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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82년생 김지영」을 사게 된 사연은 좀 기이하다. 동네를 산책하다가 오랜만에 서점 여주인을
만났는데, 책 구입을 막내한테 떠넘긴 지 3년이 넘은 터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그녀를 따라 서점으
로 갔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옛정을 생각해서라도 책을 몇 권 사주는 게 도리 같아서였다. 세 권을 골
라서 계산대로 가져가니 책값이 4만 100원이라고 했다. 여주인은 4만 원만 받으라고 했지만 아르바
이트를 하는 아낙은 전혀 깎아줄 눈치가 아니었다. 나도 책값을 깎을 생각은 없어 5백원짜리 동전과
오만원짜리 지폐를 내밀었다. 아낙은 먼저 400원을 거슬러주더니 이어 4만 원을 내밀었다. 곁에 서
있는 여주인과 얘기하느라고 무심결에 주는 대로 거스름돈을 받아 넣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3만 원
을 더 받은 게 아닌가.
이튿날 오후 다시 서점을 찾아갔다. 여주인은 여전히 반갑게 맞이했다. 아낙을 찾으니 오늘 비번이라
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3만 원을 돌려줬다. 그냥 돌아서 나오려니 공연히 뭔
가 빠뜨린 것 같아 신간 코너를 뒤적이다가 눈에 띈 게 「82년생 김지영」이었다. 김지영! 아주대병
원에서 이국종과 함께 외상외과를 이끌고 있는 백의의 천사 아닌가. 이름만 들어도 반가운데다 마침
「골든아워」 중 김지영이 쓰러지는 장면을 막 읽었던 참이라 그 책을 사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性평등 문제와 관련하여 「82년생 김지영」이 상당한 영향을 끼치면서 영화로도 나오는 등 사회적으
로 상당한 관심을 끌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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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통계에 의하면 지영이라는 이름은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여자 이
름 가운데 가장 흔하다고 한다. 2017년 10월 31일에 방영된 jTBC 오락프로 《내 이름을 불러줘-한名
회》 김지영 편에서는 대한민국에 김지영이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모두 2만 7082명에 이른다고 했
다. 따라서 「82년생 김지영」이란 제목은 이 나라에서 가장 평범한 여자의 평범한 삶을 그렸다는 상
징성을 띠고 있다. 물론 모든 진리는 평범함 속에 있고, 그 평범한 고정관념 속에서 여성들에 대한 사
회적 편견과 핍박이 지속되어왔지만.
작가 조남주는 1978년 서울 태생으로 이화여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0년 동안 MBC 시사교양 프로
그램 《생방송 오늘아침》 등에서 구성작가로 일했다. 2011년 장편소설 「귀를 기울이면」으로 등단
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하다가, 2016년 10월 「82년생 김지영」을 출간하면서 일약 밀리언셀
러 작가 반열에 올랐다. 「82년생 김지영」은 출간한 지 2년여 만인 2018년 11월 27일 판매부수 100
만 부를 넘김으로써 2006년 김훈이 지은 「칼의 노래」와 2009년 신경숙이 지은 「엄마를 부탁해」
이후 오랜만에 밀리언셀러가 되어 침체된 출판계에 신선한 돌풍으로 작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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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생 김지영」은 20대부터 50대까지 전 연령층의 여성들이 고르게 선호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
었다. 소설의 흥행에는 몇 가지 사회적인 이슈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2017년 5월 국회의원 노회찬
이 대통령 문재인에게 이 책을 선사하면서 한 번 이슈가 되었고, 2018년 2월에는 서지현 검사가 성추
행 사실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82년생 김지영」을 언급함으로써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렸다. 이어 3
월에는 걸그룹 레드벨벳의 아이린이 이 소설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하자 할 일 없는 남자애들이 시비
를 걸면서 잊혀져가던 「82년생 김지영」을 다시 한 번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타의에 의한 성
공적 노이즈 마케팅이었던 셈이다.
2019. 2. 25. 15:30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도사리고 있는 부당한 남존여비 제도를 날카롭게 지
적하고 있다. 하루속히 개선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부부가 합의하면 자녀에게 父 또는 母의 성을 붙
일 수 있는 법률이 새로 생긴 취지에 대해서도 공감이 간다. 유전학적으로만 보면 모계 성을 따르는
것이 더 확실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의 성을 병기하자는 견해에는 동의할 수 없다. 소설 말미에
<우리 모두의 김지영>이라는 제목으로 작품해설을 쓴 여성학자가 있는데, 그의 이름이 김고연주다.
‘김고’는 부모의 姓 김씨와 고씨를 따다 합성한 임의의 姓일 뿐 호적에 등재되지는 못한다. 그런데 김
고연주가 이박성찬과 결혼했다고 치자. 그 자녀의 성은 김고이박 또는 이박김고가 되어야 하고, 그
자녀의 자녀는 여덟 글자, 그 자녀의 자녀의 자녀는 열여섯 글자의 姓을 이름 앞에 붙여야 한다. 이어
32, 64, 128, 256, 512, 1024… 결국 10대만 내려가면 우리나라 사람 누구도 자신의 姓을 외울 수 없게
된다. 부모의 성을 양쪽 다 붙여야 한다는 주장은 앞날을 내다보지 못한 전형적인 단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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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독자들의 가장 큰 호응을 얻은 여류작가의 3대 작품을 꼽으라면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한강의 「채식주의자」, 그리고 「82년생 김지영」을 들 수 있다. 그 동안 공지영이 여류작가 중 독
보적인 1인 체제를 고수해왔지만, 최근 사회적인 이슈마다 골수 좌파다운 독설을 퍼부으며 독자들로
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엄마를 부탁해」는 노령화 사회를 맞아 치매에 걸린 부모의 문제를 가족 각
자의 시각에서 다루어 사회적으로 큰 공감을 얻었고, 「82년생 김지영」은 사회 구석구석에 관행으
로 자리잡고 있는 性 불평등 문제를 모나지 않으면서도 예리하게 지적하여 백만 독자의 공감을 얻은
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채식주의자」는 영국에서 맨부커상을 받았다니까 잠시 국내 독자들의 관
심을 끌었을 뿐 큰 감동이나 공감 요인은 없었다. 영국인들이 왜 그런 상을 주었는지도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82년생 김지영」의 主독자층이 여성인 데서 알 수 있듯이 심각한 존재의 가치문제로
갈등하는 지성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
기라 공감대가 컸던 듯싶다. 구성도 치밀하고 문장도 깔끔하다.
2019. 2. 25. 19:44
출처:문중13 남성원님 글
첫댓글 기업의 갑질은 이미 지적 되었고 또 이를 개선해 나가는 절대적 병폐 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기업의 갑질을 고발한 좌파성향의 단체들이 일거리로 일삼는 사회여론 조성의 악질적 발원으로 만연된 사회상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업의 활력제고를 부채질 하고 있어 참으로 암담 합니다. 신문.방송이 그렇고 어느것 하나 희망을 안겨주는 구심점이 사라진지 오래 입니다. 주흥업소, 연예인의 비행을 다루며 행여 불거질 정적을 찾기위한 고심이 나라일이 되어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