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7년 7월 8일 일요일 아침, 캐나다의 카누 호수 선착장에서 카누 한 척이 호수를 향해 조용히 출발 했습니다.
낚시를 간다며 출항한 작은 카누는 그날 돌아 오지 않았습니다. 그 배를 몰고 나간 사람은 8일 후 익사체로 발견 되었습니다.
공식적인 사인은 실수에 의한 익사였지만 지금까지 그의 사인에 대해서 의문이 끊기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카누 호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낚시광이자 그 지역의 가이드였으며 산불 소방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는 20세기 초, 가장 영향력 있는 캐나다 화가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톰 톰슨 (Tom Thomson /1877 ~ 1917) 입니다.
초봄 Early Spring / 21.5cm x 26.9cm / oil on wood panel / 1917
곳곳에 눈이 남아 있지만 봄이 온 것이 맞습니다. 눈이 녹은 곳마다 파란 하늘을 담고 있고 마을을 둘러 싸고 있는 얕은 산들은 짙은
회색을 벗는 중입니다. 점차 햇볕이 짙어질 것이고 한 겨울을 상록으로 남았던 큰 나무들도 연두색이 짙어지면 그 속으로 숨겠지요.
굵은 붓 칠에서 ‘봄 덩어리’를 느낍니다.
톰슨은 온타리오의 클레어몬트 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농사를 짓는 집안의 열명의 아이 중 여섯째였으니까 대가족이었지요.
자란 곳은 항구 도시 오언사운드 근처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재능을 보였고 그림뿐만 아니라 바이올린과 만돌린도 연주했다고
하는데 다재 다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유년 시절이었습니다.
노던 레이크 A Northern Lake / 21.6cm x 26.7cm / oil on composite wood-pulp board / 1911
캐나다 서부의 노던 레이크에 저녁이 찾아 오고 있습니다. 아스라히 보이는 산은 푸른색으로 젖었고 그 위 하늘은 붉은 잔광이 가득합니다.
어둠은 점점 다가와 호수 건너 숲에 도착했습니다. 물을 건너는 것은 이제 잠깐이면 됩니다.
앙상한 나무들은 다시 어둠에 잠길 것이고 적막만이 남겠지요.
스물 한 살이 되던 해, 톰슨은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는 기계회사에 견습생으로 입사하는데 늘 지각을 하는 바람에 해고를 당합니다.
회사를 그만 둔 톰슨은 2차 보어 전쟁에 군인으로 지원합니다. 돌파구 같은 것이 필요했겠지요.
그러나 건강상의 문제로 결국 다시 캐나다로 돌아 오게 됩니다. 아직 그의 인생과 재능이 연결되지 않은 것이지요.
북쪽 강 Northern River / 115.1cm x 102cm / oil on canvas / 1915
강 주변으로 별천지가 펼쳐졌습니다. 강은 주변의 것들을 안고 조용히 흐르고 있고 강가에 서있는 나무에는 오색 등을 가지마다
걸어 놓은 듯 단풍이 올라 앉았습니다. 숲이 감추고 있는 화려함과 고요함이 무심하게 찍은 듯한 붓 자국마다 담겨 있습니다.
톰슨은 채텀에 있는 상과 대학에 입학합니다. 그러나 8개월 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미국 시애틀로 건너갑니다.
당시 시애틀에는 그의 형이 운영하고 있는 상업학교가 있었습니다. 그 무렵 시애틀은 골드러시로 인해 사람들이 몰려 들던 곳이었지요.
이 곳에서 엘리스라는 여인과 만나 짧은 로맨스를 가졌는데 결혼까지는 이어진 것 같지 않습니다.
스모크 호수의 흰 모자들 White Caps, Smoke Lake / 18cm x 25.5cm / oil on canvas on masonite / 1913
화가의 눈에는 큰 모자가 떠나는 것처럼 보였을까요? 높이 솟아 오른 구름은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지만 스모크 호수 위로 거대한
잿빛 구름 덩어리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햇빛이 숨어버리자 호수에는 잔물결이 일었습니다.
계절을 짐작하기 어렵지만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은 기대감과 아쉬움이 겹치기 때문인지 늘 하늘이 어수선했던 것 같습니다.
1904년, 톰슨은 캐나다로 돌아옵니다. 당시 온타리오에 있는 미술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있던 윌리엄 크룩생크와 함께 2년 정도
공부를 하는데 실제로 톰슨은 미술 공부에 관한 한 거의 독학이었습니다.
1907년, 토론토에 있는 그립이라는 디자인 회사에 그래픽 디자이너로 입사하면서 전문가로서 경력을 쌓아 갑니다.
알곤칸 공원 Algonquin Park / 1915
숲 사이로 보이는 산 꼭대기마다 붉게 물들었습니다. 지는 해가 하루를 정리하면서 남겨 놓은 가슴 시리게 하는 풍경입니다.
마치 온 힘을 다해 남은 것들을 모두 태워버리는 듯한 저녁 햇빛은 이제 조금씩 사위어들 것입니다.
장엄한 하루의 끝을 이렇게 간단 명료하게 담을 수 도 있었군요.
디자인 회사에 근무할 때 톰슨은 몇 명의 친구를 사귀게 됩니다. 나중에 톰슨이 세상을 떠나고 그 친구들은 ‘Group of Seven’을 결성하게
되지요. 그들은 함께 캐나다 주변을 함께 여행했고 작업도 함께 시작합니다.
1912년, 톰슨은 온타리오주 남부에 있는 알곤킨 공원을 방문하게 됩니다. 화가로서의 그의 운명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조지아만의 여름 해변 Summer Shore, Georgian Bay
이제까지 제가 본 여름 해변 중에서 가장 화려한 해변입니다. 바닷물에 부서진 햇빛은 각자의 색으로 떠 있어서 마치 거대한 물고기 떼를
보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윤슬이라는 아주 아름다운 단어를 알게 되었습니다. 윤슬은 햇빛이나 달빛에 비치어 반짝이는 잔물결을
말하는 것이더군요). 몸을 바람에 맡긴 해안가 나무들은 적당히 흔들거리고 있고 해안으로 이어지는 길은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여름 해변이지만 느낌은 가을과 비슷합니다. 아마 화가와 우리 같은 일반인의 차이이겠지요.
지금은 캐나다 국립공원인 알곤킨 공원에서 톰슨은 자연에 흠뻑 빠져들고 맙니다. 그 곳에서 톰슨은 풍경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가끔은 그가 찾아낸 풍경을 그리기 위해 공원 안으로 며칠씩 사라지곤 했습니다. 그때 그는 오일 스케치를 위해 작은 크기의 나무 판을
사용했는데 가지고 다니기 편했고 나중에 화실에서 큰 작품으로 옮길 때도 유용하게 사용되었습니다.
그의 재능이 드디어 가야 할 길을 찾은 것이지요.
달빛과 자작나무 Moonlight and Birched / 1915
달빛은 노랗게 땅을 물들였고 자작나무 가지에 남은 잔설은 하얗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림자를 길게 끌고 서 있는 자작나무들은 밤이
깊어가는 호수를 물끄러미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교교한 달빛 아래 고요함이 자리를 잡고 있지만, 그러나 쓸쓸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달빛이라면 어디선가 정령들의 이야기가 들려 올 것 같거든요.
1913년, 온타리오 미술가 협회에서 톰슨의 첫 번째 전시회가 열립니다. 그리고 이 곳에서의 전시회는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 후로도 계속 됩니다. 국립 캐나다 미술관에서 그의 작품을 구입하면서 그는 온타리오 미술가 협회 회원이 되고 그는 전업화가가 되기
위해 1914년 그 동안 함께 살던 동료들을 떠나 카누 호수에 있는 자신의 통나무집으로 거처를 옮깁니다.
배 Bateaux / 21.5cm x 26.8cm / oil on wood / 1916
바닥이 평평해서 강에서 주로 사용하는 배들이 보입니다. 선착장에 한가롭게 머물고 있는 배는 모두 붉은 색입니다.
숲이 우거진 강을 따라 오르내리는 모습이 마치 꽃잎처럼 보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상류에서 물 위에 실어 보낸 통나무들을 가두는 곳, 일꾼들이 보이고 그 너머로 방금 배 한 척이 도착했습니다.
생명력이 넘치는 풍경입니다.
전업작가의 길을 시작했지만 톰슨의 생활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가 살아 생전 판매했던 그림은 몇 점 되지 않았습니다.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 그는 산불 소방수, 공원관리원, 공원 안내원 등의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림 그릴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 때 토론토의 외과 의사였던 제임스 맥컬럼 박사는 톰슨이 전업화가가 될 수 있도록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는 말이 이럴 때 사용되는 것이겠지요.
뱅크스 소나무 The Jack Pine /127.9cm x 139.8cm / oil on canvas / 1916~1917
뱅크스 소나무는 거친 땅에서 자라는 소나무라고 합니다.
한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는 소나무이지만 해가 지는 겨울 저녁에 붉은 색으로, 검은 색으로 물이 들었습니다. 하늘에 남은 햇빛은
마치 색색의 벽돌을 쌓은 듯한 모습이고 호수는 그런 하늘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잔설이 남아 있는 산은 어둠 속에 잠기고 있습니다.
하늘을 블록처럼 표현 할 수 있는 화가가 몇이나 있었을까요?
톰슨은 색을 다루는데 기존의 화가들과는 달랐습니다. 잘 사용되지 않는 색을 만들기 위해 물감들을 섞었고 넓은 붓으로 눈부신
온타리오 풍경을 자유분방하게 묘사했습니다. 아마도 기존의 제도권 교육의 틀에서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독학을 했기에
가능한 것이었겠지요. 그의 그런 작품은 유럽의 후기 인상파 화가들, 예컨대 고흐나 세잔과 닮았다는 평을 받았습니다.
서풍 The West Wind / 120.7cm x 137.9cm / oil on canvas / 1916~1917
하늘 저편에서부터 구름이 몰려 오고 있습니다. 구름을 따라 바람이 들어 왔고 호수 위에도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내려다 보았으니 하늘도 다양한 색으로 물들 수 있겠지요. 문득 쉘리의 ‘서풍의 노래’라는 시가 떠 오릅니다.
시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누런, 검은, 파리한, 혹은 빨간 열기 띄운
열병에 걸린 저 무리들, 오, 너는
그 무리들을 검은 겨울의 잠자리로 몰아친다
시와 그림이 닮은 꼴 아닌가요?
이 작품은 앞서 ‘뱅크스 소나무’와 함께 톰슨의 대표작 중 하나로 평가 되고 있습니다.
1917년 7월, 그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피서객에 의해 발견된 그의 주검은 익사로 공식 표기되었고 다음 날 카누 호수 근처에 묻힙니다. 그러나 이틀 뒤 그의 형 조지에 의해
다시 그의 주검은 가족묘로 이장을 하게 됩니다. 세상을 떠나고도 편하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떤 여인과의 사랑 때문에 또는 자신의 미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에 대한 실망감으로
자살했다는 말도 있고 호수 근처의 사람과 싸우다가 죽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밀렵꾼들에 의해 살해 되었다는 추정까지 그의 죽음은 여전히 논란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