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대병원이 권역별 외상센터로 지정된 뒤 이국종은 브라질 외과학회로부터 초청을 받았다. 미국의
중증외상 치료시스템을 한국에 어떻게 접목시키고 발전시켰는지를 설명해달라는 의뢰였다. 이국종
은 수락 여부를 두고 한동안 고심했다. 국내에서는 상굿도 발전은커녕 접목도 제대로 못 시켰기 때문
이었다. 사실 브라질은 한국의 외상외과 의사를 초대해서 더 배울 게 없었다. 그들은 1950년대부터
이미 유럽의 선진 의료제도를 받아들여 외상외과 분야에서도 한국보다 앞서 있었다. 미국에도 마이
클 로톤도 교수를 비롯하여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외상외과 교수들이 많다. 그들은 미국에서 일하
면서 고국의 외상외과 수준을 미국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국종은
다만 자신을 추천한 분이 UC 샌디에이고 외상센터에서 자신을 가르쳤던 코임브라 교수이기 때문에
결국 초청을 수락했다. 그는 자신이 가르친 제자가 성장하는 모습을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브라질 외과학회 세미나에는 UC 샌디에이고 외상센터의 데이비드 호이트, 라울 코임브라, 브루스 포
텐자 등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 석학들도 와 있었다. 세 사람이 공동집필한 중증외상 환자 치료법은
세계적인 표준 교과서로 통용되고 있다. 이국종은 오랜만에 만난 옛 스승들을 찾아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은 여러 가지 획기적인 수술법을 개발했으며, 브라질에서도 이미 전국적으로 통용되
고 있었다. 유럽형 의료 선진국에서는 관료들이 법과 제도를 만들어 전문가들의 요구를 수용하는 형
태로 의료 선진화를 이루고 있고, 한국 같은 후진국에서는 관료들이 저들의 입맛에 맞도록 전문가들
을 길들이려는 악습이 있어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도 발전을 못 시키고 있다. 이국종은 한국의 중증외
상 환자 치료시스템을 설명하면서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이국종이 귀국하자 호흡기내과 정우영 교수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누구보다 외상외과를 잘
이해하고 협조해주는 의사였다. 간단한 인사 끝에 그가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교수님 파트의 송미경 전담간호사가 다녀갔습니다.”
“예, 그렇습니까? 무슨 일이지요?”
정우영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진단 결과 송미경의 몸 상태가 심각하여 당분간 쉴 것을 권고했다.
그런데 외상외과에 일할 사람이 없어서 안 된다며, 과에는 비밀로 하고 약만 좀 지어달라고 했다. 정
밀검진을 마친 정우영은 아무래도 그냥 두면 위험할 것 같아 연락했다는 것이었다.
전화를 끊고 이국종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신도 다리 상태가 일을 해서는 안 될 만큼 악화되어
있지만, 전담간호사들까지 몸을 돌보지 않고 희생하는 것만 같아 깊은 자괴감이 들었다. 온갖 욕을
다 먹어가면서도 동료의 몸 상태 하나 체크하지 못하고 뭘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했다. 이국종
은 간신히 사무실에 도착하여 김지영을 불렀다. 송미경을 병가 처리하여 집으로 연락하라고 일렀다.
전화를 받은 송미경의 어머니는 이국종을 찾았다. 이미 몸져누워 못 일어나고 있다면서, 어머니는 이
국종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고 이국종은 어머니에게 미안하다며 사과했다. 이국종의 가슴 밑바닥에
서 뜨거운 불덩어리가 올라왔다.

얼마 뒤에는 김지영으로부터 전담간호사 김효주가 입원했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다리에 생긴 봉와직염(진피와 피하조직에 나타나는 급성 화농성 염증)이 허벅지까지 타고 올라갔어
요. 걷지도 못하고 열이 펄펄 끓어요.”
이국종은 급한 수술이 끝나자마자 김효주의 입원실로 달려갔다. 전날 밤 마지막 회진을 돌 때 김효주
는 절뚝거리며 따라다녔다. 어디 아프냐고 물었더니 약간 삐었지만 괜찮다고 했다. 이불 밖으로 나와
있는 김효주의 다리는 코끼리 다리처럼 부풀어 올라 열이 펄펄 끓고 있었다. 염증은 허벅지를 넘어
몸통까지 올라오는 중이었다. 지체하면 위험할 수도 있었다. 이국종은 편히 쉬라고만 하고는 터져 나
오려는 울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전은혜도 아픈 걸 숨기다가 쓰러졌고 윤상미도 수술을 받고 입원했다. 이들의 공백을 메우느라 나머
지 전담간호사와 응급구조사들이 돌아가며 초과근무를 감당하고 있다. 쉴 틈 없이 연속근무를 강요
당하다 보면 이들도 언제 쓰러질지 모른다. 외상외과 팀원들이 차례로 무너지고 있다. 충원을 요청하
면 보직교수들은 녹음기처럼 이국종이 일을 너무 무리하게 시켰기 때문이라며 모든 책임을 그에게
떠넘긴다. 그들은 중증외상 환자를 수술할 때 한 번도 참관한 적이 없다. 이국종 자신도 며칠 동안 한
숨도 자지 못하고 밀려드는 환자를 수술하는 게 일과다. 이국종이 일을 무리하게 시키는 게 아니라
일이 이국종을 무리하게 부려먹고 있는 것이다.

헬기를 타고 출동했던 전담간호사 김지민이 손가락이 으스러진 채 돌아왔다. 이국종은 병원 측에서
공상 처리를 해줄지 그것부터 걱정이었다. 이국종도 작년에 출동을 나갔다가 어깨가 으스러진 적이
있었지만, 병원의 지시에 따라서가 아니라 임의로 출동했고 병원 밖에서 일어난 일이라며 공가 처리
를 해주지 않아 쉰 날만큼 월급을 삭감당했다. 물론 수술도 자비로 받았다. 이국종은 ‘아주대병원에
서는 외상센터를 이렇게 싫어하는데 다른 병원에서는 왜들 기를 쓰고 유치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써
놓았다. 정부 지원금만 떼먹고 중증외상 환자는 외면하는 사태를 모르고 있는 듯하다. 실제 지방대의
한 권역별 외상센터에서는 중상을 입고 실려 온 어린이를 수술실이 없다는 핑계로 돌려보내 그예 죽
음으로 내몬 적도 있다. 김지민도 끝내 공상 처리가 되지 않아 자비로 수술을 받고 무급휴가에 들어
갔다.
8월에는 김지영마저 쓰러졌다. 김지영은 월 평균 380시간씩 미련하게 일하다가 쓰러진 것이다. 그녀
는 똑바로 걷지도 못할 만큼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진통제로 근근이 버티다가도 헬기가 도착하면
남 먼저 달려가곤 한다. 김지영은 복도를 걷거나 수술을 돕다가 이미 몇 번 쓰러진 적이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별일 아니라며 오뚝이처럼 벌떡벌떡 일어났다. 김지영이 쓰러지자 여기저기서 일이 차질을
빚거나 중단되었다. 이국종에게 김지영은 최후의 보루다. 외상외과에서 차지하는 그녀의 비중이 그
만큼 큰 것이다. 김지영은 새벽에 이국종 몰래 퇴원했다가 다음날 오전 중에 출근하여 다시 가운을
걸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시작했다. 이국종 같은 의료인들이 시지푸스의 바위처럼 평생 떠안고
살아가야 할 숙명적인 성품이다. 그러나 바로 그러한 분들의 헌신과 희생 덕분에 돈 없고 힘없는 수
많은 젊은이들이 목숨을 건지고 건강을 되찾아 우리 사회가 이 정도나마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2019년 2월 18일 14:03
이국종 「골든아워」 제1권 소개 끝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대통령의 동남아 순방시 있었던 방문국에 대한 외교 결례와 국가 망신, 청와대 참모가 수백명이고 현지 외교관이 있었음에도 이런 실수를 노출 시켰다고 합니다. 오랜 경험과 전문 능력을 겸비한 외교관 역시도 적폐로 몰아 보직을 해임하고 코드인사로 대신한 역령 부족 의 탓으로 여겨지니 참으로 암담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