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자동차 산업이라 할 만한 외형을 갖춘것은 1955년 '국제 차량 제작 주식회사'가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승용차 시발이 탄생하면서다.
시발(始發)은 말그대로 우리 자동차 산업의 시발점이 된 차였다. 시발을 만든 국제 차량 제작 주식회사는 해방 직후인 1946년 서울 을지로 2가에 '국제 공업사'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가회동 부잣집의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3형제가 사장, 부사장, 공장장을 맡아 운영한 국제 공업사는 당시 솜씨 좋기로 유명한 자동차 기술차 최순성씨로 인해 소문이 자자하게 났다.
재생차 생산으로 자본을 모은 이들은 우리 손으로 차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 1954년 자본금 천만환으로 회사를 국제 차량 제작 주식회사로 확대 개편했다.
이들은 숱한 실패와 좌절끝에 엔진을 개발하고 서울 용산구 신계동에 있던 조립 공장에서 시발 자동차 생산을 시작했다. 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름을 시발(始發)이라고 지었다.
하지만 1962년 7월 13일, 5월의 새나라 자동차의 새나라 택시 등장으로 문을 닫았다.
최무성 - 최순성 - 최혜성 형제
비록 손으로 두들겨 만든 차지만 우리 나라 자동차 공업의 시작을 연 시발
우리손으로 만든 첫 자동차인 시발은 2도어 4기통 1.323cc 엔진에 전진3단, 후진1단 트랜스미션을 얹었으며, 국산화율이 50%나 되어 긍지가 대단했으나, 한 대 만드는데 4개월이나 걸려, 시발차의 값이 8만환으로 사가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1955년 10월 광복 10주년을 기념하여 경복궁에서 열린 산업박람회때 최무성씨가 시발차를 출품하여 최우수 상품으로 선정됨과 동시에 대통령상을 수상함으로써 신문에 크게 보도되자 을지로 입구에 있던 그의 천막 공장에는 시발차를 사가려는 고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었으며, 이로인해 가격도 하루 아침에 30만환으로 뛰어 올랐다.
그러나 새로운 차 개발에 많은돈을 썼고 5.16혁명으로 정부 보조금이 끝난데다가 1962년 '새나라 자동차'가 쏟아져 나오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 차는 1963년 5월까지 2,235대를 만들어 시판했다.
1950년대의 시발 자동차 공장
1955년 산업 박람회 시발 택시 1호
손으로 두들기며 만들고 있는 시발 자동차
시발 픽업 트럭
1950년대 후반 시발 택시
1955년 서울역앞의 시발 택시들
라디에이터 그릴을 바꾼 세단형 시발
1957년 처음으로 우리나라 수제 자동차가 등장한 시발짚 승용차.
드럼통을 펴서 수제로 만든 국내 최초의 자동차다.
첫댓글 운전할줄아는게 큰 자격이었는데...돈도 되구...요즘은 최악의 직업...갑질에, 개 힘듬...지명에 못사는직업...
직장생활시작하며 삥뜯기지 말구 재테크 30년 잘해서, 나이먹어 운전하는 직업 안하도록 바짝 신경써야함...
정말 운전 최악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