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은 사의재(四宜齊)에서 마음을 살피는 공부를 하였다
부끄러움을 알아라 毋使汝愧
사람의 본체인 仁義禮智를 알고, 禮義廉恥를 지킨다. 禮義廉恥
부끄러움을 알아야 사람이다 毋使汝愧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 (無羞惡之心이면 非人也라)
맹자의 가르침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 毋使汝愧(무사여괴)
부끄러워 할 줄 안다. 부끄러움을 알아야 사람이라고 말한다 (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
부끄러워하는 양심이 없는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無羞惡之心이면 非人也라)
공부는 잃어버린 어진 마음인 인(仁)을 회복하는 것이다
날마다 배우고 익히는 학문의 길은 잃어버린 마음을 찾는 것
학문은 올바른 것을 늘 생각하고(學問之道無他)
마음을 지키는 것으로 마음을 찾는 것이다(求其放心而已矣)
잃어버린 어진 마음인 인(仁)을 회복하는 것이다
어짊이 사람의 마음이고(仁人心也)
올바름이 사람의 길이다(義人路也)
사람의 길인 仁義의 길로
올바른 사람의 길을 가라
바른 사람이 옳은 일을 한다(義在正我)
유네스코 세계 기념인물 다산 정약용(1762~1836)
유네스코는 2012년에 세계기념 인물로 네 사람 (루소, 헤르만헤세, 드뷔시, 정약용)을 선정하였는데,
그중 다산 정약용 선생이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등재되었습니다.
요새 어느 괴이한 것들이 옛 선현의 글방 이름을 빌어 쓰다는데
조금이라도 자신의 부끄러움을 알면 그렇게 칭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후나 대부가 왕을 칭한다면 그것이 참칭이요,
仁 을 구하지 못했던 졸부들이 義를 마땅히(宜) 흉내 낸다면 결국은 의(狋)로,
개들의 씩씩거림 뿐 일 것이다.
宜 자는 갑골문자에서 고기(肉)를 도마 위에 담아 논 형상이니
하늘이나 조상께 제를 올릴 때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에서 유래를 한다니
논어에서 자주 등장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仁義 義在正我)
西學으로 폐족을 당한 다산께서 四宜齊를 지으신 일을 의미해 보자
남의 글을 빌어 다산의 심중을 어렴풋이나마 짐작해 보고자 한다.
사의제(四宜齊)의 역사적 의미와 교훈 (안경순 교장)
마음이 울적하거나 외로울 때면 자전거를 타고 사의제를 곧 잘 찾곤 한다.
동천정(東泉亭)에 앉아 다산선생의 지난날을 떠올리며 상념에 젖다보면
어느 틈에 가슴이 후련해지면서 절로 생기가 돋는다.
다산선생이 처음 강진에 도착한 것은 나주 율정점에서
중형 손암 선생과 생전에 마지막 눈물의 이별을 하고
1801년 11월 23일(음력) 추운 겨울 저녁 무렵이었다.
신유년(1801 순조1년) 대비 정순왕후의 유시로
‘천주학을 믿는 사람은 5가 작통하여 코를 베어 멸종시키라’는 언명이 내려진 때인지라
서울에서천주학 죄인이 온다 하니 강진 백성들은 모두 두려워 문을 부수고 담장을 헐면서 도망쳤다.
누구 하나 대하려하지 않았는데 오직 동문 밖 주막집 노파가
다산선생을 받아들여 4년간(1801- 1805)을 극진히 돌봐주었다.
다산선생은 주막집 뒷골방에서 두문불출 깊은 상념에 빠져 지내다가 불현 듯
“내 인생에 있어 이제야 한가로움을 얻게 되었으니 학문할 때를 얻게 되었구나” 하고
자위하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상례사전서문, 자찬묘지명)
1803년 주모의 적극적 권유에 의해
읍내 제자 6명(손병조, 황상, 황지초, 이청, 김재정)을 가르치면서 저작활동 또한 시작하였다.
또한 선생이 거처한 방에 四宜齊란 당호를 걸고 사의제기를 썼으니 다음과 같다.
<사의제(四宜齊)는 내가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할 때 살던 방이다.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지는 의미에서 사의(四宜)에서
첫째는 사의담(思宜澹 생각은 맑게 하되 더욱 맑게(몰입)
둘째는 모의장(貌宜莊 용모는 엄숙히 하되 더욱 단정히 (남의 도움에 감사)
셋째는 언의인(言宜認 말은 과묵하게 하되 더욱 과묵하게’(말은 생각을 담기에 조심 또 조심하라)
넷째는 동의중(動宜重 행동은 중후하게 하되 더욱 무겁게’(행동을 진중, 신중하게)하라
진심 어린 마음, 단정한 용모, 마음을 읽고 감동을 주는 언어, 진중한 삶으로 삶에 생명을 얻었다
이 4가지를 마땅하게 해야 할 방이다.
마땅함(宜)이란 義에 맞도록 하는 것이니 義로 규제함이다.
나이 들어감이 염려되고 뜻을 둔 사업이 퇴폐됨을 서글프게 여기므로
자신을 성찰하려는 까닭에서 지은 이름이다>
때는 가경 8년(1803) 11월 신축일(10일) -상례사전 서문
다산선생은 이곳에 계시면서 상례사전, 주역사전(갑자본 8권), 아학훈의, 재경기해방례변,
애절양, 선자시, 탐진요다수, 경세유표, 목민심서 등의 자료를 구상하였다.(1803- 1805)
다산 선생은 귀양살이를 배움과 가르침과 집필로 삶을 진수를 실천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위대한 다산선생이 어떻게 역경을 극복하였고,
오히려 어떤 생활을 했는지 극명하게 엿볼 수 있다.
四宜齊의 宜는 마땅하다(宜)는 것은 의롭다(義)는 것이니 의(義)로써 자신을 제어함을 이룬다
몸을 씻으면서 육체적인 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인 것을 누구나 깨닫게 된다.
조선말기(1770)의 세계적인 인물 다산 정약용 (루소, 헤르만헤세, 드뷔시, 정약용)
유배18년 500권의 책을 지음,
경집 232권, 문집이 260여권
목민심서(牧民心書) 48권 16책,
형옥에 관한 법정서 흠흠신서(欽欽新書) 30권 10책,
정치 사회 경제 제도를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목표로 경세유표(經世遺表) 필사본 44권 15책,
방례초본(邦禮草本),
아학편훈의(兒學編訓義 아이들을 가르치려 지은 책, 어떻게 살아야 하는 삶의 장향을 가르치는 책)
유배지에서도 자녀교육에 힘을 썼다
자녀들에게 어머니를 잘 섬겨라고 하였다
다산은 부인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남편(단산)을 위해 글씨쓰기 편한 다홍치마를 보내왔다
다산은 서첩 4권을 만들었고, 하피첩 가훈를 써 양주집으로 보냈다
자손들의 독서를 강조하였다
다산은 家誡(가훈) 하피첩으로 가르쳤다.
孝(孝弟慈, 깊이 생각하여 헤아린다.
아버지[父]는 의(義)롭고, 어머니[母]는 자애[慈]로우며,
형(兄)은 우애[友]하고, 동[弟]은 공손[恭]하며, 자식은 효도[孝]해야 한다),(孝弟慈)
다른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지 않는다(浩然之氣).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光風霽月).
오직 나라와 백성을 위해 옳은 것을 추구한다.(唯是是求)
仁義 옳고, 바른 길을 가르친다(삶의 大道)
어짊이 사람의 마음이고(仁人心也)
올바름이 사람의 길이다(義人路也)
五敎이다(경천, 공경, 조화, 의로움, 책임 원리)
①하늘을 경외(敬畏)하며 살아간다는 敬天愛人 ‘경천의 원리’
②타인을 사랑하고 공경한다는 ‘사랑과 공경의 원리’
③타인과의 관계 및 조화를 잘 한다는 ‘관계 및 조화의 원리’
④덕망과 의로운 삶을 살아가는 ‘덕성과 의로움의 원리’
⑤자기에게 성실하고 타인에게 책임을 다한다는 ‘자기성실과 책임의 원리’
1818년 500여권의 책을 들고 경기도 남양주 고향으로 돌아와
수오제에서 지냈다
시류에 흔들리지 않도록 남은여생 18년을 마음을 다스리며 살았다
선인의 가르침을 실천하였다
“인간 사어라도 천청은 약뢰하고(人間私語天聽若雷) 암실 기심이라도
신목은 여전이니라(暗室欺心神目如電).
사람끼리 사사로이 하는 말이라도 하늘의 귀에는 천둥처럼 크게 들리고,
어두운 방안에서 자기의 마음을 속일지라도 신의 눈에는 번개불과 같이 밝게 보이느니라.”
말조심하고, 마음을 속이지 말고, 맑은 눈으로 세상살이를 바르게 하라
다산은 마음을 살피고 독서를 강조하여 고향 고양에 수오재(守吾齋)를 지어
‘나를 지키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게 하였다.
- 명심보감 天命편에
옛 선비들은 신기독(愼其獨)하여 철저하게 마음을 수양하였듯이,
다산선생 역시 사의제를 통해 실천하였음을 알 수 있다.
詩聖 杜甫선생님은
‘語不驚人 雖死不休’(내 글이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서도 쉬지 않는다.)
‘孤立無援’(학문의 길은 성실과 정진이다.)
다산 선생은 제자 황상에게 공부하는 방법은 秉心確(마음을 확고히 다잡는 것이다)이고,
공부는 三勤戒를(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가르쳤다
己千의 情神으로 踝骨三穿이 되도록 공부에 전념하여야 한다.
人一能之면 己百之오 다른 사람이 한 번에 그 일을 해내면 백 번에 해낼 것이며,
人十能之면 己千之라 다른 사람이 열 번을 하여 그 일을 해 내면 천 번에 해 낼 것이다.
君子之學 不爲則已 군자의 학문은 안하면 안했지
爲則必要其成 한번 하면 반드시 끝장을 본다.
秉心確, 三勤戒, 踝骨三穿
다른 사람이 한 번에 그 일을 해내면 백 번에 해낼 것이며,
다른 사람이 열 번을 하여 그 일을 해 내면 천 번에 해 낼 것이다.
군자의 학문은 안하면 안했지. 한번 하면 반드시 끝장을 본다.
공부하는 방법은 秉心確(마음을 확고히 다잡는 것이다)이고,
공부는 三勤戒를(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 가르쳤다
己千의 情神으로 踝骨三穿(복상시 뼈가 3번 뚫어지도록 공부에 전념)이 되도록 공부에 전념하라.
己千의 情神으로 공부하는 과골삼천(踝骨三穿)과 적수천석(滴水穿石)의 끝장내는 공부를 하였다.
다산 선생
"우리 집안이 언젠가 폐족을 면하는 길은 책을 읽고 독서하는 것밖에 없다.
짐승과 사람이 다른 점은 사람은 책을 읽을 줄 알고
짐승은 책을 읽을 줄 모른다."
"그리고 아버지가 벼슬을 했어도 재산이 없어 물려 줄 것이 없는데
야박하다고 서운해 하지 마라.
내가 너희들에게 유산으로 부적 두 글자를 물려줄테니 항상 지니고 다녀라.
그것은 바로 근검(勤儉)이다.”
선비의 고결한 절개와 지조와 기개로 大義 삶을 추구 하였다.
의(義)로써 자기를 다스리는(愼其獨) 것이 사의재(四宜齊)이다
사의는(四宜) 사의담(思宜澹) 모의장(貌宜莊) 언의인(言宜認) 동의중(動宜重)
생각, 용모, 말, 행동을 아껴라
양심이 살아 있는 올바른 삶으로
얼굴에 부끄러움이 없게 하라 毋使汝愧
(함창문중은 왕손으로 모두 학혼(學魂), 예혼(藝魂)으로 얼굴에 부끄럼 없게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를 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