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Nadīsotasuttaṃ 109(4-1-10). 사람의 희희낙낙의 경[Purisapiyarūpasut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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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Vuttañhetaṃ bhagavatā, vuttamarahatāti me sutaṃ –
1.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셨고 거룩한 님께서 설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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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yyathāpi, bhikkhave, puriso nadiyā sotena ovuyheyya piyarūpasātarūpena.
Tamenaṃ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 disvā evaṃ vadeyya –
“수행승들이여,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희희낙락하면서 강의 흐름을 따라 옮겨갈 때에,
눈 있는 자가 언덕에 서 있다가 이와 같이
‘kiñcāpi kho tvaṃ, ambho purisa, nadiyā sotena ovuyhasi piyarūpasātarūpena,
atthi cettha heṭṭhā rahado saūmi sāvaṭṭo sagaho sarakkhaso
yaṃ tvaṃ, ambho purisa, rahadaṃ pāpuṇitvā maraṇaṃ vā nigacchasi maraṇamattaṃ vā dukkha’nti.
Atha kho so, bhikkhave, puriso tassa purisassa saddaṃ sutvā hatthehi ca pādehi ca paṭisotaṃ vāyameyya.
‘여보게, 어째서 그대는 희희낙락하면서 강의 흐름을 따라 옮겨가는가?
하구에는 파도가 있고 소용돌이가 있고 악어가 살고 나찰이 출몰하는 호수가 있다.
여보게, 그대가 그곳에 도착하면 죽음이나 죽음에 이를 정도의 고통을 겪는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수행승들이여, 그러면 그 사람은 그의 소리를 듣고 두 손과 두 발로 흐름을 거슬러 가려고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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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amā kho me ayaṃ, bhikkhave, katā atthassa viññāpanāya.
Ayaṃ cettha [ayaṃ cevettha (syā.)] attho –
수행승들이여, 내가 설한 이러한 비유는 의미를 알려 주기 위한 것이다.
그것에 대한 의미는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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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iyā soto’ti kho, bhikkhave, taṇhāyetaṃ adhivacanaṃ.
수행승들이여, ‘강의 흐름’이라는 것은 곧, 갈애를 지칭하는 것이다.
‘‘‘Piyarūpaṃ sātarūpa’nti kho, bhikkhave,
channetaṃ ajjhattikānaṃ āyatanānaṃ adhivacanaṃ.
수행승들이여, ‘희희낙낙’이라는 것은 곧,
여섯 가지 내적 감역을 지칭하는 것이다.
‘‘‘Heṭṭhā rahado’ti kho, bhikkhave, pañcannaṃ orambhāgiyānaṃ saṃyojanānaṃ adhivacanaṃ;
수행승들이여, ‘하구의 호수’라는 것은 곧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결박<*慾등에 묶임: 욕계에 다시 돌아옴 ↔ 불환자>을 지칭하는 것이다.
‘‘‘Ūmibhaya’nti kho [sañīmīti kho (bahūsu)], bhikkhave, kodhupāyāsassetaṃ adhivacanaṃ;
수행승들이여, ‘파도’라는 것은 곧, 절망적 분노를 지칭하는 것이다.
‘‘‘Āvaṭṭa’nti kho [sāvaṭṭoti kho (bahūsu)], bhikkhave, pañcannetaṃ kāmaguṇānaṃ adhivacanaṃ;
수행승들이여, ‘소용돌이’라는 것은 곧, 다섯 가지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종류를 지칭하는 것이다.
‘‘‘Gaharakkhaso’ti kho [sagaho sarakkhasoti kho (bahūsu)], bhikkhave, mātugāmassetaṃ adhivacanaṃ;
수행승들이여, ‘악어와 나찰’이라는 것은 곧 여인을 지칭하는 것이다.
‘‘‘Paṭisoto’ti kho, bhikkhave, nekkhammassetaṃ adhivacanaṃ;
수행승들이여, ‘흐름을 거슬러’라는 것은 곧 욕망의 여읨<*出離 = 慾을 벗어남>을 지칭하는 것이다.
‘‘‘Hatthehi ca pādehi ca vāyāmo’ti kho, bhikkhave, vīriyārambhassetaṃ adhivacanaṃ;
수행승들이여, ‘두 손과 두 발로 하는 노력’이라는 것은 곧, 열심히 정진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이다.
‘‘‘Cakkhumā puriso tīre ṭhitoti kho, bhikkhave, tathāgatassetaṃ adhivacanaṃ
arahato sammāsambuddhassā’’ti.
수행승들이여, ‘언덕에 서있는 눈 있는 자’라는 것은 곧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을 지칭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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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amatthaṃ bhagavā avoca. Tatthetaṃ iti vuccati –
2. 세존께서는 이와 같은 의취를 설하셨고 그와 관련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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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hāpi dukkhena jaheyya kāme, yogakkhemaṃ āyatiṃ patthayāno;
Sammappajāno suvimuttacitto, vimuttiyā phassaye tattha tattha;
Sa vedagū vūsitabrahmacariyo, lokantagū pāragatoti vuccatī’’ti.
“미래에 멍에로부터의 안온을 원한다면,
괴롭더라도 감각적 욕망을 버려야 하리.
올바른 알아차림이 있고 마음이 잘 벗어난 자는<*慾을 벗어남이 心解脫>
그때마다 해탈에 이르리.
그는 곧 궁극의 앎을 지닌 님, 청정한 삶을 완성한 님,
세계의 끝을 아는 님, 피안에 이른 님이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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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yampi attho vutto bhagavatā, iti me sutanti.
세존께서는 이와 같은 의취도 역시 설하셨다고 나는 들었다.
Dasamaṃ.
첫댓글 nadiyā sotena ovuyhasi
piya-rūpa-sāta-rūpena
[희희낙락하면서 강의 흐름 ] :
육내입처는 <즐거운 것인 듯 하고, 기분 좋은 것인 듯 하는 것>이다.
여기서 갈애(중에서 慾愛)가 일어날 때 일어나고,
자리잡을때 [안이비설신의]에서 慾愛가 자리잡는다.
그런 慾愛의 흐름을 따라 <희희낙낙>하는 것은
舊業인 육입(육처)에 대한 慾愛가 반복되는 것이다.
그 결과는 5하분결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즉 심해탈을 하지 못하는 것이고
다시 慾界세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봄봄님... 희희락락 경 ...
<piyarūpa>를...< 희희락락>으로 번역하셨네요... 재미있네요...
이 경의 번호가 알고 싶습니다. 니까야에서 찾아보려고요...^^
Nadīsotasuttaṃ 109(4-1-10). : 이 숫자 의미도 알고 싶습니다. ~~^^
이띠붓따까-여시어경(전재성 역주)의 내용입니다.
109는 이띠뿟따까 총112경 중에 109번째 경이라는 표시.
4-1-10은 4장 1품 10번째 경이라는...
이띠붓따까는 전체 4장으로
1장은 3품 27경, 제2장은 2품 22경, 제3장은 5품 50개경, 제4장은 1품 13경으로 구성됨
원전의 제목은 Nadīsotasutta인데...
전재성님의 책에서는 Purisa piyarūpa sutta로 되어있는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내용도 어렵고 번역은 더 어렵고,,, 주석은 더더욱 어렵고....
원어는 더 골때리게 힘들고.......
그래서 이 카페에 왔는데...
빠알리어공부모임이라고 해놓고....
강사는 영감탱이 등쌀에 도망가신 지 오래된 것 같고...
ㅎㅎ
[무위 님]이 이미 자세히 설명했으므로....
봄봄이 경문 출처 빨리 찾는 요령은
한글은 네이버가 아무래도
빠알리로 찾으려면 구글로 찾습니다.
어떤 빠알리 문구 예를 들면
본문의 [ovuyhasi piyarūpasātarūpena] 단어를 지정하고
오른 크릭하면 <구글로 찾기 > [없으신 분은 추가하면 됨] - 모르시면
원하는 단어 복사하여 구글에서 찾기.
그러면
[......
Iti 109: Nadīsotasutta—Mahāsaṅgīti Tipiṭaka Buddhavasse ...
suttacentral.net › iti109
“Seyyathāpi, bhikkhave, puriso nadiyā sotena ovuyheyya piyarūpasātarūpena. ... nadiyā]
등등이 나타나면...
대략 <여시어경> 그리고..... 찾으시면 빠름.
봄봄 기준.
@무위 무위님... 봄봄님... 고맙습니다.
여시어경이라면... 다른 분의 번역을 보기가 어렵겠네요... ^^
사두~~~
본 경문의 운문 부분에서는 [kāma]가 나타나지 않고 [pañcannetaṃ kāmaguṇānaṃ ]가 나타납니다.
게송에서 나타나는 [kāme]를 직접 언급되어 있지 않는 운문 부분에서도 찾을 수 있지 싶습니다.
그리고 운문 부분에서 [kāma]를 찾아야
[kāma]와 [pañcannetaṃ kāmaguṇānaṃ ]의 관계도 이해되고
경문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도 가능합니다.
욕계에 태어난 우리 인간들은
태어날 때 부터 6입(6내입처)에 대한 慾愛를 가지고 태어난 결과입니다.
이미 6내입에 대한 慾(까마)
6내입 중에서도 意내입에 대한 慾(까마)
그리고 전5근(안이비설신)에 대한 慾(까마) - 法외입에 대한 慾(까마)
그리고서 어떤 의미에서는 (12처에서) 제일 마지막이
전5境(이른바 5가지 慾의 대상 = 5욕락)에 대한 慾(까마) .......
이론적인 순서는 이렇지 싶습니다.
觸에 의해서 생겨나는 것이 5욕락입니다. [해맑은 님]이 사경하신 경문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