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피치의 또 하나의 요령 - 펌
“2년 전 KBS에서 조연상을 받았는데, 연기대상 사무국으로부터 올바른 시상문화 정착을 위해 작가 연출 소속사 동료배우들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기로 하는 편지를 받았다. 독한 맘 먹고 왔는데, 아역상부터 줄줄이 그 얘기를 하더라. 때문에 시상식에서 엄마만 거론한 나는 주변에서 욕을 많이 먹었다.” SBS 주말극 ‘유리의 성’으로 조연상을 받은 탤런트 이한위 씨의 수상소감이다. 적극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물론 그 역시, 고마웠던 이들을 꼽긴 했다. “00 감독님, 00 작가님, 함께 고생한 선배님들 후배님들, 매니저 00, 00 원장님...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님...” 연말 시상식을 보며 이런 나열식 스피치에 질려버린 시청자가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상소감은 실로, 보는 이를 지치게 만든다. 화려한 쇼, 연기자들의 숨은 장기자랑, 한껏 차려입은 연기자들의 드레스 행진 등 다양한 볼거리 때문에 채널을 고정시키다가도, 이 지긋지긋한 나열식 멘트만 나오면 즉시, 채널을 돌려버리기 일쑤다. 어떤 생각으로 이런 멘트들을 남발하는 것일까. 물론, 이한위 씨의 수상 소감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어렵게 고지까지 오른 그들에게 고마운 이들이 한 둘이었으랴. ‘뼛속 깊이 느껴지는 그 고마움을 이런 자리 아니면 언제 이야기 하겠는가!’라는 생각으로 정말 끝까지 소감을 이어가는 연기자들의 심정은 십분 이해할 만하다. 허나, 연기대상 시상식 역시 시청자를 위한 하나의 예능 프로그램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멘트는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해외 시상식의 경우, 진행자나 수상자 모두 간단하면서도 재치 있는 멘트로 보는 이를 웃기고 울리는 상황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또한 하나의 쑈인 셈이다. ‘대상 공동수상 논란’에 휩싸인 MBC 시상식은 그야말로 ‘그들만의 잔치’에 가까웠다. 특히, MBC 특별기획 ‘에덴의 동쪽’ 팀은 ‘상 돌려받기 놀이’를 하는 듯한 인상까지 줬다.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은 작품에 시청률도 기대에 미치니 MBC측에선 그 노고를 치하하고 싶었을 터. 하지만, 시청자 입장에서 이런 놀이는 그야말로 불쾌할 따름이다. ‘에덴의 동쪽’ 수상자들의 멘트는 하나 같이 “00 PD님, 00 작가님, 고생하시는 스탭분들...”로 채워졌다. 보는 이로선 같은 멘트를 수번씩 반복해서 듣게 되는 상황. 그야말로 “고마 해라, 마이 했다 아이가!”라는 공격으로 입막음을 하고 싶었을 정도다. 그 밖에 KBS, SBS 등 3개 방송사 연기대상 모두 이 지루한 멘트의 행진이 계속됐다. 글쓰기가 쓰는 사람 위주가 아닌 ‘읽는 사람’ 위주가 되어야 하듯. 스피치 역시 하는 사람 위주가 아닌 ‘듣는 사람’ 즉 청중 위주로 해야 한다는 사실을 그들 모두 잊은 듯 했다.
3개 방송사 수상 소감 중 최악을 꼽으라면 SBS ‘조강지처 클럽’에 출연한 안내상이다. 그의 수상 전문을 정리했다.
“와우! 원수를 싸랑하라! 1년 내내 원수를 사랑하라고 그렇게 목이터져라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원수를 사랑해주시니까 기분 좋습니다. 언젠가 감독님이 문자를 주셨습니다. 형을 만나서 참 좋습니다. 저도 감독님을 만나서 참 좋습니다. 동지애는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1년 동안 매주 목요일마다 저희는 술을 마시고 울고 웃고 질책하고 격려했습니다. 배우분들은 저한테는 부모님이었고 형제였고 동생이었고 친구였습니다. 특히 오현경씨과 김희정씨 특별한 애정 보냅니다. 기분 좋은데 오늘 제가 술을 한잔 하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한원수라는 분 만나서 술 한잔 하고 싶은데 요즘은 잘 지내는지 바람은 안피는지 분식집은 잘 되는지 나화신한테 껄떡대고 있진 않은지 모지란한테는 잘 하는지 만나고 싶습니다. 그런데 연락할 길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한원수를 욕하고 했는데 저한테는 한없이 소중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놈입니다. 그런 놈을 만나게 해주신 문영남 선생님 아직도 어떻게 그 감사해야 할지 적절한 언어를 찾지 못했습니다. 너무 고맙고 그냥 좋은 배우되는게 보답하는 길이라 생각하고 그냥 좋은 배우 되고자 노력하겠습니다. 아자! 올 한해 힘들었던 것 같습니다. 내년 역시 썩 밝아보지는 않습니다. 이게 누구의 잘못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사과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입니다. 올해는 모쪼록 기필코 어떤 일이 있어도 제발 국민여러분 샤방샤방! 감사합니다.”
‘한복수’ 역할을 맡은 김혜선 씨의 멘트 또한 매끄럽진 않았다. 이 중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저의 남편으로 열연을 해주셨던 오대규 오빠, 손현주 오빠... 너무 감사드리구요.”라는 대목. 김혜선에게나 오빠지 시청자에겐 그렇지 않다는 점을 망각한 호칭이다. 이렇게 호칭을 잘못 부르는 연예인들을 시상식에서 종종 볼 수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글쓰기 강의를 할 때 호칭이나, 존대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많다. 예컨대, ①황석영 선생 ②황석영 선생님 ③황석영 작가 ④소설가 황석영 ⑤소설가 황석영 씨 ⑥황석영 씨 ⑦황 씨 중 어느 표현이 적절 하느냐고 물어보면 갖가지 답이 나온다.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결국 답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정답은 무엇일까? 스피치 또한 마찬가지다. 김혜선씨에겐 ‘오빠’일 수 있으나 보는 이에겐 그렇지 않다. 특히, 예능 프로그램도 아닌 시상식에서 사석에서나 어울릴 법한 호칭을 쓰는 것은 보는 이에게 불편함을 줄 수 있다.
그렇다면, 가장 돋보인 수상소감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SBS 연기대상을 수상한 문근영이 그 인물로 손색없다고 본다. ‘최연소’ 대상으로 화제를 모은 문근영의 수상 소감은 다음과 같았다.
이 외에 할머니, 자신을 도와준 사람들에 대한 짤막한 멘트가 곁들여졌다. 눈물로 범벅 된 얼굴로 서 있을 힘조차 없던 상황이었으나, 문근영의 수상소감은 명료했다. 다른 수상자들처럼 지루한 나열을 남발하지 않은 덕에 그녀의 멘트는 빛났다. 어린나이에 대상이라는 버거운 상을 수상한 그녀는 진심을 담아, 솔직한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전했다.
|
|
첫댓글 좋은스피치는 언제나 명료하다...군더더기를 과감히자르고 전하고자 하는바를 정확하게 전달... 저한테 꼭필요한...
그럼 우리 나라 한시 나 고전을 읽어봐 ..
감동 도가니탕이야 ^^
문소리의 수상소감이 난
이었다고 생각하는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