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과 수행자 계산법 / 일타스님
우리 나라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옛날에는 스님들이 돈을 만질 수 있는 일이 아주 드믈었습니다. 큰 재(齋)가 들어왔을 때 조금씩 보시를 받거나 또는 한 끼 굶으면 절에서 쌀 한 홉을 자기 몫으로 주는 것 정도였습니다.
근대의 어느 노스님은 이렇게 몇십 년을 모아서 마침내 논 열마지기를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열 마지기의 논을 장만한 이 노장은 다시 논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야산을 사서 개간하여 논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인부를 사서 땅을 파고 돌을 캐다 둑을 쌓는데 워낙 많은 돈이 들었기때문에 열 마지기의 논을 판 돈으로 겨우 다섯 마지기의 논밖에 개간하지 못했습니다.
말하자면 열 마지기 논을 팔아서 다섯 마지기 논을 가지게 되었으니 다섯 마지기를 손해 본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노장님은 희색이 가득한 얼굴로 대중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올해는 논 다섯 마지기 벌었다. 참으로 기쁜 해이다." 이말을 들은 대중들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그 노장을 빤히 쳐다보며 핀잔을 주었습니다.
"노장님도 참 딱하십니다. 다섯 마지기 손해 보신 것이지 어떻게 다섯 마지기를 벌었다는 것입니까?" 대중들은 그 소리에 모두 웃었습니다. 노장은 평소에 부지런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누가 무어라 해도 잘잘못을 가리지 않았으며, 좋은 일에나 궂은 일에나 덤덤하게 지내셨기 때문에 대중들은 그저 좋은 스님으로 평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노장은 대중들의 말을 듣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잘 들어라. 처음 논 열 마지기는 아랫마을 김서방이 사서 농사를 잘 짓고 있으니 좋은 일이고, 이 윗마을 야산에는 전에는 없던 다섯 마지기의 논을 새로 얻었으니 좋은 일이다. 이걸 전체로 보면 논 다섯 마지기를 번 것이 이니고 무엇이냐?" 대중들은 노장의 이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전의 논 열 마지기는 그 주인이 누가 되었든지간에 농사를 계속 지으면 되는 것이고 새로 개간한 논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그만큼 양식을 더해 주는 것이므로 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곧 보살행입니다.. 보살이나 조사는 복덕을 누리고자 하지 않습니다. 은행에다 자꾸 저축하여 필요한 사람은 누군든지 찾아 쓰라는 것입니다. 나를 위한 저축이 아니라 보시를 위해 저축하는 것이니 보살이나 조사의 마음가짐입니다. 세력있는 사람에게 빌붙어 그것을 빌미로 삼아 남을 위협하고 해를 주며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보살행은 끝없는 선행으로 복덕을 닦아 저축만 하는것과 같습니다.. 좋은 일은 남에게만 베풀고 나는 받지 않고 수행을 하는 것은 보살도입니다.. 따라서 남의 것을 빼앗고 해를 주는 것은 보살도를 거꾸로 행하는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남의 얼굴이 잘생겼다고 하여 내 얼굴과 바꾸겠다며 엉뚱한 욕심을 부리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자기의 몫이 아닌 것을 억지로 세력에 기대어 옳지않은 방법으로 구하는 것은 세속에서도 잘 하지 않는 일인데 하물며 불제자의 경우겠습니까? 더구나 출가한 몸으로는 할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불자라면 자신을 위해 복을 닦고 모으려 해서는 안됩니다. 마땅히 모든 복과 공덕을 보리심과 중생에 회향하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복이요 진정한 공덕입니다. 어찌 순간적이고 세속적인 이익을 추구하며 살것입니까? 자유롭고 영원한 행복이 남김없이 갖추어져 있는 대해탈의 복락은 복을 바라지 않는 보살의 몫입니다. 이를 깊이 생각하여 세속의 계산법을 벗어 버릴 때 우리는 참된 부처님의 제자인 보살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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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마하반야바라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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