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는 비록 국내에서 매우 저평가되고 있지만 국제무대에서는 아식스와 더불어 승승장구하는 브랜드다. 아시아 브랜드가 세계인을 사로잡은 비결은 오로지 최고의 기량을 실현하는 최고의 제품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마케팅과 디자인보다는 독보적인 성능을 갖추려고 노력한 결과 전문 선수들에게 환영받는 브랜드로 입지를 다져왔다. 우주 궤도를 형상화한 ‘런버드(달리는 새처럼 생겼다 해서 생긴 애칭)’ 로고는 그래서 러너들에게 ‘고수’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실리콘이나 스펀지 계열의 쿠셔닝 소재에 길들여져 있던 국내 러너들도 독특한 디자인의 플라스틱 구조물을 이용하는 웨이브 쿠셔닝에 높은 점수를 준다.
스포츠브랜드 미즈노의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긴다. 스포츠산업의 규모 자체가 빈약했던 1906년 4월 21세 청년의 손에 의해 역사가 시작됐다. 창업자 미즈노 리하치는 1884년 일본 기후현 오가키마을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다. 1891년 노비 대지진으로 부모를 잃고 졸지에 소년가장이 된 그는 생계를 위해 장사를 시작했고, 우연히 야구경기를 보게 되면서 스포츠브랜드 창업의 꾸게 됐다.
결국 그는 21세의 젊은 나이에 동생 미즈노 리조와 함께 오사카에 야구용품 등을 판매하는 미즈노 상점을 개설했다. 미즈노의 초기 생산품은 야구공이었다. 종주국 미국에도 야구공의 규격이 정립되지 않았던 시절에 미즈노는 공의 크기와 무게를 규격화했다. 또한 4.12m 높이에서 대리석 바닥에 떨어뜨려 자신의 눈높이(1.32m~1.37m)까지 튀어오르면 합격시키는 방식으로 반발력을 표준화했다. 이처럼 해당 스포츠 분야의 요구를 한발 앞서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오늘날 세계 일류 선수들에게 찬사를 받는 원초적인 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육상선수로 평가받는 칼 루이스. 1991년 동경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 당시 미즈노가 제공한 초경량 신발을 신고 세계기록(9.86)을 수립했다. 그는 1984년 LA올림픽을 시작으로 4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하여 9개의 금메달을 획득했으며, 그중에는 육상 4관과 멀리뛰기 4연패와 같은 불멸의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상식 깬 ‘웨이브 테크놀로지’로 차별화
미즈노 형제가 초석을 닦은 미즈노는 현재 3세대 경영인 미즈노 마사토 회장이 이끌고 있다. 창업 초기부터 주력해온 야구용품은 메이저리그 선수의 20%가 이용하고 있고, 1921년부터 생산을 시작한 골프클럽도 세계적으로 확고한 인지도를 얻고 있다.
러닝화 분야에서도 미즈노의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특히 물결모양의 판을 중창에 삽입하는 ‘미즈노 웨이브’는 러닝화 제조에 있어 상충되는 것으로 여겨졌던 쿠션과 안전성을 동시에 만족시킨 기술이다. 이 독자적인 기술은 중창의 외부로 드러나 ‘런버드’ 로고만큼이나 눈에 띄는 미즈노 러닝화의 상징이다.
미즈노의 러닝화 기술이 실전에서 증명된 가장 극적인 사례는 칼루이스의 세계기록 작성이었다. 미즈노는 “맨발의 감각을 최대화하는 가벼운 신발이 필요하다”는 요청에 따라 ‘슈퍼 슈즈’를 개발해 제공했고, 그는 1991년 동경세계육상선수권대회 100m에서 9초 86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역사상 가장 뛰어난 육상선수로 평가받는 그를 통해 미즈노는 뛰어난 기술력을 세계무대에 과시할 수 있었다.
국내서 돌연 사라졌다가 ‘마라톤 붐’ 타고 인기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미즈노를 그동안 국내에서 만나기 힘들었다. 미즈노는 1975년 국내 업체와 스포츠 의류 OEM 생산 계약을 체결한 이후 롯데산업과 합자회사를 설립하고 국내 판매를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국내에서는 생활스포츠 보급이 턱없이 부족해 일본 시장에 비해 스포츠 의류 시장이 매우 작았고 화폐가치의 차이가 커서 수익을 거둘 수가 없었다. 게다가 패션 브랜드가 아닌 정통 스포츠 브랜드였던 탓에 한국 시장에서 판매가 가능한 저가의 스포츠 용품 및 스포츠 캐주얼 모델 개발에 한계를 갖고 있었다. 결국 미즈노는 1992년 (주)한국미즈노(미우)가 도산하면서 조용히 한국시장을 떠나게 됐다. 반면 골프용품은 꾸준히 인기를 끌며 미즈노의 이름을 알려왔다. 미즈노가 현재 미즈노 국내유통을 하고 있는 (주)덕화스포츠를 통해 1987년부터 유통을 시작해 2005년 국내 단조 아이언 시장 1위, 2007년에는 전체 아이언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성장을 해나갔다.
이렇게 골프용품 전문 유통으로 내실을 다진 (주)덕화스포츠는 2002년부터 야구용품을 시작으로 축구용품과 및 러닝용품을 유통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작년 2월에 전국 대리점 유통을 전개하면서 국내 소비자들이 손쉽게 미즈노를 접할 수 있게 됐다. 선수층이 두터운 야구와 축구에 비해 동호인 위주인 러닝용품 분야는 시장 성격이 다를 수밖에 없는데, 1990년대 말부터 형성된 마라톤 붐은 미즈노 러닝용품이 국내시장에 진출하는데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소수의 글로벌 브랜드가 독점하던 러닝 시장에서 미즈노 러닝화와 의류는 기술적으로 뛰어나면서도 차별화된 디자인을 갖춘 매력적인 브랜드였다. 특히 아식스와 더불어 엘리트 러너들이 선호하는 브랜드였기 때문에 고급화된 이미지가 시너지효과를 가져왔다. 미즈노 러닝화는 현재 ‘웨이브 테크놀로지를 앞세워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