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하늘에서 멧돼지가 떨어졌다 ●지은이_유승도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3. 4. 11
●전체페이지_104쪽 ●ISBN 979-11-91914-38-2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
자연과 시와 삶이 하나가 된 자연의 철학자가 되다
자연의 철학자 유승도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하늘에서 멧돼지가 떨어졌다』가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의 가장 큰 특징은 자연과 시와 삶이 하나가 되는 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것은 이 시집의 표제작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유승도 시인은 강원도 영월 만경대산에서 자급자족의 농사를 지으며 산다는 건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연유로 그는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삶을 살면서 친자연적인 시를 써왔다. 이 시집도 그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자연과 시와 삶이 하나가 된 철학자의 사유가 빛난다.
자연 속에 파묻혀 사니 좋겠네/서울도 자연인데 뭐/그런가?/사람이 자연인데, 그들이 만든 도시가 자연이 아닐 리가 없잖아//친구는 전화를 급히 끊었다 바쁜 모양이다 호랑지빠귀는 동산에 해가 올라 숲을 환하게 만들었는데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저 새도 바쁘구나
―「서울도 자연이다」 전문
문득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서 “자연 속에 파묻혀 사니 좋겠”다는 말을 듣는다. 시인은 "서울도 자연인데", "사람이 자연인데, 그들이 만든 도시가 자연이 아닐 리가 없잖아" 라고 답한다. 인간 중심의 사고의 경계를 지우려는 이 시집의 의도가 짧은 문답에서 드러난다.
산이 구불구불 맥을 이뤄 위로 아래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꿈틀꿈틀 거대한 벌레가 기어가는 모습이다 가만히 있으면서도 쉼 없이 나아가는 산이 부럽기도 하다/사람들이 봉우리마다 이름을 지어 자신의 세계로 끌어들인 것도 산이 부러워서일 거다/사람은 산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스승으로 받들기도 한다 어떤 이는 스스로 산이 되기도 한다/산은 가만히 있기에 되지 못할 게 없다
―「산을 보면서」 전문
"사람은 산의 친구가 되기도 하고" 산을 "스승으로 받들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스스로 산이 되기도 한다"며 사람과 산 사이의 경계를 지운다. 그리고 산에서 살아가는 시인은 온몸으로 경계를 향해 “쉼 없이 나아”간다. 산은 때로 “친구”나 “스승”의 구체적인 의미와 결부될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 시인에게 산은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은 채 “되지 못할 게 없”는 유일한 대상이기도 하다.
얘가 부처여, 자기 몸을 내놓아 우리가 거하게 먹고 마시도록 해주니
그렇긴 그려, 남을 즐겁게 해주는 게 쉬운 일인감
이 골짜기 저 골짜기에 흩어져 사는 친구 다섯이 모여 깊어가는 밤을 술잔에 따르는데
우지직 우지지직, 계곡의 물소리를 죽이며 보이지 않는 소리가 다가온다
아이구, 윗집 옥수수는 오늘로 다 먹었구만
소리가 보통이 아닌데, 바위만 한 놈이 분명해
―「하늘에서 멧돼지가 떨어졌다」 부분
멧돼지를 잡아 “거하게 먹고 마시”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또 다른 멧돼지가 농작물을 다 망치고 있는 현장에서 “아무도 멧돼지를 쫓으려하지 않”는 것 역시 다른 한편으로 자연스러운 일이 된다.
멧돼지가 “엄니가 나를 살펴준 거보다 더 살뜰히” 새끼들을 대하는 모성이나, 인간의 공격에 맞서 적절한 상황 판단을 하는 “영리”함을 보여주는 일화들을 통해 “친구 다섯”이 나누는 이야기의 핵심은 아예 멧돼지의 행위가 차지하게 된다. 멧돼지를 안주로 삼고 있던 술자리에서 말이다. 이 아이러니함은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멧돼지와 다르지 않은 존재임을 보여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피해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기후 재앙이라는 말이 일상어가 되었다. 원인을 파악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자연에 대한 인간의 오만한 자세를 지적하는 말이 공통적으로 나오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인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점이다. 즉 자연은 사람의 또 다른 이름이다. 이에 유승도 시인은 자연 그대로의 인간 삶에 초점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인위를 최대한 배척면서도 인위 또한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도 간과하지 않는다. 따라서 ‘인위를 배척한다’는 말은 자연을 밀어냈던 인간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것이다. “비탈밭과 하늘의 경계선이 보이지 않았다”고 시인이 토로하듯 자연과 인간의 ‘경계’를 지우고 자연의 철학자로 거듭나는 인간의 참모습을 이 시집은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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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제1부
즐거운 죽음·11
구렁이 위에서 자다·12
강물 소리에 젖다·13
하늘에서 멧돼지가 떨어졌다·14
겨울 산책·18
3월의 눈·19
할머니의 두부·20
내일은 설날·21
어떤 날·22
진눈깨비·23
눈·24
겨울비는 뭣하러 자꾸 내린다냐·25
월동 준비를 마친 몸·26
제물·27
염소 도축장 너머·28
제2부
봄 햇살·31
봄비와 변신·32
꽃은 부른다·33
낙화·34
노루귀·35
나와 세계·36
아내가 따준 산딸기를 먹다·37
꽃·38
상사화·39
꽃향기·40
어둠이 밀려오면·41
자유·42
늦가을, 겨울로 가는 길을 걷다·43
참새 동네·44
저녁이 밝아오다·45
제3부
지난가을·49
아침노을의 웃음·50
첫눈이 온다·52
12월·53
전화번호를 지우며·54
똥을 푸면서·55
겨울 손님이 남긴 선물·56
물러나다·57
참새는 닭장을 자유롭게 들락거린다·58
서울도 자연이다·60
산을 보면서·61
창밖은 절벽·62
곱게 보내주다·63
10월도 중순을 넘어섰다·64
나뭇잎이 떨어지다·65
제4부
달밤·69
간접 뽀뽀·70
어머니·71
등 툭툭·72
곰벌레를 위한 시·73
뉴스를 들으며·74
암울한 전망·75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도평2리·76
환갑·77
산다는 게 다 그런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78
빈 우체통·80
부처님 오신 날 2·81
부처님 오신 날 3·82
황야의 무법자·83
HOTEL XYM·84
해설│남승원·87
시인의 말·103
■ 시집 속의 시 한 편
어젠 동토의 바람이 내려오더니,
앞산을 가리며 눈이 내린다 눈을 처음 보는 칠면조는 우리 안을 오락가락 횃대를 오르락내리락하며 껄꾸두 껄꾸두 들어보지 못한 소리를 낸다 작년에 겨울을 맛본 검은 고양이는 눈을 맞으며 풀숲에 앉아 함박눈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올해는 첫눈이 눈답게 내리는구나
제대한 민간인 아들을 보며 툭 한마디 건넨다
그러게요
싱겁게 대꾸를 하는 아들을 바라보며 읍내에 나간 아내를 생각한다 조심조심 차를 몰아야 할 텐데
아내는 차분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다
빈 밭이 하얗게 빛나기 시작한다 눈은 평등하다 온 누리를 더도 덜도 없이 덮는다 천지신명께 빌지 않아도 다 덮는다 하얗게,
죄도 위아래도 권력도 돈도 원래 없는 것이다
―「첫눈이 온다」 전문
■ 시인의 말
‘만물은 다 제자리가 있다’는 말을 받아들인다.
흘러가는 물에 시선을 두고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니 20년이 하루였다.
산 아래는 내가 앉을 자리가 없다는 걸 또 잊었었구나!
내려갈 생각을 지우고 태백의 눈 덮인 봉우리를 바라본다.
2023년 망경대산 중턱에서
봄을 맞으며 제자리를 생각하다
유승도
■ 표4(약평)
유승도 시인의 여덟 번째 시집 『하늘에서 멧돼지가 떨어졌다』를 보면 그가 자연의 소재들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알려진 것처럼 시인은 오래전부터 자연과 분리되지 않은 삶을 선택해오고 있으며, 이전의 시집들에서도 그와 같은 자신의 생활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려본다면 그에게 자연의 모습은 피할 수 없는 특징이기도 하다.
전통적 인식 범주 안에서 자연은 그것과 떨어진 채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안정을 제공하는 강력한 상징이다. 따라서 작품의 소재적 차원, 또는 시인이 보여주는 태도적 측면에서 자연과 깊이 결부되어 있는 그의 시는 자신이 추구하는 의미들로 구축된 세계를 지향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의 시가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든 ‘안정’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다소 낯설고도 흥미롭다.
_남승원(문학평론가·서울여자대학교 초빙교수)
■ 유승도
충남 서천에서 태어났다. 경기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문예중앙』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작은 침묵들을 위하여』, 『차가운 웃음』, 『일방적 사랑』, 『천만년이 내린다』, 『딱따구리가 아침을 열다』, 『수컷의 속성』, 『사람도 흐른다』와 산문집으로 『촌사람으로 사는 즐거움』, 『고향은 있다』, 『수염 기르기』, 『산에 사는 사람은 산이 되고』, 『달밤이 풍성한 이유』 등이 있다. 현재 영월 망경대산 중턱에서 농사를 조금 지으며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