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종교적 기도와 복음적 기도를 구분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위의 것에는 관심 없이 무턱대고 하는 기도의 열심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 가운데에서 땅의 것에 매인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게 하시고 위의 것을 구하는 기도를 하게 하옵소서.
주의 택한 백성들로 하여금,
종교 행위에 열심을 냄으로 스스로 만족하게 하여 복음을 가리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않게 하옵소서.
메시아를 죽여버린 바리새인들이 다 그리하였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새날 주시니 감사합니다.
무더운 날 속에서도 주님의 은혜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정결한 마음과 정직한 영을 허락하옵소서.
진리의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17:1.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그를 찬송할지어다
2.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여호와의 진실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할렐루야
118: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3.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4.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7.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본문 주해)
117:1~2절 : 시편 117편은 시편 중에서 가장 짧다.
그러나 그 내용은 모든 나라와 모든 백성을 포함하는 광대한 내용이다.
공간적으로는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를 다 포함한 온 세상이며, 시간적으로는 영원이다.
그런데 왜 온 세상이 여호와를 영원히 찬송해야 하는가?
그 이유는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크시고 그 진실하심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이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가리키고, 진실하심(에머쓰)이란 그 언약을 변함없이 이루어내신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인자가 크시고 진실하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얼마나 진실하게(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신약시대, 주의 인자와 진실함이 십자가로 나타났다. 그리고 주님의 재림 때까지 주의 인자와 진실함을 베풀고 계신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함이 나타난 것이기에 지금부터 영원히 그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찬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118:1~4절 :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한다. 그 이유는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고 한다. 시편 117편과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을 찬송할 자들이 이스라엘이며(2절), 아론의 집(3절)이다. 그리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4절)이다. 즉 택한 받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찬송한다는 것이다.
5~7절 : 구원을 경험하고 노래한다.
시편 기자가 1인칭으로 말하는 ‘내가’는 1~4절에서 본 대로 이스라엘, 아론의 집, 여호와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이 된다. 이런 자들은 여호와께서 자기의 편이 되어주심을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호와가 자기 편이 되어주신다는 것은 ‘남들은 다 어려움과 피해를 보지만 나는(우리는) 안전하다’ 식의 구원이 아니다.
이것은 주의 인자를 경험한 자들은 죽어도 괜찮은 구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죽어도 괜찮은 사람’에게 ‘사람들이 어찌 할 수 있겠느냐?’ 하는 고백이 나올 수 있는 것이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10:28)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기껏해야 몸을 죽이는 일밖에 더하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정말 두려워할 분은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할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한다.
(나의 묵상)
하나님의 인자하심(헤세드)이란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가리키고, 진실하심(신실하심, 에머쓰)이란 그 언약을 변함없이 이루어내신다는 표현이다.
그러므로 ‘인자가 크시고 진실하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약속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루어내시는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이다.
하나님께서 하신 창세전 약속은 아들에게 주신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도 주신다는 약속이다. 그리고 그 약속을 십자가로 이루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다.
아무 흠도 티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 죄인들을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다. 사흘을 무덤 속에 머무시고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보이셨다. 그리고 하늘에 오르셔서 그의 택한 백성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심으로 약속을 이루시는 그 진실하심을 지금도 보여주고 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이런 사랑받은 성도들은 자동으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어떠함-충만한 믿음이든 부족한 믿음이든-과 상관없이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고 뜻을 펼쳐가신다. 그 가운데 우리가 은혜를 알고, 받고, 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기도회나 찬양을 인도하는 자들이 종종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를 말하며 그런 기도를 하자고 하는데 나는 이 말이 너무 불편하고 싫다.
우리는 다만 기도를 통해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을 알아가는 존재일 뿐이지, 우리가 뭐라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겠는가 말이다.
금식하고, 침 튀기면서, 목이 쉬도록 기도하는 정성과 열성을 드림으로 하나님의 뜻을 바꾸겠다는 것인가? 어떻게 우상과 귀신들에게나 하는 짓을 하나님께 한단 말인가?
또 어떤 이는 ‘우리가 그같이 열심을 내지 않으니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는다’라고도 한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위에 있는가? 어찌 우리의 행위에 의해 하나님이 좌지우지 된다는 말인가?
시편 118편 6, 7절에 ‘여호와는 내 편’이라는 말씀이 있다.
누구나 이 구절이 자기의 고백이 되기를 원하겠다.
처음 본문을 읽을 때 ‘믿음이 어느 정도 되어야 과연 ‘여호와는 내 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일시적 자기감정에 도취 되어 거창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그래, 내가 네 편이 맞다’ 말씀해 주시는 것을 들으려면 어떤 믿음의 상태일까를 처음 본문을 읽을 때 곰곰 생각했다.
오늘 묵상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약속을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것을 기록하면서 ‘여호와는 내 편’이라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정리해 본다.
약속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예수님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과 나타나심이 나의 구원을 이루신 사건임을 믿으며,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힘있게 의지하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요 이것이 곧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복음을 통해 생명의 삶을 살아간다면 주님께서 ‘나는 네 편이란다’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록 삶은 연약하고 부실해도 복음의 사람으로서 주님과 교제하며 사는 자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종교적 열심과 행위를 내세워 스스로 ‘하나님은 내 편’이라고 최면을 거는 자가 아니라, 실제로 ‘내가 네 편이란다’ 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된다.
그것은 매일 말씀으로 주님과 교제할 때 주님의 사랑의 음성을 듣게 되는 일이다.
주님이 내 편이 아니시라면, 성령께서 역사하실 리가 없고, 그러면 또 그렇게 자상한 말씀이 들릴 리가 없다.
내가 결연히 외치는 소리가 아니라, 주님께서 ‘내가 네 편이란다’ 조용히 말씀하여 주시니 더욱 안심이 되고 든든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참 막연하게 느껴졌건만, 지금 이 시간에 좀더 알게 되니 참으로 기쁘고 감사하다.
오늘 이 아침에도 아빠의 발등에 발을 얹고 함께 왈츠를 추는 어린 딸이 된다.
나의 기쁨의 웃음소리는 저 멀리까지 퍼져나간다.
(묵상 기도)
주님,
수도 없이 배신하고 반역한 존재를 오늘에 이르기까지 참아주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딸 편인 아빠가 되어주시니 감사합니다.
주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아니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주님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영원히 찬양합니다.
오늘의 충만한 은혜를 부어주신 성령님께 감사하며
이 땅을 사는 동안 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