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을 아껴 영생을 위하여 일하라
에베소서 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요한복음 6: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찬송가 255장(너희 죄 흉악하나)
오늘 본문 말씀 에베소소 5:17 말씀 중에 ‘세월을 아끼라’는 말씀은 “인생의 시간을 값을 주고 사라”는 말입니다. 좀 더 풀이하자면, 우리 인생의 흐르는 시간을 의미 있고 영원한 가치를 가지도록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모세의 시편 90편 고백처럼, 사람의 연수는 70년이요 강건하면 80년이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날 의료 기술의 발전과 건강 정보가 많아지고 기대 수명이 높아지는 환경 덕분에 90세를 사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러나 근본적인 면에서 본다면 여전히 영원한 가치는 추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의미 없는 세월을 낭비하며 사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큰 영향력을 끼치고 화려한 조명 세례를 받고 사람들의 부러움을 받는 삶을 사는 사람일지라도 영원의 관점에서 볼 때 삶을 헛되이 산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평범하고 고난이 많고 조용한 삶을 살아가고 그 세월이 험악한 세월로 일관했을지라도 영원의 관점에서 참으로 아름답고 고귀하고 빛나는 영광이 점철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세월을 아끼라고 가르쳤으며, 주님께서도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가르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한 하루 24시간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12시간의 낮과 12시간의 밤을 평등하게 주셨습니다. 그 동일한 하루의 선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사람의 삶을 영원하게 만들거나 헛되고 무가치한 삶으로 빚어가는 것을 결정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젊은 시절에 술을 배우더니 중년이 되어서도 계속하여 술에 빠져 살다가 알콜중독자가 되었습니다. 중년을 넘어가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매일 술을 마시고 그 결과 간이 굳어지고 수전증이 생기고 기억력이 떨어져갔습니다. 병원에도 여러 번 입원하며 알콜 중독 치료를 받기도 했지만 다시 나오면 옛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결국은 어느날 술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에게는 술이 가장 중요한 것이었던 것입니다. 하루라는 시간에서 술과 함께 하는 시간이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술상에서 엎어져 그렇게 세상을 등지고 만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낚시가 그러하고 어떤 사람은 도박이 그러하고 어떤 사람은 등산이 그러합니다. 그래서 저 히말리야 산에 등반하다가 조난당하여 그의 삶을 마치고, 어떤 사람은 바다 낚시를 갔다가 바다에서 죽습니다. 과연 그들은 영원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빛의 나라 천국에 들어가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예수님을 믿어도 세상에서 휴식과 취미를 즐길 수 있습니다. 건강을 챙기기 위하여 운동도 해야 합니다. 사람들과 만남을 갖고 즐거운 대화도 나눠야 합니다. 음악도 즐기고 동호회도 참석하며 대화도 나눠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영원하고 의미 있는 삶을 열렬히 추구하는 삶, 곧 세월을 아끼는 삶, 썩을 양식을 추구하는 삶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얻도록 일하는 삶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그 마지막이 영원한 향기가 묻어납니다. 맨발의 전도자 최춘선 할아버지는 전도하는 노년을 보내다가 그 날도 전도하고 전철로 집에 돌아오시다가 전철에서 잠드신 채로 하나님께 그 영혼이 올라가셨습니다. 사무엘은 은퇴한 후에 자기의 고향 라마나욧에서 기도하는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저희 교단에서 펴낸 순교자 전기 중에 김규홍 장로님은 인천에서 남침한 북한군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여 후퇴하는 북한군이 감옥에 잡아들인 사람들을 다 총살시키고 급히 북으로 후퇴하였습니다. 인천이 수복되어 장로님의 사위 목사님이 아버님 장로님이 잡혀 있던 감옥에 급히 가보니, 이미 감옥에는 총살당한 사람들의 시체가 온통 여기 저기 널부러져 있었습니다. 그가 김규홍 장로님이 갇힌 감방에 가서 보니, 그곳에 다들 피 흘린 쓰러진 시체 가운데 김규홍 장로님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 무릎꿇고 앉은 채 그 손을 가지런히 무릎 위에 놓고 기도하는 자세로 세상을 떠난 모습이었습니다. 총소리가 감옥에 가득하고 곁에는 피 흘리며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과 쓰러지는 혼란 속에서 그렇게 단정하고 고요하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그가 늘 기도하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입니다.
사랑의 원자탄이라 불리운 여수 애양원 문둥병자 성도님들을 돌보던 손양원 목사님 역시 성도들이 피난가라는 애원을 뿌리치고 남았다가 결국 북한군에 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인천 상륙 작전이 성공하자 불안해져서 후퇴하는 북한군은 여수 지역에서 체포한 사람들을 여수의 한 과수원으로 끌고가 사살하였습니다. 그 때 결박되어 끌려가던 중에도 손양원 목사님은 목이 터져라고 함께 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믿으라고 전도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전도하다가 총개머리판으로 입을 맞으면서도 전도하다가 결국 총살당했습니다.
이런 모습들은 그들이 매일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러한 최후의 모습은 그들이 이전에 어떻게 경건의 훈련을 철저하게 해왔는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기 때문입니다. 경건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매일의 삶이 결국 그 사람의 마지막의 모습을 빚어내는 것입니다. 오늘의 나의 삶은 마지막 날의 내 모습을 미리 보여주는 예고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 말씀을 마음에 새깁시다.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오늘의 이 땅에서의 매일의 삶 속에서 영원한 나라의 삶을 살아가기를 늘 힘씁시다. 그리하여 주님이 언제 어느 곳에서 불시에라도 우리를 부르신다면 곧장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주님 앞에 감히 설 수 있는 아름답고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