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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과율
1. 개요
因果律 / Causality[1]
모든 일이나 행동이 반드시 모종의 이유나 원인, 즉 '인과(因果)'가 있기에 발생하며 그런만큼 아무런 인과 없이 생기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사고방식이다. 불교의 핵심 사상 중 하나이다.
위키백과에서 '모든 일은 원인이 있으며 원인 없이는 어떠한 현상(결과)도 일어나지 않으며 이 원인의 결과의 규칙적인 관계를 인과관계 또는 인과성이고 어떤 원인에선 어떤 결과가 필연적으로, 즉 법칙에 따라 일어날 때 이 법칙을 인과율이라고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고 양상[2], 가능성[3], 필연성[4], 확실성[5], 개연성[6], 우연[7], 확률[8]와 연관되어 있다.
과학자들은 자연세계를 합리적으로 가정하는데 이는 '내부 원인에 의해 발생한 인과관계로 물리적 우주의 모든 현상이 발생하고, 그 결과로 미래가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과관계를 설명하는 수학적 표현이 바로 자연법칙이다. 흔히 말하는 결정론은 '모든 사건에는 원인이 있고, 우주 만물은 절대적으로 인과법에 의존하고 지배된다'는 견해에 해당된다.
<칸트의 인과론에 대한 연구 1 - 제2유추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에선 제2유추의 원칙은 '모든 변화들은 원인과 결과의 결합법칙에 따라 발생한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2. 설명
인과율 자체는 불교에 근간을 둔 용어지만 단순하게 보면 '어떤 현상이 아무런 이유없이 벌어지진 않는다.'라는 것 자체는 역사상 세계적으로 인식되어왔던 개념이다. 당장 한국에만 해도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의 뜻이 인과율과 일맥상통하며 기회비용도 개념적인 부분에서 어느정도 겹치며 물리학은 아예 모든 개념과 식이 인과율에 기반하고 있다. 빛보다 빠를 수 있는 phase velocity는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거나, 2가지 해가 나왔을 때 인과율에 위배되는 해 하나를 (물리적 직관을 통해) 버린다거나 하는 예는 많다. 확률론적 양자역학의 등장 이후로 그 입지가 좀 애매해졌긴 하지만 양자역학도 단순히 보자면 물리학에 비해 좀더 확률적인 관점에 중점을 뒀을뿐인지라 인과율 자체를 완전히 떨쳐낸건 아니다.
데이비드 흄의 인과율 비판은 인-과의 실체성 부정의 관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제1원인론이란 인과율에 따라 모든 것이 다른 것의 원인이 되어 생겼을 때, 최초로 원인이 되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담론이다. 종교적으로는 그것이 신이라고 정의내리곤 한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모든 것들의 근본이치 중 하나이자[9] '세계의 모든 것들은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는' 인과율의 지배가 있다고 보고 있고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인과율(=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볼 수 있고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이라 할 수 있다.
원인과 결과를 합쳐 '인과'라 부르며 이 둘(원인과 결과)를 별개로 보지 않고 그 사이에 존재할 조건들 역시 배제하지 않는다.[10] 원인은 연을 사이에 두고 결과를 맺고, 모든 결과는 다시 원인과 연결된다. 이러한 시각을 통해 불교는 존재하는 모든 존재들이 서로 상호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고 있다. 또한 모든 원인과 결과를 유동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이 두 시점을 합쳐서 보면 이 세계에 우연은 존재치 않고 결과가 곧 원인이고 원인이 곧 결과에 해당된다. 이러한 인과율의 적용을 현재의 삶에 그치지 않고 내세로까지 확장해 이번 삶에서 악업을 행하면 다음 생에 좋지 못한 존재로 태어난다고 설파한다.
인과의 원리는 단순히 세계에 적용되지 않고 자기자신에게 적용하면 스스로의 존재 역시 끊임없는 변화하는 존재이고 우연히 변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11] 삼계(三界)에서 말하는 색계와 무색게 속에 '나'를 비롯한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고 보았고 바로 여기에 관련된 법칙이 연기라 보았고 그러므로 불교에선 선악의 행위가 주는 결과를 크게 무시하지 않으며 곧 이를 통해 인과응보의 정당성을 설명한다.[12]
고대 인도에선 '나쁜 일을 하면 벌을 받고, 착한 일을 하면 상을 받는다'는 인과응보의 개념을 이야기했다. 인도 철학 체계를 보면, 인생의 고통과 한계들로부터 해탈을 얻고자 하며 인과율도 이런 맥락에서 이야기되었다. 인도에서는 인간에게 여려 근본적인 물음, 그 중에서 인과율과 관련해 '인과율은 무엇인가?'와 같은 물음을 던졌다. 이러한 물음은 얼핏 보면 서양의 근본적인 물음과 같아 보이나 고대 인도인들이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는 목적은 서양처럼 세계를 향한 호기심 충족이 아닌 속박을 극복하는 수단을 발견하고자 함이었다.[13]
근본적으로 인도 내에선 강이론과 약이론이라는 두 가지 종류의 인과론이 존재한다.
강인과론은 바로 결과라는 것이 이미 원인 안에 존재하며 그 포함관계가 외부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는 것이고[14] 약이론은 결과는 원인과 별개로 보는 것으로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결과가 그 출현 이전에 이미 원인 속에 별개의 존재로 있다고 보는 것으로 이들은 어떤 새로운 실재는 생성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이다.[15] 샹키아-요가와 베단타 철학자들은 이런 약이론을 받아들여 어떻게 세계 전체가 단순히 시원적인 프라크리티의 전변(샹키야)이거나 브라흐만의 화현(베단타)인가를 설명할 수 있었다. 강이론과 약이론은 변화에 책임이 있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려는 인도 철학의 시도였다.
서양에서는 세계 전체에 걸쳐 가장 일반적인 관계로 예전부터 그 이해를 둘러싸고 서양에서는 유물론과 관념론 사이의 세계관상의 대립이 벌어지게 되었고 변증법적 이해와 형이상학적 이해의 대립도 나타났다. 서양 철학에서 이것의 논의는 최소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근대 철학에 있어서는 근본적인 문제 설정은 주체와 객체의 이분에서 비롯되었고 현대의 철학계에서도 중요한 주제로 남아 있다.
유물론에서는 현상이 인간의 의지나 의식과 독립되어 객관적인 인과성을 갖고 있다고 보는데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인과적 연관은 보편적 성격을 갖고 어떠한 최종적인 결과를 갖지 않는 결과는 존재할 수 없으며 또한 어떠한 최초의 원인을 지니지 않는 원인은 있을 수 없는 거와도 같다. 즉 어떠한 현상이라도 그 현상의 원인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한 것과 별개로 그 자체로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유물론적 인과율을 보았을 때 어떤 하나가 원인으로 다른 하나를 결과로 낳기 위해서는 원인이 결과보다 앞서야 하고 원인이 결과를 발생시켜야 하며 마지막으로 원인이 결과를 '필연적으로' 발생시킬 것 등의 특성이 있어야 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 인과관계를 결정짓는 것은 객관적 실재가 갖는 법칙성으로 법칙은 대상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양식이며 안정적이고 반복적이고 본질적이며 필연적인 관계들을 의미한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의 인과관계에서의 원인은 어떤 법칙적 지배관계 속의 원인만이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관계에 있어서 원인은 결과를 조건 지우는 전제, 토대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양적인 변화의 원인이 아니라 질적인 변화의 원인을 뜻한다. 또한 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하면 인과적, 법칙적 인식의 객관성은 실험(일반적으로는 실천)에 의해서 검증될 수 있다. 결국 원인-결과의 관계는 객관적인 세계 속에 다양한 사물의 복잡한 상호 관련의 한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 따라서 반드시 고정되어 있는 관계가 아니며 원인과 결과는 언제든 뒤바뀔 수 있다. 변증법적 유물론에서는 원인-결과의 관계는 인간의 의식과는 독립하여 객관적으로 성립하고 있으며 인간의 실천으로 검증된다고 보았다. 철학사적으로 보면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리토스 등 원자론자들이 맨 먼저 객관적 인과관계를 생각했다고 볼 수 있다.
관념론에서는 원인-결과의 관계를 다분히 주관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개개인의 해석을 통한 초자연적인 힘의 작용으로부터 인과성을 이야기한다. 그러므로 현실의 모든 현상의 인과적 제약을 부정한다. 인간이 주체의 틀로 세계를 구성한다고 보는 것으로 관념론자들은 과학에 있어서 현상의 발생 원인이나 현상이 원인을 갖고 있는 것와 같은 문제들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현상들 간의 의존관계에만 집중하며 인과성을 함수적인 성질로 이해한다. 현대의 많은 관념론 철학자들은 원인이라는 말을 철학 용어에서 제외하며 인과율을 함수적 법칙으로 생각한다. 예를 들어 그들은 현상 A와 B가 의존관계에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데 이는 결과를 원인의 함수로 보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경 그리스에선 유물론의 관점에서 본 인과율이라는 개념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당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자연물의 운동과 변화를 받아들여 자연발생적으로 변증법적 견해를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무수한 자연물로 이루어진 세계에 있어서 근원적인 물질을 찾고자 했다. 즉 이들은 근원적인 물질들의 변화에 따라 만물이 발생한다고 본 것이다. 이러한 견해는 자연에 있어서의 인과관계의 법칙을 받아들였고, 모든 사물의 근원을 '원자'로 해석함으로써 형이상학적이고 원자론적인 유물론으로 이행했다.
고전역학적 개념에서 라플라스적 혹은 기계론적 형태의 결정론은 거시적 대상의 외적, 역학적 혹은 기계적인 운동의 연구 위에 생겨났다. 라플라스가 이야기한 그 유명한 라플라스의 악마는 미래가 결정되어 있느냐 아니냐를 이야기할 때 가상의 존재로 상정되는 초월적 존재다. 굳이 정의하자면 임의의 한순간에 우주 전체의 상태를 완전히 알 수 있다면 우주의 과거에서 시작해 미래까지를 알 수 있다는 논리로 라플라스의 악마라는 개념은 양자역학의 개념이 등장하기 전까지 뉴턴의 물리학을 위시한 고전 역학에서 연역적인 궁극개념 즉 인과율의 종착점과 같은 의미의 개념이었다.
경험론자였던 존 로크는 원인과 결과를 분명하게 알 대 우리가 대상의 분명한 관념을 가질 수 있다 보았다. 이는 모든 관념은 대상에의 경험으로부터 생겨나는 거와 같다.[16] 그렇기에 로크는 관념을 바르게 갖는 것, 즉 대상을 정확히 아는 것에 있어 원인과 결과의 관계의 이해를 필수적인 것으로 보았다.
라이프니츠는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으며 최고의 원인은 신'이라고 주장했다. 라이프니츠는 생각하기 위해 우리가 기본적으로 타당하고 인정해야 할 두 가지 원리를 모순율과 충족이유율이라고 보았다. 모순율은 어떤 주장이 모순을 가지고 있으면 이는 거짓이고 이에 반대되면 참이라는 주장이다. 충족이유율은 어떤 사실도 참이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마땅한 이유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라이프니츠가 말하는 충족이유율의 원리는 모든 존재는 그것이 존재할 충분한 이유와 원인이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단순히 논리 뿐만이 아닌 실제적인 영역으로 적용되어 모든 것들이 마땅히 살아 있는 원인을 가진다는 식으로 이야기된다. 세계는 유한한 존재들의 집합체이기에 수많은 어떤 것들의 존재는 세계가 존재함을 증명하고 세계의 그 어떠한 것도 없는 것에서 스스로를 만들어낼 수가 없는데 이러한 이유를 들어 라이프니츠는 현재 존재하는 세계는 그 이전에 순간에 존재했던 세계의 결과로써 존재하며 현존하는 세계는 앞으로 오게 될 세계의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한 술 더 떠서 세계의 존재를 만족하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원인의 원인이 되는 최종적 존재가 있다고 말했는데 이 존재를 신으로 보았다.
데이비드 흄 이전의 스콜라 철학자 혹은 데카르트는 인과관계를 필연적인 것을 보았다. 이것은 기계론적 인과율의 담습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흄은 공간적으로 인접하며 시간적으로 연속하는 두 대상의 인상이 반복될 때, 우리가 이행의 인상을 받으며 이 이행의 인상에 대응하는 관념이 바로 인과 관념이다. 이 인상의 반복 속에서 두 대상을 함께 연상하는 습관이 생겨나고 그 습관에 따라 미래에도 그러리라는 기대가 생기며 이 기대 속에서 주관적 신념이 생겨나고 이 신념을 토대로 인간은 인과 관념의 필연성을 믿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과 관념이 필연적이지 않는 개념적 관념이라고 주장했다.[17] 흄은 인과성이라는 것은 감각과 관념 같은 기계적 혹은 습관적 결합에 불과하고 이를 근거로 한 예건이 결합을 기대하게 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흄의 이러한 사상은 인과 개념에 있어서의 필연성 개념의 문제를 부각시키고 이 필연성 개념의 분석을 통해 인과개념을 정의하려 했다는 것에 의의가 있으며 인과성 개념이 비정형적이라는 결론은 곧 그것의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는 것 또한 의의가 있다.
흄에게 있어 경험은 곧 지각이고 원인-결과의 관계는 경험으로부터 직접 도출해낼 수는 없고, 그것은 같은 방식의 경험을 반복하는 것에 의해 유사한 원인에서 유사한 결과를 기대하는 순간 인간 심리의 소산이며 주관적인 상상에 불과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흄의 자연에 관한 인과적 지식은 필연적이며 보편타당한 지식, 즉 절대적인 지식이 되지 못한다.[18]
이마누엘 칸트는 앞서 서술한 흄의 '인과적 연관의 존재가 감각의 관습적 결합'이라는 주장을 부정하는 것으로써 이와 같은 위기를 해소했다. 칸트는 인과적 연관의 존재가 성격상 필연적이나 그렇다 해서 그것이 객관적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닌 우리 자신의 세계 속에 존재한다고 주장했다.[19] 인과성은 인간의 감각 속의 선험적이고 생득적인 범주와 같고 인과율은 이성의 대상으로 선천적인 만든 거와도 같다. 인과율이 확실하게 된 이유는 인과율이 이성적 시스템에 당연히 포함되어 있기에 인간의 사고방식이 인과율에 따르는 이유와도 같고 원인과 결과의 인과율은 자연현상을 올바로 파악하기 위한 보편적 방식이며 여기서 인과법칙이 선천적이라 함은 인과율은 경험을 초월하며 경험에 앞선 것으로 경험을 통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인간에게 경험이 일어날 수 있는 법칙인 것와 같다.
근대에 들어와 자연법칙이 성립하는 과정에서 갈릴레이와 캐플러는 이 인과율의 개념을 다시 문제 삼았다. 18세기 프랑스 유물론자들은 고전역학에 영향을 받아 정해진 인과성을 자연과 사회에 상정했고 기계적 결정론을 이야기했는데 이들은 우주에 유일한 인과 연쇄만이 존재하며, 사회현상도 그러한 역학적 원인에 따른 결과라고 본 것이다. 그러한 시각 속에서 모든 현상은 본질의 구별 없이 인과 연쇄에만 연결되어 모든 현상이 필연적이고 우연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봤다. 마르크스주의 철학의 변증법적 결정론에서는 각각의 구체적인 원인-결과의 관계는 결코 독립적으로 완결된 체계를 이루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쇄되어 있고 객관적 세계의 여려 가지 사물, 현상의 보편적이고 복잡한 상호 관련의 하나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본다. 인과성은 이러한 상호 관련의 한 측면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며 이 때만에 이러한 입장에서는 객관적 우연이 인정된다. 기계론적 결정론의 인과만이 숙명론에 빠지게 되는 것에 비해 여기에서는 개인의 주체적 행동이 실천하는 역할을 충분히 평가할 수 있다는 의의가 존재한다.
19세기까지의 고전 물리학에 의하면 모든 자연현상은 기계론적으로 설명될 수 있었으나[20] 양자론적 사고, 즉 불확정성 원리에 의해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인과법칙에 의의가 제기되었다. 양자역학에서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가 보여주는 것처럼 입자의 위치 및 속도(운동량)과 시간, 공간적 기술이 불가능한 단계에 직면했다. 특히 미시적 세계에 관해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흔히 알고 있던 인과율이 성립하지 않는 것으로 인정되어 확률의 개념이 중시되었고 이를 통해 이때까지 보편타당하다고 보았던 인과율의 개념은 흔들리기 시작했다.[21]
어떤 상태(원인)에서 다른 상태(결과)가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경우의 법칙성을 말한다. 동양에선 '원인 때문에 결과가 발생한다'는 일종의 동기론적 관점에서 부각되었다.
2.1. 종교[편집]
종교가 창조된 목적에는 인과율을 설명하기 위함도 크다. "죄를 지으면 사후에 벌을 받는다"와 같은 신앙 역시 인과율에 따른 것이다. 한편, 많은 종교에서 신이란 존재는 인과율을 따르지 않는다. 신은 그 자체가 이유이고, 신이 생겨난 이유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의 신은 인격을 가졌기에 악인의 행동을 보면 인간처럼 분노하지만 동시에 악인에 대해 오랜 집행유예 기간을 가지는데 그 이유는 현세에서 인과율적 존재, 즉 신을 확인함으로써 악인 스스로가 죄를 뉘우쳐 다른 이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신에게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기 때문이다(예수와 같이 못박힌 강도의 예).
반대로 사탄, 즉 악마는 현세의 악인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걸 알지만 결국 끝까지 뉘우치지 않도록 유혹함으로써 (여기서 악마 스스로가 악인의 선택 자체를 좌지우지하지는 않는다.) 자신의 권속 즉 자신을 섬기는 것을 택하게 만드는 존재다.
2.2. 물리학[편집]
물리학에서도 인과율(causality)을 쓴다. 현대 물리학에서 말하는 인과율은 보통 말하는 그 인과율보다 좀 더 축소된 의미로 쓴다. 간단히 말하자면 어떤 사건이라도 과거에 영향을 미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긴 한데 현대 물리학에 이르러 이야기가 좀 복잡해졌다. 소위 국소성(locality)이라는 개념이 대두됐는데, 정의를 쓰자면 주어진 시간 동안 빛보다 빠르게 가지 못하면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 떨어진 두 지점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그 시간 동안 물리적으로 완전히 독립적이라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의 표기대로 하자면, 4차원 시공간의 어떤 두 점
�
,
�
x,y에 대해 만약
(
�
−
�
)
2
<
0
(x−y)
2
<0이라면[22] 각 두 점에서 생긴 사건들은 서로 전혀 무관하다는 것이다. 좀 더 시각적으로 설명하자면, 어떤 한 점을 중심으로 하는 광원뿔 바깥에 있는 점에서 일어난 사건은 그 어떤 거라도 주어진 점에서 일어난 사건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보통 알려진 인과율이라는 단어와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이 개념이 인과율과 깊은 관련을 갖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만약 별개가 아니라고 가정하면 적당한 관성 좌표계를 선택하여 미래에 벌어진 사건이 과거에 영향을 미친다는, 상식에 어긋나는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앞서 말한 인과율이 깨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로부터 소위 타임 패러독스를 이끌어낼 수 있다. 아니, 그 전에 원인과 결과 관계를 따지는 것을 중시하는 과학에서 인과율의 위배는 그야말로 재앙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현대 물리학, 그 중에서도 양자장론에서는 국소성과 인과율을 금과옥조로 여기며 주어진 이론이 타당한가아니면 불쏘시개인가를 판별하는 도구로 쓰인다. 상대론적 양자역학에서 폴 디랙의 방식 대로 전자를 설명하는 방식[23]을 안 쓰고 양자장론적 방법으로 기술해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이다. 자세한 건 양자장론 참고. 사족으로, 잘 알려진 스핀-통계 정리와 CPT 정리를 증명하기 위해 요구되는 필수조건 중 하나이다. 또한 EPR 역설의 핵심에 쓰이는 개념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말해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시공간을 통과하면 과거로 갈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현대 물리학의 틀을 부정하는 것이다. 상대성이론보다 먼저 있는 것이 대전제이자 금과옥조인 인과율이기 때문. 물론 그런 상상이 불가능한 건 결코 아니라서 여러 과학자나 과학도들이 그런 소재의 SF 소설을 썼다.
인간에게 알려진 인과율이 성립하지 않는 공간이 하나 있는데 바로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 내부이다. 사건의 지평선 내부는 외부에서 어떠한 정보도 얻을 수 없는데, 물리학적인 정보가 오갈수 없다는 건 사건의 지평선 내부가 외부 공간과 인과율이 성립되지 않는 독립적인 공간이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3. 창작물에서[편집]
인과율에 영향을 줘서 과거나 미래가 바뀌었다는 반전이 있기 때문에 스포일러가 될 수 있다.
대체역사물부터 타임 패러독스물까지 다양한 장르가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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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등가교환의 인과법칙을 작품 전체의 주제로 깔아두고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궤적 시리즈에서도 등장한다. 영웅전설 벽의 궤적에서는 키아가 영웅전설 제로의 궤적에서 로이드 일행이 태양의 요새에 진입해서 죽어버려서 인과율을 바꿔서 에스텔 브라이트 일행과 친해져서 요아힘 귄터에게 죽지 않았다는 사실도 나온다. 영웅전설 시작의 궤적에서도 언급된다.
괴담 동아리에서 중요한 단어로 언급. 현실 조작계 능력이 사용되거나 현실에 간섭하는 원인이 사라질 때 상승한다. 작품 내에서는 因果律이 아닌, 因果率로 추측 중.
동방 프로젝트의 2차 창작 게임 동방해혜당에 등장하는 캐릭터인 칸푸쿠구 오토히메의 능력 자체가 '인과율을 조종하는 정도의 능력'이다.
마법소녀 마도카☆마기카에서 마법소녀의 역량은 각자가 짊어진 인과의 양에 비례한다. 아케미 호무라가 카나메 마도카가 마법소녀가 되어 결국 마녀가 되는 운명에서 그녀를 구하고자 무한의 가까운 시간동안 과거를 반복한 결과 카나메 마도카는 그녀를 중심으로 한 셀 수 없는 과거의 인과가 쌓여 가장 강력한 역량을 지니게 되어버렸다. 이것으로 소원을 빌면 우주의 법칙을 다시 쓸 수 있는 정도가 되고 마법소녀로써는 최강의 힘을 지니게 된다. 그러나 결국 마녀가 되어 버리면 그 어떤 마법소녀도 막지 못할 강대한 마녀가 되어버리기에 세상의 멸망을 초래하게 한다. 이에 카나메 마도카는 마법소녀가 되기 위해 큐베와 계약하면서 마법소녀들의 비극의 역사의 인과를 바꿀 정도의 소원을 빌면서 그 존재가 소멸되었다.
무직전생의 루데우스 그레이랫와 아내들인 실피에트, 록시, 엘리스는 강한 운명으로 보호돼있다. 특히, 루디우스와 록시는 강한 운명에 연결되어있어 인신(히토가미)이 모든 힘을 총동원하여 둘을 떨어트려 놓으려 했지만, 둘은 어떻게든 결혼하는 운명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루디우스와 록시의 아이인 라라는 구세주의 운명을 가지고 있어, 어떻게든 태어날 운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래일기에서는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작용한다. 신인 데우스 엑스 마키나의 수명이 다해 인과율이 제어력를 잃고 뒤틀리게 되면 당장 세계멸망 크리를 탈 정도. 미래일기 패러독스에서는 무르무르가 떡방아 찧다가 가사이 유노의 인과율을 실수로 날려먹자 존재가 사라져 버린다. 본편 혹은 외전에서 무르무르가 미래일기 레이스가 진행되는 와중에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 제 멋대로 인과율을 조정하여 게임이 비틀어지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베르세르크의 고드 핸드들이 가진 핵심 사상으로, 진홍의 베헤리트(패왕의 알)를 소유한 사람은 인과율의 흐름에 따라 고드 핸드가 될 운명이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복수와 소중한 인연을 위해 사도들을 쓰러트리며 나아가는 가츠는 이 인과율에 저항하는 투사이다.
아일랜드에서는 주인공 반이 불교인이라 이 법칙을 강조한다. 인과에 따라 징벌을 받는 사람은 안 구해준다.
양영순의 작품에서 인과율을 주제로 잘 쓴다.
1001의 3번째 이야기에서 살육이 역사의 인과율에 영향을 준다고 나온다. 나중에 덴마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온다.
란의 공식에서는 란이 인과율을 이용해 용자짓을 한다. 이름과 후술할 능력 때문에 덴마의 등장인물 란과의 관계도 약간이나마 제기되고 있다. 나의 란은 저렇게 괴랄하게 생기지 않았어!
덴마에서 제트가 정해진 행동 반경 안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명확하게 정의한다. 태모신교 내에서 란이라는 존재가 제 8우주의 인과율을 조정하는 듯한 내용으로 나온다. 하지만 총무주교의 말을 보면 란은 인과율을 계산하는 게 아니라 이미 일어난 일을 계산하는 듯하다. 그리고 고산 가(공작, 대머리, 고산 공작)는 이 인과율을 계산하는 계산기를 가지고 있는데 가히 그 포스란... 또, 데바림족의 예지몽은 길게 보면 인과율 계산을 뛰어넘는다. 그리고 또, 인과율을 뒤틀정도로 에너지가 너무나 거대해 인과율 균형을 위해 콴의 냉장고에 봉인되어 있던 검은 전사체도 나온다. 살인마들의 학살로 8우주 인과율의 어긋남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과율을 조율하는 헬맨이라는 집단이 있다. 부활 능력은 인과율에 매우 큰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그걸 안다면 어떤 사람들이 해당 능력을 쓴 자들을 해치러 올지 모르고, 만약 이들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면 자신들 뿐만 아니라 8우주 전체가 위험해진다고 한다. 에드레이의 손뼉치기 타격 능력은 타격 범위에 제한이 없이 시공간을 넘어서서 타격 가능한 기술이기 때문에 그가 인과율을 뒤틀 수 있는 퀑이라는 게 밝혀졌다. 다만 2016년 북토크에서 작가가 원래 에드레이 능력이 '시간을 넘어서서 타격하는 기술'이라는 설정이 숨겨져 있었으나 생각해보니 인과율에 영향을 주는 능력이라 폐기해 버렸다고 밝혔으나 능력 봉인 조치라는 설정을 통해 이를 해결했다.
엑스맨의 리전이라는 캐릭터는 과거를 바꾸어 현재와 무수히 갈라져 있는 모든 갈래의 미래에서 운명으로 결정된 이야기의 결말마저 원하는대로 바꿀 수 있는 이질적인 현실 조작 능력을 지니고 있다. 이미 시간과 공간과 현실, 원인과 결과조차 마음대로 건드릴 수 있다는 뜻이다.
장갑기병 보톰즈의 키리코 큐비는 이능생존체로써 어떠한 상황에서도 반드시 살아남게되는 인과율 그 자체를 왜곡시키는 존재이다. 작중에서 키리코는 총알이 몸에 관통되든, AT의 전투에서 집중포화를 받든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살아나며, 키리코를 해하려 했던 자들은 오히려 역으로 거의 대부분이 다 끔살당했다. 심지어는 행성 자체가 황폐화된 경우도 있다. 그리고 자신은 살아남게 되지만 대신 주변 동료들 죽어나가는 걸 지켜보는 키리코의 입장은 비극적이다.
전생검신에서 중요한 설정이다. 세상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일은 명확한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이를 인과율이라 부른다. 망량선사 왈 인과율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법칙이라고. 만약 인과율 없이 활개를 치면 '인과율의 역풍'에 맞아 힘을 잃거나 소멸한다. 이러한 특성 덕에 강대한 존재들로부터 인간계를 지켜주는 방벽의 역할을 한다. 인과율을 벗어날 수 있는 자는 '단 하나의 위대한 존재'라고 언급되는데, 전생검신이 크툴루 신화를 배경으로 하기에 독자들은 아자토스라고 추측한다. 사실 말은 이렇게 거창한데, 정작 작품 내에서 보면 작가가 소설을 진행하기 위한 맥가이버 칼 역할이다. 원체 설정 자체를 굉장히 방대하게 잡아놔 어떤 식으로든지 응용이 가능하다. 굉장히 뜬금없고 억지스러운 설정과 전개가 나와도 인과율이라는 단어로 거의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
지옥소녀의 애니랑 지옥통신이 인과법칙을 주제로 다룬다.
진 마징가 ZERO에서 마신파워를 개방한 마징가 Z와 마징가 ZERO가 사용 가능한 현실 조작 능력...인줄로만 알았으나 그 실상은 마징가 ZERO가 모든 가능성을 전부 닫는것으로 마징가가 최강인 세계를 유지하기 위한 현실 조작 능력으로 등장하였다. 하지만 코우지의 가능성에 의해 광자력으로 이루어진 슈퍼로봇들을 불러오는데에 성공하여 최악의 마신, 마징가 ZERO도 같이 승리하면서 파괴되었다.
크로노 크루세이드의 요슈아 크리스토퍼, 아즈마리아 헨드릭은 지상대행자(사도)로써의 능력을 얻지만 그 능력의 백 크래시로 인해 인과율에 따라 대가를 치르면서 여러 가지 불행을 겪게 된다.
Steins;Gate에서는 인과율에 따라 어트랙터 필드의 수렴이 일어나 α 세계선에서는 시이나 마유리가 무조건 사망하도록 결과가 고정된다. 오카베 린타로가 고생하며 돌아온(α 세계선으로 이동하기 전의) β 세계선의 마유리는 사망하지 않지만, 그 대신 마키세 크리스가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오카베 린타로는 '인과율을 위반하지 않는 방식으로 정해져 있던 결과를 도출하는' 방법을 통해 말 그대로 세계를 속이고, 그 결과 슈타인즈 게이트의 세계선으로 이동하게 된다.
4. 여담[편집]
원인이 결과에 얼마나 관련있는지에 대한 비율(比率)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가령 "네가 강아지에게 간식만 안줬어도 지각은 아마 하지 않았을 거야. 물론 우리가 조금 늦게 나온 것도 있긴 하지만 강아지 간식 준 것의 인과율이 70%정도라고 나는 생각해!" 라고 말하는 식이다. 그러나 이 때의 '율'은 원인이 결과에 어느정도의 영향을 끼쳤냐(%/率)가 아닌 "원인과 결과의 법칙(律)" 즉, 위의 내용처럼 원인이 있으면 결과의 법칙으로 이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