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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하나다.(오직 마음으로 연결된 세상)
시간을 소급하는 인과율(BBS불교방송 김성구교수님 강의 참고)
동지의 끝자락에서❤️
冬이 春에 즉해 있더니 冬이 極에 달해 봄의 매화향기가 極樂에 사바중생들의 소식을 전합니다❤️
138억년 전에 파동으로 출발한 빛을
지금 관찰하지 않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파동상태이고,
빛이 어느 쪽으로 오는지 관찰하면 입자(果)가 되는 즉시 138억년 전의 빛도 입자(因) 상태가 됩니다.❤️
즉 구세십세호상즉, 화과동시가 되어 인과가 상즉상입, 원융해집니다.❤️
“과지의 깨달음을 인지의 마음으로 삼기에 인지는 과지의 바다를 포괄하고 과지는 인지의 근원까지 관철한다."
“이 한 생각으로 당장 염불하면 이 한 생각이 당장 부처가 된다.” 우리가 이 한 생각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를 때, 이른바 “과지의 깨달음을 인지의 마음으로 삼는다.”라고 했듯이, 이 일념의 마음속에 아미타부처님의 과지공덕이 원만히 다 들어있기 때문에 “이 한 생각이 당장 부처가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나무아미타불 염불하는 행위로 인해 일성마다
N(양자화,Quantization)= 12,216,855,272,727,300,000,000,000,000,000,000,000,000,000개(80억겁의 생사중죄)의 무량한 빛양자알갱이가 창발하여 아미타부처님의 무량한 명호의 공덕이 현상계에 드러나 중생들이 비로소 진실한 이익을 얻는 것입니다.❤️
즉 내가 염불(관찰)로 그의 이름(명호)를 불러주었을때 염념마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습니다.❤️
이 이치를 알아 나무아미타불 염불에 대한 정견을 얻으면 시방세계에서 염불하지 않는 중생들은 없을 것입니다.❤️
[십현문 十玄門]
십현문(十玄門) 또는 십현연기무애법문의(十玄緣起無礙法門義)은 사사무애법계(事事無礙法界)의 연기설을 강설하는 데 사용되는 교의로, 사사무애법계의 특징을 10가지 측면에서 설명한다.
① 동시구족상응문(同時具足相應門):
제법(諸法)이 동시에 구족 원만하여 서로 조응(照應)하는 것
② 광협자재무애문(廣狹自在無礙門),
고십현에서는 제장순잡구덕문(諸藏純雜具德門):
수행하는 데 일(一)·다(多)의 행이 서로 즉입(卽入)함을 말하며, 순일(純一)한 행 가운데 복잡한 행이 그대로 덕으로서 갖추어져 서로 구애받지 아니하는 것,
③ 일다상용부동문(一多相容不同門):
일과 다가 서로 융섭하여 장애가 없지만, 항상 각 자의 특징을 잃지 않고 그 본성을 유지하는 것,
④ 제법상즉자재문(諸法相卽自在門):
일과 다의 체(體)가 융통무애하여 다가 곧 일이고, 일이 곧 다인 것,
⑤ 은밀현료구성문(隱密顯了俱成門):
일과 다는 은밀하고 현묘하지만, 연기에 의하여 둘 사이에 선후가 없는 것,
⑥ 미세상용안립문(微細相容安立門):
일은 다를 함유하고 다는 일을 포용하여 일과 다가 파괴되지 않는 것,
⑦ 인다라망법계문(因陀羅網法界門):
일체, 즉 일과 다가 상즉 상입(相卽相入)하여 마치 인드라[因陀羅]의 그물에 달린 수많은 보주(寶珠)가 서로 그림자를 비추듯이, 서로 포용함이 한이 없는 것,
⑧ 탁사현법생해문(託事顯法生解門):
차별적 사물[현상계]에 가탁하여 법[진리]을 나타내고, 사람으로 하여금 요해(了解)의 지(智)가 생기게 하는것. 현상계의 사물 그대로가 진리임을 가리킨다.
⑨ 십세격법이성문(十世隔法異成門)
세(世) 즉 시간의 관점에서 보아 일과 다의 상즉 상입을 밝히는 것. 과거·현재·미래의 3세에 또 각각 3세가 있어 9세가 되며, 9세는 상즉 상입하여 일념(一念)이 된다. 9세에 일념이 더해져 10세가 된다.
⑩ 주반원명구덕문(主伴圓明具德門):
일체는 여래장심(如來藏心)을 그 본성으로 하여
이 마음 이외의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견해이다.
첫째 문 가운데 열 가지 뜻이 갖추어져 있다.
첫째 교법과 의의[敎義]를갖춤,
둘째 원리와 현상[理事],
셋째 대상과 지혜[境智],
넷째 실천과 지위[行位],
다섯째 원인과 결과[因果],
여섯째 의지와 주체[依正],
일곱째 본체와 작용[體用],
여덟째 사람과 법[人法],
아홉째 부정과 긍정[逆順],
열째 감응[應感]을 갖춤이다.
이하는 정전법사님 법문입니다❤️
우리는 평소 염불법문을 만났기에 우리는 “평생업성”입니다. 임종업성은 일념의 성취이고, “평생업성”은 “염념의 성취”입니다. 우리가 부르는 한 구절 한 구절 나무아미타불마다 전부 부처님의 과지의 깨달음을 인지의 마음으로 삼기에 “인지는 과지의 바다를 포괄하고, 과지는 인지의 근원까지 관통하여” 모두 생사의 죄를 소멸할 수 있고, 모두 서방정토에 왕생할 수 있으며, 모두 성불의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 마음이 부처를 짓고 이 마음이 곧 부처이다”: 이 두 구절 말씀의 출처가 《관무량수경》 속에 있는데요. 중생이 마음으로 부처를 지으면 마음이 곧 부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어떻게 부처를 지을까요? 관불이나 염불하는 것이 바로 부처를 짓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을 부르면 마음이 부처를 짓는 것으로, 당신이 지금 당장 염불하면 지금 당장의 마음이 바로 부처라는 것입니다.
“직지인심도 여전히 그 기이함이 (정토법문만) 못하구나”: 선종법문에서 말하는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사람들이 모두 기이하다고 여기지만, 정토법문의 “시심작불, 시심시불”과 비교하면 한참 못 미칩니다. 왜일까요? “직지인심”을 말하지만 매일 만 번을 가리켜봐도 당신은 여전히 깨닫지 못한 육단심입니다. 설사 깨달았다 해도 여전히 해탈하지 못한 범부입니다. 그러나 염불법문은 당신이 깨달았든 못 깨달았든 당신이 믿음과 발원을 갖추고 입으로 “나무아미타불”하고 부르기만 하면 마음이 부처를 짓고 즉각 그 마음이 바로 부처입니다. 이른바 “범부의 마음이면서 부처님의 마음”이고, “과지의 깨달음을 인지의 마음으로 삼기에 인지는 과지를 바다를 포괄하고 과지는 인지의 근원까지 관철한다.”입니다.
“이 한 생각으로 당장 염불하면 이 한 생각이 당장 부처가 된다”: 이 말은 위 구절과 이어서 내려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한 생각으로 “나무아미타불”을 부를 때, 이른바 “과지의 깨달음을 인지의 마음으로 삼는다.”라고 했듯이, 이 일념의 마음속에 아미타부처님의 과지공덕이 원만히 다 들어있기 때문에 “이 한 생각이 당장 부처가 된다.”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원만히 성불하려면 당연히 극락정토에 가서야 성취할 수 있겠으나, 극락정토에서 성불한다는 것도 사실 우리 마음속에 본래 있는 이 부처의 종자가 성취되는 것입니다. 마치 태아가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미 형체를 이루었으나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것과 같은데요. 지금 염불하면 범부의 마음속에 이미 아미타부처님의 부처 종자가 있게 되고, 극락세계에 가서는 단지 “좌권을 쥐고 옛 물건을 찾는 것과 같을” 뿐입니다.
“역겁을 닦아 증득하는 법문은 그 고상한 기풍을 더욱 (정토법문에) 양보해야 할 것이다”: 일반적인 수행법문은 1대아승지겁, 2대아승지겁, 3대아승지겁에 걸쳐 복과 지혜를 닦고, 다시 백 겁의 시간에 걸쳐 상호를 닦은 후에서야 불도를 원만히 성취할 수 있습니다. 정토법문은 이 한 생각으로 당장 염불하면 이 한 생각이 당장 부처가 되므로 기타 법문이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읍(挹)”은 겸손하게 사양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방금 든 비유처럼, 염불은 거울로 한 번 비추면 수십 겹의 산수, 무량한 백천삼매다라니문, 무량한 법문이 모두 육자명호의 보배 거울 속에 다 들어있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기타 법문은 산수화를 그리듯이 한 획 한 획씩 그려야 하는데,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인해과해因該果海, 과철인원果徹因源 : 중생들이 오로지 아미타불의 명호를 부르면 바로 아미타불의 과지의 공덕을 갖추고, 아미타불의 과지의 공덕이 염불인들의 마음속에 사무친다.
“과지법문인 까닭이다(果地法故)”, 염불은 “과지의 깨달음을 인지의 마음으로 삼는(以果地覺,爲因地心)” 법문입니다. 아미타부처님의 과지果地에서 성취하신 공덕을 남김없이 공짜로 우리 인지因地의 범부들에게 주심으로써 인지의 범부가 장래에 왕생성불할 수 있는 공덕으로 삼게 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탐진치를 구족하고 있는 우리 인지의 범부들이 배우고 닦은 바가 모두 유위・유루이지만 칭명염불만 하면 일체 공덕을 구족하게 되고, 설사 번뇌를 끊지 못하고 다른 법문을 배울 수 없더라도, 설사 배울 수 있더라도 회향의 대상으로 삼지 않기 때문이지요. 왜냐하면 이것은 과지법문인 반면에, 기타 성도・난행・자력의 삼학육도 법문은 모두 인지법문으로서 인지에서 한 걸음 한 걸음씩 과지로 나아가며 이른바 3대아승지겁을 거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담란대사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지요.
어떤 범부사람이 번뇌가 많음에도 역시 저 정토에 왕생하여 삼계에 계박된 업이 끝내 끌어당기지 못하나니, 그렇다면 이는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의 자격을 얻게 되는 것이다.
有凡夫人,煩惱成就,亦得生彼淨土,三界系業,畢竟不牽;則是不斷煩惱得涅槃分。
“삼계에 계박된 업”, 우리에겐 아직 삼계 육도윤회의 죄업과 탐진치의 죄업, 갖가지 죄업이 남아있지만 설사 이런 죄업들이 있더라도 삼계의 육도윤회 속으로 끌어당길 수 없습니다.
“번뇌를 끊지 않고 열반의 자격을 얻는다”, 설사 번뇌를 조금도 끊지 못했어도 이미 열반의 자격을 얻었습니다. 극락세계에 왕생하는 것은 마치 광명이 오면 어둠이 사라지게 되는 것과 같아서, 당장에 열반의 모든 광명을 얻게 되고, 번뇌와 죄업의 어둠은 완전히 깨끗하게 제거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이 법문은 “과지의 깨달음을 인지의 마음으로 삼는” “과지의 법문”입니다.
“큰 이익이 위없는 까닭이다(大利無上故)”, 우리의 이 법문은 큰 이익이 위없는 법문입니다. 칭명염불만 하면 “큰 이익을 얻고 위없는 공덕을 구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전일하게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칭념하지 않는다면 큰 이익이 있는 공덕이 아니라 작은 이익이고 위가 있는 공덕입니다. 왜냐하면 시방제불도 아미타부처님과 견줄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하물며 우리 범부들이 설사 아무리 수행정진해도 여전히 범부이고, 설사 도를 깨쳤다할지라도 여전히 도를 증득한 게 아니며, 설사 도를 증득했다하더라도 아미타부처님과 비교한다면 그야말로 하늘과 땅의 차이로 전혀 비교할 수 없기 때문에, 오직 전일하게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불러야만 큰 이익과 위없는 공덕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염념이 곧 부처인 까닭이다(念念卽佛故)”, 즉 염념이 곧 부처여서 삼승三乘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전일하게 아미타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는 일념 일념마다 즉각 부처가 되어 삼승의 제행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염하고 닦은 대상은 부처님이지 오계십선이라는 인천의 거짓된 공덕이 아니고, 또 아라한의 사성제, 벽지불의 십이연기가 아니며, 또 보살의 육바라밀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가 부처님이고 염념마다 즉각 부처님의 과덕을 가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염불은 모든 법문 가운데 제일 방편인 수행방법입니다.
“요의 가운데 위없는 요의이다(了義中無上了義)”, 이것은 교법의 측면에서 말한 것인데, 모든 경전의 가르침에는 요의와 불요의의 구분이 있습니다. 예컨대 오계의 법문과 십선을 비교한다면 오계는 불요의이고 십선은 요의입니다. 십선과 사성제를 비교한다면 (십선은 여기서 당연히 색계와 무색계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음) 십선은 불요의이고 사성제는 요의입니다. 하지만 사성제를 가지고 십이연기와 비교한다면 사성제는 불요의이고 십이연기는 요의이며, 십이연기를 가지고 육바라밀과 비교한다면 십이연기는 불요의이고 육바라밀은 요의입니다. 육바라밀을 이 미타명호와 비교한다면 육바라밀은 불요의이고 미타명호는 요의입니다. 따라서 우익대사께서 여기서 “요의 가운데 위없는 요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성제가 요의이고, 십이연기도 요의이고, 육바라밀도 요의인 이유는 이런 수행을 통해 삼계의 육도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한 걸음 한 걸음 부처님의 경계를 향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두 위가 있는 것이지 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원돈 가운데 가장 지극한 원돈(圓頓中最極圓頓)”, 이것은 이치의 측면에서 말한 것입니다. 염불왕생의 이치는 원만한 것이고 단박에 초월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르는 대상이 만덕홍명이고 염념마다 모두 부처님이여서, 한쪽으로 치우쳐 원만하지 않고, 점진적이고 즉각적이지 않은 이런 계위 속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원돈 가운데 가장 지극한 원돈이라 말하는 것이지요. 정숭법사께서도 석가모니부처님의 일대 교법을 판석하시면서 말하기를, 정토법문은 이 일대 교법인 아함・반야・선・밀・정 가운데 방편 중의 제일 방편이고, 요의 중의 위없는 요의이며, 원돈 중의 가장 지극한 원돈이기 때문에 정토는 최고봉에 이른 것이고, 아함・반야・선・밀의 최정상에 서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미타부처님의 명호가 중생들이 칭념하면 바로 과위의 깨달음果覺상의 모든 공덕을 얻게 하고 실상에 계합해 들어가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아미타부처님께서 이러한 본원을 발했기 때문이므로, 아미타부처님은 명호로써 중생을 구제하시는 부처님이시고 아미타부처님의 이 명호에는 이렇게 중생을 이익케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예컨대 『무량수경』에서 말하기를 “모든 중생들로 하여금 공덕을 성취케 하리(令諸衆生功德成就)”라고 하셨는데, 아미타부처님께서 조재영겁을 수행한 목적이 바로 중생들로 하여금 공덕을 성취케 하는 데 있다는 것입니다.
또 말씀하시길 “내가 무량겁 동안 큰 시주가 되어 널리 가난하고 괴로운 자 구제하지 못하면 맹세코 성불하지 않겠다(我於無量劫,不爲大施主,普濟諸貧苦,誓不成等覺)”고 하셨지요. 큰 시주로서 당신의 명호 공덕을 널리 일체 중생에게 베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본원, 제18원인 염불왕생원에서 맹세하시길 중생이 칭념했음에도 “만일 왕생할 수 없으면 성불하지 않겠다”, “너희가 나의 명호를 불렀음에도 나의 극락보토에 왕생할 수 없으면 난 성불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 중생이 부처님의 명호를 부르면 완전하게 부처님의 과지공덕을 얻고 무생의 경계에 계합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아미타부처님의 특별한 본원에 의지한 것이기 때문에 “초세본원超世本願, 별의홍원別意弘願”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 ❤️❤️❤️❤️❤️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