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소년이 그린 ‘웃는 얼굴’, 길거리에 예술을 심었다
ㅡ신세계백화점과 협업한 그라피티 디자이너 사라이바 인터뷰ㅡ
송혜진 기자
파리로 이사 온 10살 소년은 친구가 없었다. 스웨덴에서 태어나 포르투갈에서 자랐다. 번역가 어머니와 화가 아버지 손을 잡고 프랑스 파리로 건너온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프랑스 말은 낯설고, 부모님은 바빴다.
13살쯤부터 외로움을 이기려고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입꼬리가 귀에 걸리게 웃는 얼굴이었다. 자신과 달리 환히 웃는 얼굴. 아이는 그 얼굴을 보며 묘한 행복감을 느꼈고, 자신의 이름 첫 글자를 따서 ‘미스터 에이(Mr.A)’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땐 미처 몰랐다. ‘미스터 에이’의 웃는 얼굴이 자신의 인생까지 바꿔놓을 줄은.
안드레 사라이바(Saraiva·52)는 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 같은 현대 미술가 다음으로 흔히 ‘낙서’로 오해하는 그래피티(Graffiti·벽면에 그리는 그림으로 ‘거리를 바꿔놓는 예술’로 분류됨) 분야를 새로운 대중미술의 장르로 끌어올린 인물로 평가 받는다.
지난 달 말 신세계백화점과의 협업으로 한국을 방문한 사라이바를 서울 강남에서 만났다. 신세계백화점은 이달 27일까지 본점·강남점 같은 주요 점포를 사라이바와 협업한 작품으로 온통 장식하고, 쇼핑백과 사은품까지 그의 대표 캐릭터 ‘미스터 에이’로 꾸민다.
◇ 소년이 그린 웃는 얼굴, 거리 예술을 바꾸다
1980년대는 하위 문화가 분출하던 시기다. 힙합 음악에서 영감을 받은 강렬하고 거친 색감, 분노와 저항의 메시지가 벽을 뒤덮었고, 그게 곧 ‘그래피티’라고 인식됐다. 사라이바는 그 편견을 뒤집었다. 홀로 형광 분홍 빛깔의 스프레이 페인트를 썼고, 웃는 남자 캐릭터 ‘미스터 에이’를 그려넣었다. 왜 하필 분홍색이었을까?
“스프레이 컬러를 사려고 가게에 갔더니 검정이나 파랑 스프레이는 다 팔리고 없더라고요. 그래피티엔 다들 그런 색을 쓰잖아요?(웃음) 대신 아무도 안 사가서 쌓여있는 페인트가 있었어요. 핑크였죠. 전 결국 그걸 샀고요(웃음)!”
분홍으로 그래피티를 그리는 거리 예술가는 처음엔 어디서도 환영받질 못했다. “보통 사람들은 그래피티는 남의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는 불법 작품이니 싫겠죠. 반면 그래피티 예술가들은 제 그림이 저항정신 없는 소녀의 낙서라고 했고요. 한마디로 왕따였죠(웃음).”
세상은 그러나 곧 사라이바 작품에 열광했다. 사랑과 긍정, 평화를 향한 갈망이 그의 담벼락에 있었다. 2004년 도쿄 파르코 미술관, 2006년 파리 그랑 팔레 전시에 참가했고, 2011년 미국 뉴욕에선 ‘Andrépolis’란 이름으로 대규모 개인전을 열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 현대박물관(MoCA LA), 독일 바덴바덴 프리더 부르다 박물관에도 작품이 전시됐다.
◇”세상은 사랑이 필요하니까”
사라이바가 그리는 캐릭터 ‘미스터 에이’는 자세히 뜯어볼수록 재밌다. 담벼락 그림에 쓰이는 캐릭터지만 미스터 에이는 보통 전통적인 클래식 정장 모자에 정장 구두 차림이다. 사라이바는 “모순이 주는 매력을 말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낙서로 메시지를 전한다고 꼭 찢어진 청바지나 징이 박힌 가죽재킷을 입은 캐릭터가 그려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보다 정중한 차림을 한 신사가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미스터 에이는 늘 X,O 모양의 눈을 하고 있기도 하다. 사라이바는 “윙크를 던지는 것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고, 동시에 입맞춤과 포옹(XOXO·kisses and hugs)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세상엔 사랑이 더 필요하잖아요.”
샤넬, 루이비통, 오프화이트 같은 명품 브랜드와도 계속 협업해 온 사라이바다. 세상에 저항적인 목소리를 내는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상업적인 브랜드와의 손잡는 것이 모순은 아닐까. 사라이바는 고개를 저었다.
“제가 처음 돈 주고 산 미술작품이 뭔지 아세요? 키스 해링 작품이 새겨진 5달러짜리 티셔츠였어요. 이후에 더 비싼 미술작품도 많이 샀지만, 제겐 그 티셔츠가 제 첫번째 수집품이고, 지금도 입고 있죠. 제 작품이 누군가의 ‘키스 해링’ 티셔츠가 될 수 있다면, 망설일 필요가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