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정부, 반도체 지원에 2조엔 가량 대출 계획, 수요에 비해 너무 큰 규모 / 5/30(목) / 한겨레 신문
한국 정부가 규모를 강조하며 내놓은 17조원(약 1조 9500억엔)의 반도체 대출 프로그램이 실제로는 국내에서 수요처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내 반도체 산업의 대출 수요에 비해 공급 목표액이 너무 크다는 평가다. 특히 정부가 이번에 겨냥한 중견·중소기업의 자산을 모두 모아도 규모는 몇 십조원에 그쳐 대출 수요가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금융감독원이 29일 발표한 전자공시에 따르면 한국거래소(KRX)의 반도체지수를 구성하는 48개사의 연결기준 자산총액은 3월 말 기준 29조 1218억원(약 3조 3500억엔)이었다. 이는 반도체 지수 구성 종목 총 50개 중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제외하고 집계한 숫자다. 이들 기업이 자산의 50%씩 대출을 받아도 15조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지수 구성 종목은 유동성 등을 기준으로 선정된다.
반도체 기업의 범위를 더 넓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회원사 중 가장 수가 많은 장비업체의 자산총계는 각사의 최근 공시 기준 26조 5855억원이었다. 소자·파운드리 가맹 기업은 삼성·SK를 제외하고 5조 934억원, 테스트·패키징은 2조 7933억원이다. 개별 기업의 사업 영역이 반도체에 국한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반도체 산업 규모는 이보다 작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17조원의 대규모 지원책이 정부의 의지를 홍보하는 숫자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산업은행을 통해 17조원의 대출 프로그램을 신설하고 반도체 투자자금을 우대금리로 지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지원 규모의 70% 이상을 중소·중견기업에 할당하겠다고도 했다. 이는 반도체 지수에 포함된 중소·중견기업이 산업은행으로부터 새로 자산의 50%에 달하는 규모의 대출을 받아야 달성할 수 있는 목표다.
삼성과 SK를 포함해도 대출 수요가 충분히 있다고 보기 어렵다. 삼성전자는 외부에서 사실상 돈을 빌리지 않는 이른바 '무빚 경영' 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은행 대신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원을 빌리는 방안을 취하고 있다. 이미 그룹 차원의 채무 부담이 큰 SK그룹은 자금 조달을 다각화하고 있는 만큼 이번 대출에 눈을 돌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은행의 대출금리가 SK그룹의 다른 자금조달 경로에 비해 낮을 경우 저금리로 갈아타려는 대환대출(대환) 수요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정도다.
산은 관계자는 "아직 대출 프로그램의 자격 요건이나 금리 조건 등이 전혀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라 수요도 예측하기 어렵다" 며 "1~2년 안에 17조원을 모두 공급하라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산은 안팎에서는 대출 공급 여력이 얼마나 될지도 아직 불확실하다는 시각이 많다. 정부는 대출 프로그램 신설을 위해 산업은행에 1조 7천억원을 출자할 계획이라면서도 출자 형태는 밝히지 않았다. 현금이 아닌 주식 등 현물출자 형태로 진행되면 자본비율 개선 효과가 떨어지는 만큼 대출 여력도 제한된다. 산은은 이 경우 대출 여력이 1조7천억원의 7배인 12조원가량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