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십년에 걸친 내전으로 황폐화한 아프가니스탄이 미국 동시다발 테러에 대한 보복 공격에 직면해 있다. 전쟁과 경제제재에 따른 극심한 생활고로 이미 세계 최대의 난민 발생국이 된 아프가니스탄이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는 것이다.
◇ “석기시대로 돌려버릴 것도 없다”=미 <뉴욕타임스>는 13일 “아프가니스탄을 폭격해 석기시대로 돌려버리기를 바라는 미국인들이 있다면 이들은 이 나라가 그렇게 할 만한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며 현재 아프가니스탄의 처참한 상황을 표현했다.
옛소련 침공·22년 내전에 경제제재…인구3분의1 조국등져 최대 난민국
남편이 숨진 여성들이 수도 카불의 거리를 떠돌며 구걸하고, 말라비틀어진 남자들은 당나귀를 빌려쓰는 값에도 못 미치는 품삯을 받으며 짐마차를 끌고, 지뢰에 다친 어린이들이 폐허가 된 빈터에서 놀고 있다고 신문은 전했다.
탈레반이 전 국토의 90% 이상을 장악했지만 북부 지역에서는 반탈레반 세력이 무장투쟁을 계속해 22년 동안 내전이 계속되고 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96년부터 4년 동안 극심한 가뭄이 이어져 100만명이 극심한 굶주림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인의 기대수명은 남성이 42살, 여성이 40살로 내려갔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월드팩트북 2000'도 아프가니스탄을 “광범위한 빈곤과 망가진 사회기반시설, 널리 퍼져 있는 지뢰로 고통받고 있는 나라”로 적고 있다. 탈레반도 성명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을 더 비참한 상황으로 떨어뜨리지 않기를 바란다”며 “우리한테는 단 한발의 미사일 값에 버금갈 만한 공장 하나도 없다”고 미국의 공격 자제를 호소했다.
◇ 계속된 내전과 쏟아진 난민=73년 쿠데타로 왕정을 전복하고 대통령이 된 무하마드 다우드는 서구의 영향을 뿌리치고 옛소련에 기댔다. 그러나 그의 독재는 좌익 지식인은 물론 군부와 여러 종족의 지도자들부터 반발을 샀다. 좌익 정당들 사이에 정치적 혼란을 거듭하던 79년 12월 옛소련은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89년 2월 철수할 때까지 이슬람근본주의 세력인 `무자헤딘'(`전사'라는 뜻)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 등의 지원을 받은 무자헤딘은 옛소련군 철수 뒤에도 꼭두각시 정권과 계속 싸웠고, 새로 등장한 탈레반이 96년 카불을 점령하며 집권세력이 됐다.
오랜 내전을 거치면서 아프가니스탄 전체 인구 3분의 1이 나라 밖으로 피신했다. 한때 이웃나라인 파키스탄과 이란에 머물던 이들이 600만명에 이르기도 했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은 지난해말 현재 전세계 보호대상 난민 2113만명 가운데 아프가니스탄 출신 난민이 356만7천명으로 최대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만 약 100만명이 늘었고, 요즘도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수천㎞를 걸어서 이웃나라로 간 뒤 유럽이나 오스트레일리아 등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지만 대부분 난민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다. 유엔은 99년 탈레반 정권이 오사마 빈 라덴을 보호하고 있다는 구실로 아프가니스탄에 경제제재를 가하고 있다.
◇ 불투명한 미래=미국의 보복공격이 예상되면서 유엔과 국제적십자 직원, 외교관들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고 있지만 일반인들은 임박한 미국의 공격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탈레반은 오사마 빈 라덴의 미국 인도를 거부하며 최고지도자가 몸을 숨기는 등 미국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지만 미국의 공격 수위가 어느 정도 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미국의 보복 공격이 이번 테러와 관련된 이슬람근본주의 무장단체들의 시설물에 대한 일시적인 공격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인 보복의 형태로 진행되고, 이에 편승한 이슬람세력들 사이의 내전이 격화하면 아프가니스탄인들은 최악의 생존상황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