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을 보내며,
본회퍼와 영성의 길
김철경
사순절은 침묵의 계절이다. 욕망이 소란한 세상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내면을 향해 귀 기울이는 시간이다. 우리는 죄와 은혜, 죽음과 부활을 묵상하며, 다시금 그리스도의 길을 묻는다. 이 길을 걸었던 신앙의 스승들은 우리에게 깊은 통찰을 남겼다. 독일의 저명한 신학자 본회퍼(Dietrich Bonhoeffer)의 외침,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라는 선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평신도 우리에게 도전적이다.
본회퍼는 기독교를 ‘살아 있는 관계’로 보았다. 그것은 인간이 신을 향해 도달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오시는 사건이었다. 종교가 제도화된 의식과 인간의 신앙적 노력으로 구성된다면, 본회퍼의 기독교는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주도하시는 역사 속의 현실이었다. 그는 「값싼 은혜」를 거부하고, 참된 제자로서의 삶을 강조했다. 믿음이란 한 개인의 내면적 확신이 아니라, 「교회의 세상성」을 강조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실천적 용기였다.
리처드 마우(Richard Mouw)는 기독교 신앙이 세상과 분리된 것이 아니라, 공공 신학과 윤리를 통해 세상을 변혁하는 과정에 있음을 강조했다. 그에게 신앙은 단순한 도덕적 신념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온유한 성찰(convicted civility)」로 살아가는 삶이었다. 본회퍼의 「책임적 삶」과 마우의 「공적 신앙」은 서로 연결되며, 오늘날 우리의 신앙이 개인적 경건에만 머물지 않고 세상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한다.
유진 피터슨(Eugene Peterson)은 조금 색다른 「느림의 영성」을 강조하며, 신앙을 서두르는 행위가 아닌 깊이 있는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다. 그의 『메시지(The Message)』는 성경을 일상의 언어로 풀어내어, 신앙이란 단순한 교리적 동의가 아니라 삶으로 살아내야 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본회퍼가 「제자의 길」을 강조했다면, 피터슨은 그것을 「일상의 제자도」로 풀어냈다. 즉, 신앙은 특별한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의 작은 순종 속에서 완성된다는 것이다.
C.S. 루이스(C.S. Lewis)는 기독교를 단순한 종교 체계로 보지 않았다. 그는 『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에서 신앙을 논리적으로 변호했지만, 그것이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닌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임을 역설했다. 그는 우리가 신앙을 통해 「새로운 인간(New Man)」으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음을 강조했다. 이는 본회퍼가 말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삶」과 엇비슷하다.
달라스 윌라드(Dallas Willard)는 현대 기독교가 「소비주의적 종교」로 변질되는 것을 경고하면서, 참된 「영적 훈련(spiritual discipline)」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단순한 구원의 확신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의 변화를 동반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회퍼의 「세상 속에서의 제자도」는 윌라드의 「영적 훈련」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 신앙은 단순한 교리적 확신이 아니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훈련을 통해 성숙해지는 여정이다.
오늘날 우리는 물질주의와 쾌락주의가 만연한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 많은 사람들이 육신의 생각을 따르는 삶이 행복을 줄 것이라 믿지만, 결국 그것이 허무함과 불안을 가져온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영의 생각」을 선택할 때만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교훈이 아니라, 우리 삶을 변화시키는 본질적 진리이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로마서 8:6)
로마서에서 사도 바울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말하며,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고 덧붙인다. 이는 물리적이고 일시적인 세계의 가치가 궁극적으로 죽음을 초래하며, 영적이고 영원한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 진정한 생명과 평안을 가져온다는 뜻이다. 과학적으로, 육신의 생각은 우리가 경험하는 물리적 현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신경과학적 관점에서 육체의 욕망과 감정은 뇌의 화학작용에 의해 제어되며, 이로 인해 우리는 순간적인 쾌락을 추구하기도 하고, 스트레스나 고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의 생각은 인간 존재의 깊은 의미와 목적을 추구하는 것과 연결된다. 영적 사고는 뇌의 활동을 넘어서, 인간이 삶의 의미와 방향성을 찾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경은 과학적으로 보면 인간과 우주에 대한 심오한 진리를 탐구하는 길을 열어준다. 인간의 선택, 생명과 죽음, 육신과 영혼의 갈림길은 단순한 신학적 교리가 아니라,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과도 깊은 관계가 있다. 인간은 끊임없이 선택하며, 그 선택이 결국 그의 삶을 형성한다. 성경은 과학적 사실들 속에서도 인간 존재의 깊이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하며, 이 세상의 물리적 법칙을 넘어서는 영적 법칙을 평신도인 우리가 이해하도록 돕는다.
2026년의 사순절, 우리는 어떠한 질문 앞에 서 있는가? 본회퍼가 살던 시대처럼, 우리의 신앙도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회는 여전히 제도화된 틀 안에서 안주하려 하고, 신앙은 개인의 안락한 심리적 도피처가 되기 쉽다. 그러나 본회퍼가 감옥에서 쓴 마지막 편지처럼,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고난을 받으시는 분”이다. 루이스가 말한 「새로운 인간」으로 변하는 과정, 마우가 말한 「공적 신앙」, 피터슨이 강조한 「일상의 제자도」, 그리고 윌라드가 강조한 「영적 훈련」 등, 이 모든 것이 합쳐질 때, 우리는 참된 사순절의 의미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순절, 우리는 다시 묻는다. 나는 과연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가? 나의 신앙은 값싼 은혜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세상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복음인가? 본회퍼와 영성의 거장들이 던지는 질문이 우리 영혼을 흔든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설교는 철학 강좌가 아니다. 기독교는 삶이다, 드리는 예배는 영적 고백과 결단이다. 기독교를 탄압한 나치에 앞장서서, 교회의 사회성을 펼친 본회퍼 영성의 길을 가야 한다
첫댓글 감상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