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61: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 이는 바벨론에서 고통받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이사야가 공식적으로 위임받는 대목으로 이해도리 수도 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메시야에 관한 언급으로 해석되어지는데, 이를 뒷받침하는 결정적 근거는 예수께서 본절을 자신에 관한 예언으로 명시하셨다는 사실이다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으니라" 예수께서 공생애를 처음 시작하신 순간에도 그 사역의 공적 인정을 위하여 성령이 임하신 바 있다. 기름을 부으사 - 이 용어에서 '메시야'란 단어가 유래된다. 이스라엘의 왕, 제사장, 선지자등은 그들의 중요 직책을 위해 구별될 때 그 머리 위에 기름 부음을 받았다..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구별해 세우신 것을 암시하기 위해 본 표현이 사용되었다. 메시야를 언급하려고 이와 동일한 용어를 사용한 것은 시 45:7;히 1:9 등에도 나온다. 가난한 자 - 원래 이 용어는 상처나 억압으로인해 고통당하는 자를 뜻하며, 여기서는 1차적으로 낙담 중에 있었던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을 뜻할 수 있다.
그러나 더 나아가서는 이 용어는 자신에게는 소망이 없으므로 오직 하나님이 보낼 메시야를 고대하며 사는 심령이 가난한 자를 가리킨다고 봄이 더 정확하겠다. 이 말은 시편에서 개인적 재난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고대하였던 신실해 자들을 가리키는 용어로 종종 사용되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지혜를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이신 자신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알아보지 못한 마음이 교만한 자를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라고 풍자하셨고 반대로 그를 알아본 자들을 '어린 아이들'이라고 부르셨는데 이자들이 바로 가난한 자들이다.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 1차적으로는 포로 귀환을, 더 나아가서는 죄와 죽음으로부터의 구원을 예언하는 내용이다.
또한 본 표현은 희년의 때에 모든 종된 자에게 선포되는 자유를 동시에 연상케 한다. 갇힌 자에게 놓임 - 원문상으로는 '갇힌 자의 감옥문을 여는 것'이란 뜻이다. 여기서 '여는 것'이란 메시야의 도래와 연관지어 볼 때 죄와 사망의 올무로부터의 해방 혹은 영적으로 장님되었던 자가 영의 눈을 뜨는 것을 가리킨다
눅 4:18은 본절을 그대로 인용하면서 본절에는 없는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이란 구절을 첨가함으로써 후자의 뜻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사 61: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여호와의 은혜의 해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해'이다. 이것은 나팔이 올리고 온 이스라엘 땅에 자유가 선포되었던 희년의 때를 연상시키는 표현이다. 희년의 때와 마찬가지로 메시야의 때도 '해방'이란 이미지를 내포한다. 메시야의 도래의 때는 온 세계 인류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키는 때인 것이다.
메시야의 도래로 시작된 해방의 때는 은혜의 때라고 불리기도 한다('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구원의 날이로다', 고후 6:2). 하나님의 신원의 날 - 문자적인 뜻은 '하나님의 보복의 날'이다. 1차적으로 이날은 바벨론으로부터의 포로 귀환의 날을 가리킨다. 그런데 바로 이날을 '복수의 날'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할 만하다.
바로앞에 언급된 바 '여호와의 은혜의 해'의 대비적 표현으로 본 표현이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에게 '은혜의 해'가 되는 때가 그 대적에게는 '복수', 곧 '심판'의 때가 된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를 역으로 말하면, 마지막 심판날에 하나님이 대적들을 멸하시는 보응은 곧 성도들에게는 영광을 얻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 6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 원문 직역은 '아름다움을 주어 그재를 대신하며'이다. '아름다움'에 해당하는 '페에르'는 본래 여자들이 머리에 쓰던 아름답고 화려한 관을 말하며, '희락의 옷', '찬송의 옷'과 함께 즐거운 축제 때를 연상시킨다(G.W. Grogan). 이제 여호와의 구원과 은혜의 때가 이르면 슬픔의 표로 뒤집어 썼던
재를 털어내고 대신 아름다운 관을 쓰고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희락의 기름 - 당시는 기쁨의 축제 때 특히 초청한 귀빈의 머리 위에 향내나는 값비싼 기름을 붓곤 하였다. 그외 성경은 축제 혹은 기쁨 그 자체를 뜻할 때 '기름'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57:9). 공적인 재난 혹은 슬픔의 때에는 결코 기름을 사용하지 않았다
찬송의 옷 - 절망에 빠진 자를 삼베옷을 입은 것에 비유하는 대신, 찬송과 감사를 드리고있는 자는 밝은 채색옷을 입은 것에 비유한다. 의의 나무- '나무'에 해당하는 '엘레'는 팔레스틴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상수리나무를 뜻한다. 이 나무는 굵고 튼튼하여 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한다..
이런 맥락에서 탈굼역, 제롬역, 시리아역 등은 이을 '강한 것' 혹은 '힘센 것'으로 번역했음. 본문의 '의의 나무'는 한때 죄악으로인해 넘어졌으나 은혜로 말미암아 회복되어 굳건한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주의 백성을 가리킨다. 그들이 그렇게 변할 수 있는 것은 정원사가 나무를 심듯이 하나님이 친히 그들을 구원하여 세우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이 그들을 통해 영광을 열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에 의해서만 세움을 받는 사실은 주님이 사용하신 비유에도암시도이가 있다 : "예쑤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심은 것마나 내 천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