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기도 지향: 신기술의 사용
“신기술의 사용이 인간관계를 대체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며 우리 시대의 위기에 대처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어릴 때 저는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면 꼭 두 손 모아 이것을 사오시기만을 기도하곤 했는데, 이것은 다름아닌 『오리* 제과』에서 나오는 『오징어 *콩』이라는 과자였습니다. 지금도 이 과자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는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신다는 말씀을 하시면, 저는 그 날만큼은 티비도 보지 않고 “주님! 오늘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그 과자를 아빠가 꼭 사오도록 해 주세요. ”라고 늦게까지 기도하곤 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저의 예상을 깨지 않으시고 그 과자를 사 오셨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다 보니, 아버지가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면, 아버지 얼굴이 떠올라야 하는데 아버지 얼굴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계속 머리속으로 오징어 *콩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즉, 어느 순간 아버지는 아들이, 본인을 기다리는 줄 알고 오징어 *콩을 자꾸 사가지고 오는데, 제 입장에서는 아버지를 기다리는게 아니라 오징어 *콩을 계속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생활을 할 때도 이와 비슷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선물, 즉, 치유의 기적, 물질적 축복, 건강회복과 같은 은총만 바라며 기도할 때가 많이 있는데, 우리에게 더 중요한 것을 그런 은총 보다는 그 은총을 주시는 근원적인 하느님 그분 자체라 할 수 있겠죠.
특히, 때때로 우리는 영적인 은총과 위로에만 매달리며 목숨 걸 때가 많이 있습니다. 예컨대, 어떨 때는 직장에서 일도 잘 풀리고 피정에서 영적으로 은총이 많이 있으면, 계속 그 영적인 위로에 막 매달리고 목숨을 겁니다. 근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오징어 *콩 입니까? 아니면, 그것을 주시는 하느님 이십니까? 깊이 있게 성찰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영신수련의 비전을 보여주는 [169]번 선택을 위한 길라잡이에서 이냐시오 성인은 우리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을 당부하십니다.
“모든 선택을 잘 하려면 우리 편에서 지향하는 바가 단순해야 한다. 즉, 내가 창조된 목적 곧 우리 주 하느님을 찬미하고 내 영혼을 구원하려는 목적만을 바라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선택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창조된 목적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이어야 하며 수단에 따라 목적을 맞추거나 끌어당겨서는 안 되고 목적을 따라 수단을 맞추어야 한다.”
결국, 인간이 사용하는 이 세상 모든 기술과 도구들은 창조 목적 즉, 하느님만을 찬미하고 내 영혼을 구하려는 목적 이 외에는 사용되어서는 안된다는 대전제를 이냐시오 성인이 이야기 하고 계시죠.
과학기술의 급격한 발전은 인류에게 편리함이라는 큰 선물을 가져다 주지만, 이러한 편리함은 인간과 무관하거나 인간에 반하는 부작용을 불러 일으키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교황님도 오늘날 최첨단 기술을 이용하는 인류에게는 늘 신과 유사한 창조 행위의 주인공으로 인식하게 이끄는 “교활한 유혹”이 도사리고 있다고 언급 하십니다 [24년 2월 교황청립 생명학술원 회원들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러한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신기술”을 “목적”으로 삼지 않고 오직 인간의 창조 목적에만 맞게 식별력을 가지고 사용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