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종이 조영주 제독의 다급한 전화를 받은 것은 막 중증외상 환자 수술을 끝낸 저녁 무렵이었다.
조영주는 아덴만의 여명작전 1차 공격조가 실패하여 UDT 대원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왔을 때 끝
까지 곁을 지키며 전장을 지휘한 해군의 이국종이었다. 전화한 목적은 동해시에서 작전 중이던 1함
대에서 수병 한 명이 중상을 입었으니 출동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경기 항공소방대에 연락하자
이성호 비행대장과 이인봉 기장이 즉시 AW-139기를 몰고 병원으로 날아왔다. 헬기가 날아가는 도중
해군의 김병천 의무감이 전화를 걸어 수병의 상태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었다. 상태는 짐작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백두대간을 넘을 때 악천후와 농무(濃霧)로 두 번이나 위기를 넘기며 AW-139기가 간신히 1함대 헬기
장에 내리자 김판규 함대사령관과 조영주 제독이 이국종을 맞이했다. 해군 군의관들이 사력을 다해
피투성이가 된 수병의 목숨을 붙잡은 채 헬기로 데려왔다. 이국종은 인사도 하는둥마는둥 환자를 A
W-139기에 옮겨 실었다. 급유를 받을 시간도 없어 AW-139기는 그대로 이륙했다. 이성호와 이인봉은
교대로 위험한 비행을 하여 오던 길을 되짚어 아주대병원으로 돌아왔다. 그 사이에 이국종은 중심정
맥관을 확보하고 병원에서 가져온 혈액과 항생제를 비롯한 필수 약제를 들이부었다.
한밤중에 AW-139기가 착륙했을 때 계기판을 지켜보고 있던 경기 항공소방대원 최준영은 항공유가
넥타이 하나 빨 수 있을 만큼만 남았다며, 서둘러 내리는 이국종에게 농담을 건넸다. 환자는 수술실
로 직행했다. 기다리고 있던 외상외과 팀원들이 모두 달려들었다. 수술은 새벽녘이 되어서야 끝났고,
환자는 인공호흡기와 주사바늘로 뒤덮인 채 중환자실로 실려 나갔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수
술실을 나서는 이국종의 앞을 장년 부부가 막아섰다. 환자의 부모라 했다. 이국종은 경과를 설명하여
그들을 안심시켰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이국종은 조영주 제독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그는 상굿도 함대사령부에서
이국종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국종은 경과를 자세하게 설명해주었고, 조영주는 진심으로 감
사 인사를 했다. 날이 밝자 한밤중과 새벽에 헬기가 이착륙한 일을 두고 병원 내에서 말들이 많았다.
병원 주변 시민들의 항의는 수긍이 갔지만 병원 직원들, 특히 간호학과 학생들의 항의는 이해하기 어
려웠다. 환자나 환자 가족들은 단 한 번도 불만을 제기하지 않았다. 이국종은 간호학과장을 찾아가
사과했고, 그는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경기 항공소방대 제1비행대장 이세형이 저녁식사를 하자고 연락이 왔다. 이국종은 외부인과 식사하
는 일을 극도로 꺼리지만 이세형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그의 업무 스타일이 이국종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식사가 시작되자 이세형은 며칠 전 새벽 2시에 출동한 일을 두고 내부 반발이 격렬했다고
하소연했다. 역시 이국종이 요청한 출동이었다. 제1비행대장 이세형과 제2비행대장 이성호는 24시간
씩 교대근무를 하는데, 그날은 이성호가 근무하는 날이었지만 컨디션이 좋지 않은 걸 잘 아는 이세형
이 출동에 나섰었다. 같은 처지라면 이성호도 언제든지 조종간을 잡을 동료였다. 그러나 대원들은 비
번인데도 대장의 영웅심으로 근무를 시켰다며 연일 이세형을 성토했다. 젊은 대원들은 상굿도 평생
그 사람이 하는 일의 양과 질이 인생의 가치를 결정한다는 철학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세형과 이성호의 조종술은 국내 최고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신기에 가까웠다. 다른 기장들이 안전
을 최우선으로 여겨 악천후에는 무조건 출동을 거절하는 것과 달리, 두 사람은 어떤 경우에도 거절하
는 법 없이 난관을 극복하고 환자를 무사히 후송했다. 밤낮을 가리는 법도 없었다. 출동을 많이 한다
고 연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위험을 무릅쓴다고 별도로 수당이 지급되는 것도 아니지만 이세형은
개의치 않았다. 경기 소방항공대의 장비는 중앙구조단에 비해 형편없이 열악했지만 그 또한 염두에
두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경기 소방항공대의 응급환자 이송 건수가 전국 소방항공대 전체 건수의 절
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대원들의 불만은 당연할 수도 있었다.
“내가 인복이 없는건지 대원들을 설득하는 능력이 부족한건지 모르겠네요.”
이세형은 대원들의 반발을 자기 탓으로 돌렸다. 한 번도 대원들을 탓하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응급출동을 할 때 소방대원과 의료진은 그야말로 생사고락을 함께한다. 의료진은 기장에게 목숨을
저당 잡힌 채 기내에서 오직 환자에게만 집중한다. 기장에 대한 신뢰는 절대적이다. 기장의 운항실력
은 환자의 생명 유지에도 필수적이다. 그러나 소방항공을 관리하는 윗선에서는 기장들의 이러한 헌
신적 자세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사고는 관리자들의 경력에 치명적이다. 따라서 그들은 가능한 한 규
정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만 출동하기를 바란다. 이세형이나 이성호 같은 기장은 그런 상관들에게
곱게 보일 리가 없다. 이국종은 병원 내에서 자신이 받는 대우를 생각하며 동병상련을 느꼈다.
이세형은 육군항공대 조종사 출신으로 30년 이상 공직에 봉사하고 있다. 제대를 앞두고 그는 대한항
공 기장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경기 소방항공대 창단 보도를 보고 가족들과 상의 한 마디
없이 각중에 진로를 바꾸었다.
“신문에서 경기 소방항공대 모집 광고를 보는 순간, 아, 내가 가야 할 길은 이쪽이다, 머리 속에서 번
개가 번쩍 일더군요.”
피해갈 수 없는 팔자다. 이세형은 기꺼이 연봉이 4분의 1도 안 되는 소방공무원의 길을 택했다. 영웅
심 운운하며 대원들이 욕을 해도 이세형은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이따금 같은 처지인 이국종을 만나
하소연하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다. 그때는 이국종도 눈치 보지 않고 그 동안 쌓여 있던 불만과 울분
을 쏟아낸다. 그들은 서로에게 멘토요 공생 모델이다.
“이 선생님 만나니까 마음의 짐이 다 날아갔네요. 저는 이 길이 만족스럽습니다. 며칠 전에도 이 선생
님과 함께 죽어가는 환자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이
일을 만난 게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국종도 비슷한 사례의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밤공기가 시원했다.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반려견의 입지가 점점 중시되고 있는 현대생활 입니다. 노인들의 삶에 외로움을 더는 역활 뿐 아니라 사람 모두에게 정감을 주는 애완동물로 확산 되기 때문 입니다. 분당공원 근처 대로변 한켠 테니스장 만큼 넓직한 자리에 애완견 놀이터를 조성 하였고 수십마리가 뛰노는 장면을 한참이나 지켜 보았습니다. 집 지키고 먹다남은 밥으로 연명한 한편생 이었는데 상전의 위상으로 사람과 함께하는 정겨운 모습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