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릴리우오칼라니(Liliʻuokalani, 1838~1917)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1838년 출생- 1917년 작고) 최초의 하와이인 원주민 여성작가로서 많은
곡들을 작곡한 작곡가였다.
그리고 고아들과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한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에게 맡겨진 어린이들'이라는 단체를 설립하였다. 이 단체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녀는 '알로하오에'라는 작곡으로 가장 잘 기억되고 있다.
1891년 그녀의 오빠인 '칼라카우아'왕의 죽음으로, 그녀는 1893년에 하와이의 여왕이 되였고
미국 해군에 의해 퇴위되어 그후 2년간 그녀의 왕궁에서 구금되었다.
그녀는 1917년에 작고할 때까지 계속해서 하와이의 백성과 나라에 대한 권리들을 위해 투쟁하였다.
일찍이 신식 문물을 배워 영어와 하와이어 양자에 둘 다 능통했고 작곡까지 했던 영민한 인물이었으나, 하와이 내 미국인들의 농장을 국유화해버리자 미 해군 수병 150명의 지원에 힘입은 미국인들에 의해 추방되었다.
추방생활 내내 미국과 영국을 오가며 하와이 왕국을 되살릴 길을 찾았으나, 아무도 그녀의 말을 귀기울여 듣지 않았다. 결국 하와이가 미국에 편입된 후로는 벌금과 징역을 선고받았으나 집행되지는 않았고, 이올라니 궁전의 구석방에 유폐되어 살다가 풀려나 노년에는 평범한 미국 시민으로 살다 79세로 사망했다.
빌 클린턴 정권 때 공식적으로 하와이 왕국을 무너뜨린 일과 여왕이었던 그녀에게 한짓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알로하 오에'라는 곡을 쓰기도 했다.
여왕은 '이오라니 궁'에서 자택감금당하는 동안 '알로하오에'를 작곡하였다.
"알로하 오에"(그대여 안녕)는 릴리우오칼라니의 가장 유명한 노래이고 하와이를 하나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상징적인 노래이다. 이 노래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다. 그것들은 모두 공통점이 있는데 이 노래는 대령 제임스 하버틀 보이드에게서 얻은 작별의 포옹을 보고 영감 받았다는 것이다.
오하우의 바람 부는 쪽 마우나윌리의 1877 혹은 1878년에 릴리우오칼라니 공주에 의해 취해진 보이드 농장으로 승마여행 중이었다. 그것을 그 일행의 멤버들은 호놀룰루로 돌아오는 길에 콧노래로 흥얼거렸다. 다른 버전들은 포옹받는 사람을 다르게 이야기한다 - 릴리우오칼라니의 여동생 리케리케 크레그호르노르 공주이거나 아니면 농장의 어린 여자로. 이 이야기의 가장 익숙한 버전에 따른다.
이 부드러운 작별의 장면은 릴리우오칼라니가 생각이 떠오르게 만들었고, 그녀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콧소리로 노래하기 시작했다. 우연히 들은 찰스 윌슨은 "그 소리는 마치 바다 옆의 외로운 바위 같았다."라고 진술했다. 릴리우오칼라니는 그것에 동감한다고 말하였다. 그 일행은 팔리의 호놀룰루 옆 오렌지숲에서 휴식을 위해 잠시 멈췄을 때 그녀의 콧노래에 다른 것들이 추가되어 합쳐졌다. 그리고 이 노래는 훗날 워싱턴 플레이스에서 작곡되었다.
하와이주 기록보관소는 이 노래의 악보, 가사, 릴리우오칼라니의 영어번역과 함께 1878년 날짜로 된 릴리우오칼라니가 손으로 쓴 원고를 보관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의 노트는 훗날 분명하게 덧붙였다. "1878년에 마우나윌리에서 작곡하였다. 1883년 8월 샌프란시스코에서 로얄 하와이안 밴드에 의해 연주되었다. 그리고 매우 유명해졌다." 1913년 악보는 레비 악보집에서 볼 수 있다.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하와이를 미국과 합병하려는 소수 백인들로부터 하와이 원주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반대파들이 연합하여 그녀를 폐위시키려 했다. 1893년, 샌퍼드 돌이 이끄는 선교당은 궁전을 봉쇄하고 '하와이가 미국에 합병될 때까지 임시 정부를 수립한다'고 발표한 뒤 여왕에게 퇴위를 요구했다.
일단 '유혈 충돌'을 막기 위해 퇴위를 받아들인 릴리우오칼라니는 미국의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 복위(復位)를 호소했고 그가 '여왕의 복위'를 명령했으나, 반대파의 샌퍼드 돌은 미국 대통령의 그 명령을 무시했다. 1895년 여왕을 지지하던 왕당파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지만, 결국 돌(Dole)파에 의해 진압되었고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가택 연금을 당하기까지 했다.
반란 진압 후, 옥에 갇힌 자신의 추종자들을 석방시키기 위해 릴리우오칼라니는 공식 퇴위서를 발표하며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로 인해, 100년 동안 유지되었던 하와이 왕국은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을 끝으로 막을 내리게 되었다. 릴리우오칼라니가 퇴위된 후, 샌퍼드 돌(Sanford B.Dole)이 하와이 공화국을 선언하면서 대통령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898년, 하와이가 미국과의 합병에 승인하면서 하와이는 미국 소유가 되었다.
◆ 하와이 왕실의 이올라니 궁전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 미 해군전함 보스턴호의 해병대들이 하와이 궁전에 도열하고 있다
◆ 1893년 하와이 쿠데타에 동원된 미 해군 보스턴호
◆ 왕의 근위병이 거주했다는 이올라니 병사(兵舍) (ʻIolani Barracks)
◆ 칼라카우아 왕(King Kalākaua)과 릴리우오칼라니 여왕(Queen Liliʻuokalani)의 대관식이 있었던 정자(pavillion)다.
◆ 하와이 마지막 여왕인 릴리우오칼라니(Queen Liliʻuokalani) 동상
첫댓글 망한 나라지만 그래도 품위는 지킨 듯한 여왕이네요. 이 여왕 말고 하와이 왕족중에 남자 왕족(작위는 공작)이 한분 있었는데..그 분도 하와이 독립을 위해 나름애쓰긴 했지만 실패했죠. 이 여왕도 그 남자 왕족도 하와이 왕실이 백인들과 결혼해서 아버지쪽은 백인이었지만 자기 정체성을 침략자인 백인쪽에 두지 않고 그래도 하와이 왕조를 지키려 노력했던...어찌보면 그 시절의 개념인 왕족들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