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파(無黨派) 전성시대
대형 참사 정쟁화는 민심 역풍 초래해
책임회피나 과도한 정치공세 넘어서야
##1.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이 있었다. 북한발 어뢰의 소행임이 드러났다. 국가안보와 맞물린 북풍(北風)은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에 유리한 훈풍이었다. 지방선거를 3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그래서 선거 전 여론조사에서도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압승이 예상됐다. 그러나 결과는 완전히 예상을 빗나갔다. 압도적 격차로 승리를 장담하던 오세훈 서울시장은 박빙의 접전 끝에 가까스로 자리를 지켰다. 인천과 강원에선 야권연합 후보가 당선됐다. 한나라당의 참패였다. 천안함 사건을 선거에 이용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판을 뒤집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에 맞춰진 민군 합동조사단의 천안함 폭침 원인 발표와 전쟁기념관에서 진행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도 이런 우려를 키웠다.
##2. 4년이 지난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탑승자 476명 중 실종자를 포함해 304명이 숨진 대형 참사였다. TV로 생중계된 구조 작전이 실패하면서 국민들의 트라우마도 컸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에서 보나마나 여당인 새누리당의 참패가 기정사실화됐다. 하지만 정치권의 관성적 예측은 깨졌다. 야당의 싹쓸이가 예상됐던 수도권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인천시장, 경기도지사는 여당이 차지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이 기대 밖으로 선전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세월호 심판론을 내건 야당의 파상공세가 진상규명보다는 지나치게 선거를 의식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박근혜 정권 지지층이 결집하는 명분을 제공한 것이다.
대형 참사가 일어나면 비난의 화살은 집권세력을 향하기 마련이다. 국정, 특히 국민안전을 책임져야 할 집권세력이 떠안는 숙명일 수 있다. 갤럽 조사에서 세월호 참사 직후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은 59%에서 11%포인트나 급락했다. 502명의 생명을 앗아간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이후 당시 김영삼 대통령 지지율도 10%포인트 넘게 빠졌다.
그러나 참사 자체는 민심의 바로미터가 아니다. 진정한 추모와 함께 얼마나 진지하게 수습에 노력하는지가 더 중요한 변수다. 국민들은 그 과정을 주목하는 것이다. 2012년 10월 말 허리케인 샌디가 미국 동부를 강타했을 때 대선은 불과 한 달도 남지 않았을 때였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신속하고 효율적인 재난 대처로 피해 지역에서 오히려 지지세를 넓혔다고 한다. 위기가 정권을 더 흔들 수 있지만 오히려 반전의 계기를 만드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민의를 제멋대로 재단하는 정치권의 낡은 관성이 늘 오판(誤判)을 자초했다. 천안함 폭침과 세월호 참사 이후 선거 결과가 실증적인 사례다.
갤럽 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4주째 30% 선에서 큰 변화가 없었다. 하지만 지지 정당이 없다는 무당층 비율은 전주 대비 3%포인트 오른 30%(15∼17일)나 됐다. 지지율만 보면 30%대에 머물고 있는 여야와 맞먹을 정도의 제3세력이라고 할 만하다. 이태원 참사 후 어느 한 곳에 마음을 두지 못하는 민심의 현주소가 아닐까.
이젠 수습의 시간이다. 앞으로 정치권이 이태원 참사 수습에 어떤 정치적 역량을 보이느냐가 민심이 요동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여권이 계속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을 보일 경우 거센 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야당도 ‘제2의 세월호’ 운운하며 과도한 정치공세에 매달릴 경우 ‘이재명 방탄용’이라는 의구심만 키울 수 있다. 여야 모두 무당층에 기울어진 민심을 제대로 읽어야 할 때다.
정연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