을 결절종에 찔러 넣었다. 그는 이국종이 이쯤 일로 수
술을 받고 드러누워 지내지는 않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조재호는 베타딘으로 환부를 씻어내고 거즈
를 붙여 드레싱을 마쳤다. 통증이 다소 가라앉아 걷기가 한결 수월했다.
중증외상 환자 치료는 본질적으로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우선 모든 중증외상
환자는 막대한 치료비를 부담할 능력이 없는 계층이다. 중상을 입는 것도 그의 잘못이 아니라 법적‧
제도적으로 안전장치가 미흡하여 빚어진 결과다. 수술과 집중치료 과정에서 막대한 진료비가 발생한
다는 사실은 당사자는 물론 일을 시킨 회사나 진료비를 지급하는 국민건강보험공단도 다 안다. 다만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을 뿐이다. 대통령‧국害의원‧보건복지부장관 등 법과 제도를 개혁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자들도 모두 잘 알고 있지만, 보완해봐야 본인에게 이득 될 게 없으니까 뒷짐을 지고 있는
것이다. 저들은 공무 중 중증외상을 입을 일도 없거니와, 입더라도 국민 세금으로 완벽하게 치료와
보상을 받을 수 있으니 굳이 빈곤계층의 중증외상에 신경을 쓸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이다.
기획팀장이 이국종을 찾아와 2012년도 외상외과 결산 결과 적자가 20억 원이 넘는다고 알려주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방에서 들려오는 욕도 지겨웠지만, 이제는 몸도 더 버티기 어려웠다. 이국종은
보직교수를 찾아가 최대한 예를 갖추어 국책사업인 중증외상센터 건립계획을 철회해달라고 요청했
다. 더 이상 병원에 적자를 끼치고싶지 않다는 자성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보직교수들과
환담을 나눌 때마다 함께 외상외과와 이국종을 씹어대던 그는 계속 외상외과를 잘 운영해달라고 당
부했다. 그러고도 예산 지원을 비롯하여 외상외과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었다. 적자가 나더라도 자기
돈도 아닌 자들, 어쩌면 모든 보직교수들에게 이국종처럼 욕을 해대며 스트레스를 풀 대상이 한 사람
쯤 필요한지도 모른다. 이국종은 몇 년 동안 성과급 한 푼 못 받으면서도 중증외상 환자 치료에 전념
하는 팀원들에게 한없이 미안했다.
정부 차원에서 중증외상센터 설립 움직임이 보이자 의료계 내의 각 전문의 집단 간에 이해가 엇갈리
며 이전투구가 벌어졌다. 국회에서 이국종의 자문을 받아 관련 법안 초안을 만들었다고 알려지자 의
료계 내에서 이국종에 대한 중상모략이 난무했다. 이국종은 경상인 석해균을 데려다 온갖 쇼를 벌인
끝에 인기몰이에 성공한 파렴치한으로 돌변했다. 행정부의 자세도 어정쩡하기는 마찬가지여서, 단지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응하는 것일 뿐 진정으로 환자들을 위해 효율적인 시스템을 만들어보자는 의지
를 가진 고위공직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 및 지역 안배를 잘하여 욕을 먹지
않는 방법에만 핀트를 맞추었다.
18대 국회가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권역별 중증외상센터 설립에 관한 법안은 극심한 여야 대치로 산
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여야는 법안의 내용과 상관없이 상대방이 발의한 안에 반대하는 데만 당력을
집중했다. 국害의원들은 모든 잘못이 이국종에게 있다는 모략에 속아 그를 국회로 불러 추궁했지만,
막상 이국종의 답변을 듣고는 미안하다는 말만 했다. 이게 대한민국 국害의원들의 수준이다. 민주당
소속 허윤정 전문위원이 여야 중진의원들을 한 사람씩 찾아다니며 설득한 끝에, 18대 국회 임기 마지
막 날 극적으로 <응급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2017년까지 전국에 16개 중증외상센터를
만들기로 한 안이다. 법안을 발의한 민주당 주승용 의원은 그 법안의 별칭을 ‘이국종법’이라고 붙였
다. 그러나 막상 아주대병원은 16개 중증외상센터 선정에서 탈락했고, 지정된 16개 센터는 상굿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않고’ 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민노총이나 전교조,시민단체가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세상이 되었지만 군 인권센터란 시민단체가 장병의 조사권도 가지고 있어 육군대장의 공관장 갑질 논란 과 기무사 문건을 폭로 하는등 내정 간섭이 만연 되고 있다고 합니다. 군부대들이 시민 단체에 휘둘리는 것은 정권이 그 뒤에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정치.경제 모두가 후퇴하는 정국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