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의 바로미터(Barometer 잣대)
제자에게 “부처란 무엇입니까?”라고,
중국 송대의 ‘수산 성념’ 선사는,
질문을 받았다. 그때, “신부기려아가견新婦騎驢阿家牽”이라고 답했다.
이는 즉, ‘며느리는 나귀타고, 시어머니는 고삐를 잡는다’의 의미이다.
아마도 어떠한 상황이 발생되어서 일 것이다.
요즘 같으면, 뭐 같은 갑질녀가 되겠지만,
그것은 아닌 것 같고, 아마도 그 반대의 일 같다.
며느리가 아파서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생각하여 하는 행동 같은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들을 미소짓게 하는 흐뭇한 광경 중에 ‘부처님은 계신다’고 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솝 이야기』가 떠오른다.
아버지와 자식이 한 마리 나귀를 장에 팔러 나섰다.
둘이서 고삐를 잡고 있자, “한 사람이 타고 가면 될것을”이라고 길가는 사람이 말했다.
아버지는 자식을 나귀에 태웠다.
조금 가다 보니, 이번에는 “불효자식이네, 아버지를 걷게 하다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왔다. 그들은 당황하면서 서로 교대했다.
그렇게 하자, 다음에는 “자식이 불쌍하지 않은가.”라고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서 둘이서 나귀에 타기로 했다.
그렇지만 다음에는, “장에 팔 나귀를 피곤하게 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들은 드디어 둘이서 나귀를 매고 가기로 했다.
웃기는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우리들은 말에 잘 걸린다. 귀가 둘이 있는 이유는 잘 조화를 이루라고 하는 것인데 말이다. 우리들은, 이것과 비슷한 일들을 매일 같이 하고 있다.
일반인들은 사회의 일반적 상식의 잣대를 가지고 사물을 보고 있다.
그 잣대라는 것은, 즉 ‘며느리는 걷고, 시어머니는 나귀에 타는’ 그것이다.
그런데 거꾸로 되는 경우도 있다.
며느리가 아프면, 며느리를 나귀에 태우고 시어머니가 걷는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인정이고, 그것이 ‘부처님의 눈으로 보는 잣대’이다.
불타는, 아주 소소한 일상에서 상식을 초월한, 상대를 위하여 되는 작은 일을 하는 것이다.
부처님의 잣대를 가지고 사물을 보고, 부처님의 잣대로 행동할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부처님이라고, 스님은 우리들에게 일침을 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