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플리 장군은 6.25 전쟁 때 워커 장군의 뒤를 이어 駐韓 美 8軍司令官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는 미국 전사에서 전쟁영웅으로 추앙 받는 군인으로 제 1차 세계대전과
제 2차 세계대전에 참가하였으며 유명한 발지전투를 지휘한 사단장이었고
프랑스에서 독일군을 몰아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군인이다.
그가 한국전선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8군사령부 참모 중에 한 장군이
" 한국전쟁은 희망이 없으니, 동경으로 철수하자."고 건의를 하자,
"나는 승리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나와 함께 일하기 싫다면 당장 집으로 보내 주겠다."
라고 말해 한국전선에서 해이되어 가는 미군의 전투군기를 확립시켜 놓기도 하였다.
그는 뛰어난 전략가였으며,
이승만 대통령과 호흡을 맞춰 공산군을 물리치고 한국군을
현대화하는 일에 혼신의 정력을 쏟았다.
특히 그의 아들은 B-26폭격기 조종사로써 1952년 4월 4일 새벽 3시경 북한의
순천지역에서 야간폭격 임무를 수행하던 중,
적의 대공포에 맞아 전사하였다.
밴플리트는 그날 오전 10시 30분경 공군사령관으로부터
아들의 전사소식을 들었지만,
아무런 동요도 없이 다음날 한국군 2군단 창설식에 참석했다고 한다.
그의 아들 "밴플리트 2세"는 공군 중위였으며,
그리스에서 전폭기 훈련을 마치고
한국전선에 지원하여 왔다. 그는 한국으로 떠나면서
그의 어머니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그는 "군인의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제목을 붙이고,
"어머니의 눈물이 이 편지지를 적시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자원해서 전투비행훈련을 받았고,
전투간 B-26폭격기를 조종해
다른 승무원들과 함께 야간비행을 할것입니다.
저는 모든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살수 있는 권리를 위해 싸우고 계시는
아버님(밴플리트 장군) 에게 조그마한 힘이 되어 드리기 위해 갑니다.
저를 위해 기도하지 마시고 ,
미국이 위급한 상황에서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소집된 제 승무원 들을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들 중에는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아내가 있고,
아직 가정을 이루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은 저의 의무입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이것은 그의 생애 마지막 편지였다.
미국사람들 전부는 아니겠지만, 거의 60년이 되어가는 한국전쟁에서 싸웠던
기억을 잊지않고 매년 한국을 찾아주는 많은 노병들이 있고,
전쟁 때 헐벗고 굶주리던
한국민을 위해 많은 지원을 아끼지않았던 독지가들도 많다.
밴플리트 장군만 해도 1953년 전역 후,
제주도에 목장을 개설하여
지금과 같은 제주목장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였고,
1972년에는 80세의 노구를 이끌고
한국을 찾았을 정도로 한국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졌던 사람이다.
-만추 제공- |
첫댓글 다시금 한국전 영웅을 잠시나마 볼수있어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