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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동무개, '세계 안내견의 날'을 아십니까?
A Seeing Eye Dog a guide Dog, A Independence Dog, '안내견, 너를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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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안내견협회 홈페이지 (www.ifgdsb.org.uk) | | 잔인하고 처연한 4월이 끝났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잠깐 살펴보고 기웃거려야 할 놓쳐 버린 기념일이 하나 있다.
대부분 고개를 갸웃할 테지만. 뚜렷한 날짜 박음도 없이 ‘4월의 마지막 수요일’라고 정해 놓은 이 기념일은 인터넷 기사 검색을 아무리 해보아도 달력을 아무리 뒤져보아도 그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요일을 이렇게 정해 놓으니 매년 그 날짜가 바뀔뿐더러 국가적인 행사도 거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4월 27일인 그날은 바로 영국에 본부를 둔 '국제안내견협회’(International Guide Dog Federation)가 정한 세계안내견의 날 이다.
참고로 97년에는 4월 30일이었다. 성웅 이순신의 날처럼 사람을 기념하거나 특별한 사건을 기념한 것도 아닌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일개 개(犬)를 기념한 날이고 특별한 사건이 계기가 되어 제정된 것은 더욱 아니다. 사실상 세계안내견의 날은 1989년에 창설된 국제안내견협회(IFGDSB)가 90년 중반 독자적으로 안내견 훈련조직을 운영하던 미국과 독일이 가입함으로써 명실상부 국제적인 기구로 발돋움하게 된 것을 기념한 날이다.
12월 3일처럼 유엔이 정한 것도, 우리나라처럼 -비록 정통성은 없었지만- 국가원수가 공포한 날도 아니다. 하지만 이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에게 갖는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 날을 계기로 시각장애인의 눈이요 생명인 안내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안내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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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프랭크(Morris Frank)와 그의 개 버디, 그리고 '도로시 유스티스 여사 (Mrs. Dorothy Harrison Eustis) 자료 출처 : The Seeing Eye 2003 Annual Report | | 안내견Guide Dog for the Blind)이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됐는지에 관한 확실한 자료는 없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안내견에 대해 학문적으로 체계적으로 연구한 저작물은 거의 손가락에 꼽을 정도이고 이도 대부분 기술적인 것들이었다.
대략보면, 역사적으로 안내견의 활용은 동굴벽화등을 통해 고대로부터 그 연원을 살펴볼 수 있으나 체계적인 훈련이 시작된 기원은 1819년 빈에 있는 한 시각장애인학교의 창립자가 펴낸 책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이는 매우 제한적으로 이루어졌다.
'안내견 양성’이라는 목적을 띄고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결정적인 계기는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눈을 일순간에 앗아갔던 바로 전쟁, 세계1차 대전이었다.
1차 대전이후 수없이 많은 군인들이 시력을 중도에 상실함에 따라 이러한 군인들의 사회 복귀를 위한 여러 교육과 재활훈련이 시도되었는데 그런 과정에서 1916년 독일 몰덴부르크에 맹인안내견 학교를 개설한 것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당시 독일 국견(國犬)으로 유명세를 떨치던 세퍼드가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23년 독일 포츠담(Potsdam)에 독일훈련학교(the German Training School)가 세워진 것이 체계적인 안내견양성의 시작이었다.
이렇게 지역적이던 안내견에 대한 인식을 세계로 확산시킨 사람은 미국의 '도로시 유스티스 여사 (Mrs. Dorothy Harrison Eustis)로 그 당시 스위스에 살고 있던 미국 필라델피아 태생의 여사는, 독일산 세퍼드의 탁월한 능력에 매료되어, 여러가지 목적견으로 세퍼트를 번식시키고 있었다.
그 당시 그녀는 번식과 더불어 자체적으로 개발한 훈련 프로그램을 적용하여 세퍼트의 임무 수행 능력을 높이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포츠담을 방문하여 독일훈련학교를 견학한 후 큰 감명을 받았고, 이는 그녀로 하여금 훗날 최초의 맹인안내견 학교를 설립, 본격적인 안내견 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게끔 하는 계기가 된다.
때마침 그녀는 ‘The Saturday Evening Post’ 지로부터 원고를 부탁받게 되었고, 그녀는 개들이 시각장애인을 인도할 수 있다는 내용의 “The Seeing Eye”라는 제목의 기사를 쓰게 된다 (1927년 11월 5일자). 바로 이 기사가 안내견에 대한 관심을 전세계로 확산시키는 시발점이 되었다.
이 때 이 기사를 본 미국 테네시에 살고 있던 시각장애인, 모리스 프랭크(Morris Frank)라는 젊은 청년이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그는 유스티스 여사에게 자신을 위해 안내견을 훈련시켜 달라는 요청의 글을 썼다. 청년은 여러 우여 곡절 끝에 그녀와 함께 팀을 이루어 버디(Buddy)란 이름의 개를 선택하여 훈련시켰고 결국 성공, 버디를 미국 최초의 안내견으로 등록하게 한다.
그 후, 1929년, 사재를 털어 프랭크와 함께 ‘The Seeing Eye’(www.seeingeye.org)라는 세계 최초의 전문 안내견학교를 설립, 1929년 2월, 2명으로 시작했던 최초의 수업을 시작하였다. 그 해 훈련받은 안내견으로 인해 독립을 되찾은 시각장애인은 모두 17명이었다.
한편, The Seeing Eye는 국제적인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하여 영국에서의 안내견 훈련학교 설립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게 된 영국의 체계적인 안내견 훈련은, 1931년 왈라시(Wallasey, Cheshire)의 클리프(The Cliff) 훈련센타에서 시작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0년대부터 일대 부흥기를 맞는다. 영국에 6개의 안내견 전문훈련학교가 세워지고 여러 유럽국가들도 안내견학교를 건립하게 되었다. 70년대에는 안내견에 대한 개념이 유럽 외 지역 국가들에게 전파되어 일본(1970), 뉴질랜드(1973) 등에 최초의 안내견학교가 탄생했다.
안내견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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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의 도움을 받아 외출을 하고 있다.<사진출처 이삭도우미개학교 홈페이지> | | 우리나라의 안내견에 대한 기록은 고려사(高麗史:권29, 忠烈王 8年4月條)에서 부모를 여의고 ‘백구’라는 개에 의존하여 살아가는 눈먼 아이의 이야기로 찾아볼 수 있다 .
그러나 최초의 근대적인 안내견 사용자는 대구대학교의 임안수 교수(현재 대구대 점자도서관장)로, 그는 1972년 말에 미국유학을 마치면서 세퍼드종 안내견 '사라'와 함께 귀국하였다. 이후 외국기관으로부터의 분양이 여러 차례 있었으나 사후 관리 미흡과 일반인들의 인식부족 등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후 국내기관에 의해 배출된 최초의 안내견은, 1994년 양현봉씨가 삼성안내견학교로부터 분양받은 뷰티이며 97년에는 16마리, 현재 연평균 15마리 정도가 분양되어 전국적으로 100마리 채 되지 않는 안내견이 활동 중이다.
전세계에는 영국, 미국, 프랑스, 뉴질랜드, 일본 등 35개국에 100여 개의 안내견 양성기관이 있으며, 미국에 1만여 마리, 영국에 4700여 마리, 일본에 900여 마리 등 약 2만 마리의 안내견이 활동 중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안내견은 사회봉사 차원에서 수요자에게 무료로 제공하는 것이 원칙이며, 안내견 양성기관은 비영리 사회단체나 유력인사들의 기부금으로 운영된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이삭도우미개학교(1992), 삼성안내견학교(1994년)가 안내견을 훈련, 무상 보급하고 있다. 일본에는 일왕의 장녀인 노리노미야(紀宮ㆍ35) 공주가 활발하게 안내견 보급운동을 벌이고 있기도 하다.
삼성 안내견학교는 99년 11월 세계안내견협회(IFGDSB)에 정회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우리나라는 일본과 치열한 경합 끝에 2002년 세계안내견총회 유치에 성공했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안내견총회는 정회원학교에 등록된 안내견 분야의 세계적인 전문가 200여명이 참석하는데, 2002년 대회는 내년 5월 5일~7일까지 경기도 죽전의 삼성생명 휴먼센터에서 열렸었다.
이러한 안내견을 원한다고 모두 분양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훈련 비용이 많이 들고 (동물보험가입금액 2천만원,사람의 평균 생명보험료보다 5배이상 높은 수준) 제한된 수가 양성되며 실제 생명을 다루다 보니 안내견의 분양자격은 다소 까다롭다.
일단 고등학생 이상으로 활용하는 목적이 반드시 있어야 하며 안내견을 키울 수 있는 부담 능력(월 10만원 미만)이 있어야 한다. 국제적인 현상이긴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안내견의 보유 비율이 장애인 대학생에게 높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안내견에 관한 법과 차별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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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견은 여러유형의 장애인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사진출처 견공의사회공헌> | | 우리나라 장애인 복지법 제 36조 제 3항에는 "누구든지 보조견표지를 부착한 장애인보조견을 동반한 장애인이 대중교통수단에 탑승하거나 공공장소 및 숙박시설, 식품접객업소 등 여러사람이 다니거나 모이는 곳에 출입하고자 하는 때에는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이를 거부하여서는 아니 된다." 고 명시 되어있다. 만약 정당한 이유 없이 이를 어길 시 법 제80조 제1항 제4호 에 의거하여 벌금 200만원이 부과되어지게 된다.
많은 시각 장애인들이 안내견에 대한 출입거부나 차별을 당할 때 바로 이 법으로 항변하지만 실제로 법률적으로 단속 주체가 명확하지 않아 실효성이 거의 없다(대부분 그 해당시설 관할 주무부서에서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이러한 안내견의 근거 조항은 장애인 복지법뿐만 아니라 철도청 국유철도여객규칙(63조2항)과 도로교통법 자동차운송규정에 맹도견의 탑승조항(개정령 28조)을 두고 있고 대한항공과 같은 항공사들도 자체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복지법을 제외한 대부분의 조항들은 강제조항이 아니고 관계자들도 잘 모르고 있다
외국의 경우, 미국은 ADA법에 안내견의 공공장소 출입을 법으로 보장하고 있고 뉴질랜드는 안내견의 출입을 거부하는 호텔에 대해 1년 이하의 영업정지에 처한다. 그러나 다른 애완견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장을 사절한다.
또한 일본은 개별 이용 시설 등에 별도의 자체 규정을 두는 경우가 많았는데 (예:동경 디즈니랜드) 2002년 11월에 와서야 일본 국회에서 ‘신체장애자 보조견법’이 통과되면서 그동안 애완동물 취급을 받아온 안내견, 개조견, 청도견 등에게 법적인 지위가 주어졌다.
또한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 훈련시키는 민간단체인 일본 보조견 협회가 안내견 조련사들이 중심이 되어 결성되었다.
법률적인 측면에서는 일본에 비해 우리나라가 약간 앞서 있지만 안내견에 대한 우리나라에서 안내견의 거부와 차별은 여전히 심각하다. 가장 최근에는 대형 외국계 할인점에서 바로 내사랑 토람이의 실제 주인공의 안내견을 할인점 보안요원이 막부가내로 거부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기도 했다.
공공건물에서도 안내견이 거부당하는 일이 다반사로 일어나기도 했는데 1995년 7월에는 서울국제라이온스클럽 총회에 참석했던 시각장애우 에드 레빈스 교수는 구내의 내로라는 호텔로부터 일제히 투숙거부를 당해 총회기간 동안 시각장애인복지관 기숙사에 머물러야만 했다.
그 후 10년이 지난 1월에도 여전히 서울의 별 6개 특급 호텔에서 안내견을 데리고 호텔을 찾았던 시각 장애인은 완강히 거부당해야 했다. 그 호텔 당직 지배인은 "다른 손님이 불쾌해하기 때문에 장애인 전용식당이 있으면 또 몰라도 절대로 들어가게 해줄 수 없다"고 말해서 더욱 분노를 사게 했다.
이러한 안내견의 거부는 고위층 경호과정에서 심하게 일어나는데 1999년 4월 영국여왕이 이화여대를 방문하여 안내견과 함께 온 장애인 학생을 만나는 과정에서 경호팀이 안내견 출입을 거부하며 실랑이를 벌이자 여왕이 ‘괜찮다, 함께 만나자’고 하더니‘이 개가 너와 함께 강의를 들으니 매우 스마트하겠구나’라고 발언한 일화도 있었다.
또한 2001년 여성부 출범 기념식에서도 '개가 내빈들을 해칠 수도 있다'는 것과 안내견이 혐오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경호팀에서 참여 불허를 통보해 물의를 일으킨 사례도 있었다.
비교적 안내견의 인식이 낫다는 대학가에서 기숙사등의 안내견 거부는 일상적이다. 전라도지역의 장애인 학생이 많이 다니는 모 대학에서 시각장애인 학생이 기숙사에 입사하면서 안내견과 함께 입사할 수 있는지 문의했다가 전염병 전파가능성을 이유로 거부당했으나 학생들의 항의로 겨우 1 학기만 기숙사 이용을 허가받기도 했다.
국회 본회의실로 안내견을 데리고 가자
최근에 물러난 영국의 교육부 장관, 시각장애인 데이비드 블런켓은 본인보다 그의 안내견 루시로 더 유명했던 사람이다. 그는 보수적인 영국 국회로 하여금 안내견 루시를 공식 국회 직원으로 그 지위를 보장하게 했으며 교육부 장관으로서 전국의 학교를 돌아 다닐 때도 루시를 수행비서 자격으로 데리고 다녔다고 한다. 이에 블런킷이 물러날 때 사람들은 더 이상 ‘루시’를 보지 못한다고 크게 아쉬워 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도 이제 시각 장애인 국회의원이 활발한 의정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의정 자료의 점역 지원이나 편의시설등이 아직 미비하여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본회의장에도 안내견이 들어간 역사도 없고 수행비서들도 많으니 아마 그 국회위원이 안내견을 데리고 국회로 들어간다면 국회 경비팀의 완강한(?) 저항에 직면할 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 우리나라도 국회 직원중에서 안내견이 인정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된다면 안내견의 거부나 차별은 어쩌면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도 있지 않을까?
길동무개란?
‘안내견'을 토박이 우리말로 일컫는 말로 우리 말-헌책방-책 문화운동을 하고 계신 최종규 님께서 친구분의 의견을 받아 제안해 주셨습니다.
안내견, 너가 궁금하다?!
우석대 중앙동아리 평 / 행 / 선 (cafe.daum.net/parallel)에서는 세계 안내견의 날을 알리고, 이후 안내견 대한 에티켓을 대학내에 널리 홍보 하고자 4월 27일부터 각종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오는 5월 13일 오후 4시부터는 삼성 안내견 학교와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의 도움으로 강연회와 각종 행사를 전국의 학생을 상대로 진행한다.
참가문의는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02-322-5730)으로 하면 된다.
현재 우석대는 두 사람이 안내견(미소,팬지)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