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지은 집
책으로 집을 지으라면 짓겠다
하지만 책에 집을 지었다
그날 정의 여고 후문 작은 틈
이름 없는 헌책방을 만나고
텔레비전 중독자였던 꼬마는 처음 책의 맛을 알았다
오싹하고 조마조마하고 씩씩한 맛이었다
새우깡보다 짭짤하고 바나나킥보다 달았다
몽정을 한 뒤로는 이카루스처럼 어두웠다
어둠 속에서 미로를 헤매며
꿈보다 두려움이 많았다
먼 것만이 가까웠고, 죽은 자들만이 진실을 알았다
간신히 일기를 썼다
스무 살, 밥보다 책이 좋았다
책 냄새가 좋았다
컴퓨터 바둑만 두다가 산골로 간 책방의
쥐오줌 냄새와 간질간질한 좀과 책이
허옇게 붙어 있던 애벌레집처럼
책에 붙어 연명하던 것들이
은사시나뭇잎 흔들리는 연병장
육군수첩 속 청춘의 복역은
중음천 안개 같았다 읽지 않을
책을 사고 읽지 않을 글을 썼다
읽을 수 없었다
간혹 저쪽 세계와 통방하고
살아보지 못한 삶을 알았다
삶이 중독인 것을
그래서 더 살고 싶은 것을
책의 중독이 알리바이를 제공할 거 같았다
한 달에 열 번 책을 사며
내가 모은 것은
세상의 신기한 꿈일까 망상일까
사랑일까 아니면 어떤 춤을까 조각일까
책으로 지은 집도 집이니
책에 집을 지었다 그레고르 잠자처럼
뒤척이다 깨면 세상이 그리웠다
삶으로 이어지는 오솔길이
밀물지는 햇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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멩이의 문예글
(습작)시
책으로 지은 집(24.11.1)
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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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1.01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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