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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코스이다
5코스는 외포리에서 강화터미널까지 비교적 긴거리인 20.2KM이다
어제 유스호스텔에 잠을 자고 아침 9시부터 약 7시간 오후4까지 작지않은 시간을 가야한다
거기에 많은 인원이고
또 어제 많은 거리를 걸은 상태이다
각오를 다시한다 아침 출발전에
5코스는 고비고개길이다
강화도를 동서를 횡단하는 종주이고
중앙에 고려산을 멀리서 보고 출발하여 반대편으로 고려산을 바라보고 끝내는 코스이다
다양한 지역을 통과한다 고인돌군,휴양림, 왕릉, 수련장, 저수지를 2개나 거치고 강화읍내도 통과한다
평소와같이 6시 기상했다
강화유스호스텔은 시설은 조금 낡은듯하다
그러나 아늑하고 도로에서 깊숙히 들어와있어 더욱아늑하다
청소년들을 많이수용하는 그런 시설인듯하지만
오늘은 그저 한가하기만하다
올라오는 입구오른편이다
캠프화이어장이 석모도를 바라보이는곳에 설치되어있다
숙소와도 경사가있어 뭔짓을 해도 별도이다
역시 인터네셔날이다
식당 강당 대형 회의실 야외음악당 텐트촌등 다양한시설이있다
우린 아침식사을 건너띠었다
과일 그리고 빵으로 대신했다
그리고 5구간 출발을 삼별초 항유비에서 시작한다
삼별초는 고려 무신정치(최충헌)가 종료되고 고려가 몽고에 속국이되면서
무신정치시 충성했던 좌별초,우별초 그리고 몽고에 포로가되었다 풀려나 결성한 신의군등 3단체가 모여
몽고에 지령을 받는 정부와 몽고군에 대항하여 싸우던 단체이며
강화도에서 결성하여 진도에 사령부가있었고 제주도에서 최후까지 저항하였단다
그래서 여기가 강화도임에도 하루방과 진도개가 같이 삼별초의 상징이 된다
이곳강화에는 삼별초말고도 아주 많은 역사가 거쳐간곳이다
이곳에서 이제 우린 5구간 대장정을 시작한다
이사진은 찍는사람이 없다
바로 마침 지나가시는분 있어 사진을 찍어주신다
이번 여행 처음으로 6명 전체얼굴 한화면에 넣었다
유허비 뒷면에 쓰여진 삼별초 공적내용입니다
이건 삼별초에대한 설명이고요
삼별초비 바로뒤언덕이 망양돈대입니다
8000명이 동원되어 쌓았다지요
그당시 강화인구가 대단했단 이야기겠읍니다
돈대 문 외부에서 본 내부입니다
네모속에 사람이지요
사람이없다면 공간이 많이 허전하겠지요
돈대내부 여장부분입니다
여장하나에 총안이 3개인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총안이 1개씩입니다
콘크리트를 사용하여 복원한것이 안타깝네요
복원이 원모양을 얼마나 따랐을까요?
돈대를 답사를 끝냈읍니다
그리고 이제 정식으로 5구간을 들어섭니다
비교적 초입은 쉽게 찾았구요
곶청굿당을 찯아갑니다
마을 골목을 가로지른 고목이 눈에 확들어옵니다
생긴 모양이나 수령이 범상하지 않읍니다
자세히 살펴보아도 신기하기가 더합니다
누군가 나무속이 빈나무라한다?
대나무같이
이름은 모르겠다
골목을 가로막았지만 그대로가 정겹다
그리고 잠시 길을 잃었다
그래서 곶창굿당을 찾아 도로를 오른다
틀린길인지는 알지만 목적지는 도달할수있을거같다
그리고 언덕을 힘들게 올라서
곶창굿당집에 도달한다
여기서이야기하는 득제장군은 임경업장군이란 설이있다
임경업장군이 왜? 굿당에
청나라가 조선을 침입했을때 임경업장군은 명나라의 협조를 얻어 청나라를 물리치려했답니다
그래서 장사꾼들을 데리고 위장해서 명나라로 가려했다지요 물론 청나라 몰래
그와중에 일행들이 장군의 뜻을 알아체고 식량을 모두 바다에 버렸답니다
식량이 없음을 알아챈 임장군이 선원들에게 가시나무를 잘러오라 했읍니다
그 가시나무(엄나무)를 물 빠지는 갯벌에 세우게했고
물이 들어왔다 나간후 다시 갯벌에 나가보니 가시마다 고기가 잔뜩 걸려있었답니다
그고기들은 조기였답니다 그곳은 연평도였답니다
그때부터 임장군은 조기의신, 그리고 풍어의 상징으로 불렸답니다
그래서 임경업장군은 풍어제에 꼭 등장하는 물고기의 신이 되었답니다
저기 그림속에는 풍어를 기원하는 임경업장군도있을것이고
억울하게 죽은자의 신이되는 최영장군도있고요
영웅적의미에 김유신장군도 있을것입니다
굿당 전경이며
평시에는 관리인이 없는듯합니다
이제 산길로 들어섭니다
바람도 솔솔불고 햇볕은 나무가 가려주고
바닥은 푹신되고 참으로 걸을 맛납니다
이런 좋은길 어느정도 갔을무렵입니다
덕산 산림욕장의 MTB 코스인듯합니다
넓고 편안길이 연속입니다
간혹가다 깊은 협곡도 우리의 눈을 즐겁게합니다
그리고 삼림욕장 입구에 도달했읍니다
주요시설을 살펴봅니다
그리고 숲에대한 설명도 쓰여졌지만
우린 글이 많으면 그냥가는 습성이있어서
그리고 바로 나타나는건 내가 저수지입니다
멀리 고려산정상 안테나가 보이지요
아까보단 많이 가까워졌읍니다
이곳은 내가면입니다
모든게 내가합니다
여기가 내가 저수지입니다
그리고 이건 내가 도서관입니다
그리고 뒷 건물은 내가 보건소입니다
그리고도 내가 초등학교, 내가 성당 입니다
모든것이 긍정적입니다
모든걸 내가 합니다
참 좋은 동네이지요?
그런 긍정적인 마음이 이런 이쁜집을 만들지요
돌담이 포근하고 다정합니다
내가 경찰서입니다 앞에 반사경이 비친 두사람 모습이 정겹읍니다
저수지 넘어가다가 좀 지친듯합니다
아침도 안먹였잔아요
그래서 누군가가 투덜됩니다
그러면 쉬어야겠지요
저수지 배경으로 간식 합니다
배가 고파도 즐겁읍니다 물론 배가 부르면 더욱 즐겁지만
우린 목표를 잡으면 꼭 달성 하거든요
그래서 더욱 즐겁읍니다
아직은 말들이 많아요 힘이 많이남았지요
이젠 고려산으로 들어섰지요
역시 큰산 답게 버섯이 보입니다
물론 못먹는것일겁니다
더큰버섯입니다
먹는걸까요? 못먹는걸까요?
못먹는다 맞읍니다 맞고요 우린 또가야지요
구경 그만하고요
우~와 그림으로만 보던 고인돌입니다
여기 왕창 큰놈에서부터 저기 새끼고인돌까지
돌먼이 고인돌이지요
돌이 우리말이나 서양말이나 같은 뜻이네요
세계문화유산으로 외국인들이 왔다간 모양입니다
고인돌 크기로 그당시 인구를 측정한다지요
그리고 돌을 올려놓고 흙을파서 바닥을 고이는 공법이랍니다
물론 이것은 북방식고인돌이지요
이렇게 인위적 포즈로 사진 찍고
아주 자연스런 폼으로 포즈를 만들어 보았어요
우리 연기가 통한거 같은데요
잘나왔지요?
우린 너무 고정적으로 사진을 찍지요
이곳 고인돌에대한 설명입니다
글이 그리 길지않으니 읽어보세요
고인돌 군을 지나 내려가는 길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그림입니다
참 좋구나
나들길이
파아란 가을 하늘이 보이시나요
그밑에 목재 데크있지요 고려산 낙조대입니다
예전 고려산 등반시 몇번 간적이있었지요
아래서 올라가지 않을걸 생각하니 괜히 기분이 좋아지네요
다시 농가를 지납니다
사람은 안보이고 목장의 소들이 우릴 반깁니다
역시 반사경에 비친 일행이 여유롭지요?
잠깐 밤나무의 유혹에 길을 잃었지요
그리고 또다른 등산객으로부터 으름나무에대한 이야기를 들었읍니다
지천에 으름나무라나
한개 얻었읍니다
그리고 먹었지요
목이 한동안 아렸읍니다 씨까지 먹어서 그렇답니다
지금부턴 나무 가지만 보고다닙니다
보람이 있어 작은 열매하나 발견됩니다
운이 나쁜놈이지요
맛 못본 일행이 먹었읍니다
요건 고엽나무랍니다
열매가 아직 안익었답니다
그냥 뒷사람을 위해 넘어갑니다
무속신앙의 상징일겁니다
처녀의 한을 풀어주는거 아닐까요
여자 치마를 보면
그냥 눈으로 인사합니다
다시 마을길입니다
왼쪽길 1.2KM 또 고인돌이 있다는데 난 못갑니다
동네 주민 아주머니 밤줍는 망태차고 우리가는길 참견하십니다
그길로 가야하는데 그냥간다고 막 뭐라하십니다
그냥 밤이나 주우시지요 아주머니!
그리고 마을길 또 누리길 같은길을 통과하고
유격장과 같은 국화리 학생수련장에 도착합니다
돌아서 그냥 내려가는데 윗쪽 돌담의 한옥집이 마음에 걸립니다
유격장 외나무타기 시범도 보이며 내려서는데
윗쪽에 홍릉이 있다네요
다시오릅니다 기와집이 홍릉?
아닙니다
만녕제라고 제사를 올리는 집입니다
그리 살펴볼 건 없는듯하지요
대문에 빗장걸이가 예전에 우리집도 저런 모양이었을때가 있었는데
홍릉은 더 올라 가야합니다
홍릉 가는길 약400미터 이지만 경사가 장난이 아닙니다
코가 땅에 답니다
용감하게 시작했지만 바로 핵핵댑니다
그렇게 올라와서 숨을 헐떡이는데
이 고재형형님의 시귀절은 하나도 힘들지 않은듯 우릴 만났읍니다
이홍릉은 고려23대왕인 고종의 릉임을 알려줍니다
별로 다듬어지지 않은 돌로 축대를 쌓았고요
무덤은 수수하기 이룰때가 없읍니다
몽고에 무릅 꿇은 왕이라 그랬을까요?
홍릉을 배경으로 여인들이 사진을 찍지요
올라오기 힘들었을 텐데 웃으며 브이 자를 만드네요
얼굴표정이 조금씩다른 문인석이 4개가 있읍니다
저는요
지쳤어요
숨을 들이 쉬느라 일어서지도 못하고있지요
너무힘들어 고개를 숙였답니다
다시 내려와 유격장 기구에 올라 봅니다
흔들어도 보고 영차영차 구호도 넣어봅니다
무섭지는 않은가 봅니다
모두들 즐거운 표정입니다
조심조심 내려옵니다
즙겁게 즐겁게말이지요
12시가 지났는데요
오늘 아직 식사를 못했읍니다
사람은 6명이고 라면은 2개입니다
모두모두 양보하는 맘으로 맛있게 먹었읍니다
종이팩 위에다 받기도하고
귤껍질을 식사라로 쓰기도하지만
모두 맛있게 먹는군요
풍족하진 않지만 마음은 흡족합니다
뜨끈한 국물이 숙을 쑥 풀어주지요
이렇게 라면 요기를 끝내고
마을로들어섭니다
산에 마을이 나온다는 건 산이 끝난다는거겠지요
마을에선 콤바인으로 벼베기가 한창입니다
참 편해졌지요?
저걸 손으로 한다면 많은 사람이...
마을을지키는 커다란 나무이지요
너무 커서 화면에 들어오질 않는군요
그리하여 고려산 등산로 입구입니다
뭐 이제는 다왔다는거아닐까요?
정말 이양반 안다닌 곳이 없네요
대단하십니다
그땐 차량도 없었을 텐데
이제 국화 저수지입니다
저수지 주변이 생태문화의 길로 꾸며 놓았네요
우리 코스는 이길 반정도 겹칩니다
국화저수지라 국화꽃이면 더 좋았을껀데
할수없지요 코스모스라도 멋을 내봅니다
고구마케는것도 장사입니까?
어째든 서로가 뜻이 맞으면 거래가 되는거지요
호수위 오리 2마리가 다정하게 떠다닙니다
샘이났는지 이쪽오리도 짝을 맞춥니다
그리고 저수지 끝부분 일정하게 형성된 울타리가 보입니다
울타리는 일정한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지요
우리의 생활도 저렇게 일정한 법칙이 있겠지요
저수지주변 민가 뜰에 핀 꽃입니다
너무 이쁘지요?
요건 쑥부쟁이꽃입니다
슬픈 전설이있는데 정원에서 꽃피었네요
요건 뭐라했더라?
잊었읍니다
잘아는 이름인데
요건 어려운이름인데
강화군민체육대회 사용할 꽃풍선 차입니다
미녀분이 환호하는 군민을 향해 손흔들고있지요
박수~~~~짝짝짝
그리고 서문입니다
서문은 보수공사 중입니다
가능하면 원본과 비슷한 보수가 됐으면하는 바람입니다
서문 뒤편으로 성곽이 쭉 이어져있읍니다
그리고 반대편 성곽입니다
여장부분 시멘트로 이음을 연결한것이 쬐끔 속이 아픔니다
산위로 쭉 연결되어있는데 남산 넘어 남문으로 연결되겠지요
고려때부터 외세에의해 짖고 헐고를 거듭하면서
민족의 슬픔이 애환으로 느껴집니다
우리도 남문 쪽으로 갑니다
성에는 물의흐름을 연결하는 수문이 필요하지요
유사시 또는 적이 이곳을 통해 잠입이 쉬울수있으므로 그걸 방지하는 구조로 지었을겁니다
물은 흐르고 사람은 막고 말이지요
위 수문에 대한 설명입니다
조선 숙종때 만들어졌군요
고종때 군사훈련을시키던곳이랍니다
아마 이이름을 따서 논산훈련소가 연무대가 되지않았을까요
한일합방 조약을 맺은 슬픈역사의 장소이군요
연무당에대한 설명입니다
이곳은 남문가는길 관광안내소 옆에있는 우물입니다
상당히 중요한듯 설명되어 있는데 사실 뭔 뜻인지 하나도 모르겠읍니다
내눈에는 그냥 우물입니다
드디어 남문에 도착했읍니다
안파루라고 쓰여여있지요
晏늦을안 波물결파 樓다락루입니다
강화산성에대한 설명이고요
우리일행 마짖막 터미널외에는 모든일정 마쳤읍니다
만세입니다
만세인가요? 항복인가요?
다시한번 대한민국 만세!
좋읍니다
참잘했읍니다
남문 전경입니다
그리고 이젠 정말 마지막입니다
마지막 골인을 위해 끝까지 달려 갑니다
그리고 터미널에 도착했어요
관광안내소 얼른 둘러서 여권에 도장 받고
외포리가는 버스시간 물어 봅니다
4시출발 31번버스 알려주십니다
바로 5분전입니다
버스기다립니다
9번 홈에서 31번 버스 타면 갑니다
그러면 우리 승용차 찾아서 서울로 가면 일정이 끝납니다
버스타고 20여분 외포리 도착하고
저녁은 강화에서 해결하기로 합니다
그리고 1구간 연미정 할머니 식당으로 결정하고 그리로 갔읍니다
새로온 친구들에게 맛있는집 소개 시켜주고싶어서요
물론 그들은 1구간 돌지 않아서 연미정도 모름니다
할머니에게 6인분 주문해놓고 연미정구경 시켜드립니다
돈대에 들어서자마자 500년된 느티나무롸 오래된 정자를 보고 눈이 확트이는 듯합니다
물론 강넘어 북한은 덤으로 구경하고요
느티나무가 얼마나 큰지를 우리사모님 몸으로 증명해드립니다
강화에서 알게된 할머니밥집 냄비밥 맛있게먹었지요
그많은 손님 혼자서 즐겁게 일하시는 할머니에 감탄하는건 덤이지요
그러므로서 1박2일 4,5코스 종주를 마쳤읍니다
조금 아쉬웠던건 5코스구간을 안내지도와 꺼꾸로 돌았더니
길표시가 반대쪽으로 가는사람 위주가 되어
부분적으로 많이 헤깔렸답니다
만약 주관하시는 분이 있으시다면
반대로가는 사람도 고려해주셨으면 더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금도 좋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