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신문 ♤ 시가 있는 공간] 겨울 숲에서 / 안도현
심상숙 추천
겨울 숲에서
안도현
참나무 자작나무 마른 잎사귀를 밟으며
첫눈이 내립니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이 계절에서 저 계절을 기다리는
헐벗은 나무들도 모두
그래서 사랑에 빠진 것이겠지요
눈이 쌓일수록
가지고 있던 많은 것을
송두리째 버리는 숲을 보며
그대를 사랑하는 동안
내 마음속 헛된 욕심이며
보잘것없는 지식들을
내 삶의 골짜기에 퍼붓기 시작하는
저 숫눈발 속에다
하나 남김없이 묻어야 함을 압니다
비록 가난하지만
따뜻한 아궁이가 있는 사람들의 마을로
내가 돌아가야 할
길도 지워지고
기다림으로 부르르 몸 떠는
빈 겨울나무들의 숲으로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그때까지 내 할 일은
머리 끝에서 눈을 뒤집어쓰고
눈사람되어 서 있는 일입니다
- CBS FM 허윤희의 꿈음의 '시가 있는 일요일' 코너에
소개된 詩(23.12.10)
[작가소개]
생략
[시향]
앞산 가득 함박눈이 쏟아집니다. 누군가 한 사람이 눈송이처럼 솔밭 산길로 쏟아져 오르고 있습니다. 필자는 창밖을 내다보며 안도현 「시인의 겨울 숲에서 」 시를 듣습니다.
‘그대 올 때는/ 천지사방 가슴 벅찬/ 폭설로 오십시오’
‘첫눈이 내리는 날은/ 왠지 그대가 올 것 같아/ 나는 겨울
숲에 한 그루 나무로 서서/ 그대를 기다립니다’
‘그대를 알고부터/ 나는 기다리는 일이 즐거워졌습니다’
아름다운 시 안도현 시인의 ‘겨울 숲에서’를 만나봅니다.
밖에는 천지사방 함박 폭설이 펑펑 쌓여가고 있습니다.
글 : 심상숙(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