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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화제를 모으거나 이슈로 대두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파격적인 소재나 스토리로 관객들의 주목을 받는 경우와 배우들이 보여줄 노출연기에 대한 수위 등 그야말로 배우들이 보여줄 연기 자체에 대해 관심을 모으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한 관심과 호기심이 독이 되건, 약이 되건 관객들은 언제나 그러한 작품에 시선을 모으게 된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는 위의 두 가지 조건을 모두 갖춘 영화다. 그래서 일찌감치 화제를 모았고, 또 이슈가 되곤 했다. 그리고 이제 뚜껑을 연 영화 [하녀]는 또 한 번 화제를 모을 만하다. 그 속에 담긴 배우들의 연기가 그렇고, 임상수 감독이 전하는 과감한 이야기가 그렇다. 이번에도 임상수 감독은 고집을 잃지 않았고, 그래서 꽤나 독하기까지 하다. 영화가 보여주는 충격적인 결말만큼이나 말이다.
대담해서 주목받고, 솔직해서 논란이 되는 감독 임상수!! 50년 전 [하녀]의 몸에 자신만의 고집과 색깔의 옷을 입혀 새롭게 재해석하다!!
그의 작품은 매번 시끄럽다. 또한 솔직함을 넘어서 날카롭기까지 하다. 바로 임상수 감독과 그의 작품들에 대한 말이다. 그가 스스로 의도했건, 아니면 의도치 않게 관객들이 반응을 보여주었건 언제나 임상수 감독의 영화는 논란이 되곤 했다. 현대 여성들의 솔직한 성담론, 10대 가출 청소년들의 방황, 비뚤어지게 꼬이고 붕괴되어 가는 현대 가정, 그리고 우리나라 현대 정치사의 이면에 대한 시선 등 그의 다섯 전작들은 그 중심소재만으로도 충분히 자극적이고, 또 과감하다. 그런 임상수 감독이 이번에는 제목부터 시선을 모으는 영화 [하녀]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故 김기영 감독의 1960년 작인 영화 [하녀]는 헐리웃의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특별한 애정을 보였을 정도로 유명하고, 또 인정받는 고전 중 하나다. 바로 이 영화 [하녀]를 임상수 감독이 자신만의 스타일과 이야기로써 재탄생 시켰다. 고전 작품을 원작으로 한다는 것이, 더욱이 50년이 지난 영화의 이야기를 현대로 끌어 온다는 것이 얼마나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가를 생각했을 때, 이 역시도 임상수 감독의 대담함과 과격할 정도의 용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임상수 감독은 그 시도를 꽤나 만족스럽게 성공해 냈다. 영화는 숨이 막힐 정도로 화려한 상류층 고급저택에 하녀로 들어 온 이혼녀 은이가 주인집 남편인 훈과 육체적 관계를 맺게 되고, 그로 인한 임신과 그 사실을 알게 된 훈의 아내 해라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스펜스 드라마를 그리고 있다. 영화의 기본 적인 줄거리와 설정들은 원작인 故 김기영 감독의 작품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리메이크’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영화는 50년 전의 설정을 그대로 이어가지만 임상수 감독은 거기에 자신의 솔직함과 대담함을 가미시켜 이야기를 더욱 확대시켰고, 자칫 구태의연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완성시켰다. 이것은 영화가 끝난 후, 등장하는 문장처럼 임상수 감독의 [하녀]가 원작에 대한 리메이크라기보다, 원작을 토대로 완성한 임상수식 작품이라는 표현에 가깝다는 말이다. 50년 전, 故 김기영 감독이 만들어 낸 몸체에 임상수 감독 자신의 입김을 불어 넣고, 스타일리쉬한 옷을 입혀냄으로써 새로이 살아 숨 쉬게 한 셈이다. 그래서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새롭다. 비록 신선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그 디자인이 대단히 새롭고 매력적이다.
故 김기영 감독의 원작을 토대로 재해석된 임상수 감독 식 [하녀]!! 원작과의 비교는 흥미롭다. 하지만 이 정도로 끝. 원작은 잊어라!!
사실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는 그 바탕을 둔 원작인 故 김기영 감독의 [하녀]와 굳이 비교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대략적인 줄거리와 캐릭터, 일부 설정들은 원작의 그것을 그대로 옮겨 왔지만 실질적으로 그 세부적인 사항들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 가지를 짚어보자면 이러하다. 부유한 부부와 그들 사이를 뒤흔드는 한 하녀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치정극의 설정은 바뀌지 않았다. 이것은 예나 지금이나 존재하는 가장 자극적이고, 파격적인 관계이니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하지만 원작의 캐릭터들이 고스란히 현대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꽤나 촌스러울 일이다. 그래서 임상수 감독은 캐릭터들의 성격을 전혀 다르게 변화시켰다. 새파랗게 젊은 안주인 해라와 이혼한 경력까지 가진 하녀라는 설정에서부터 원작의 그것을 과감하게 뒤집었다. 요즘 TV드라마에서나 봄직한 설정이지만 사실 현실 속에는 허다하게, 혹은 당연하게 존재하는 모습들이다. 원작에서는 소름끼칠 정도로 전형적인 팜므파탈의 모습을 보였던 하녀 캐릭터는 백치처럼 순수하고, 거짓 없이 살아가는, 그리고 자신의 본능에도 충실한 ‘은이’의 모습으로 180도 새롭게 탈바꿈했다. 그리고 무력하고 소심했던 남편은 부드러운 친절함과 저돌적인 야비함을 동시에 지닌 속물로, 가정을 지키려 전전긍긍했던 고상한 안주인은 질투와 욕심으로 가득 한 팜므파탈로 변했다. 이렇듯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비단 TV드라마에서 뿐 아니라 지금 우리가 흔히 볼 수 있고, 또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의 성격을 캐릭터에 담아내어 보다 현실적인 모습으로 바꿔낸 것이다.
여기에 임상수 감독은 서스펜스 드라마의 극적 긴장감을 더해주기 위한 새로운 인물들을 등장시킨다. 원작에는 없던 나이든 하녀 ‘병식’과 안주인 해라의 속물 엄마가 그들이다. 이들은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하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동시에 극적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데 큰 몫을 한다. 특히, 영화 속에서 모든 비밀을 품고, 또 모든 것을 꿰뚫어 보며 관객들의 눈이 되어주는 ‘병식’이란 캐릭터는 영화의 핵심적인 요소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은이에게 있어 유일한 위로이자 안식처가 되어주는 그녀의 친구 역시 원작에는 없던 인물이다. 그리고 큰 딸과 작은 아들, 그리고 늦둥이의 세 아이를 둔 원작과 달리 어린 딸과 임신 중인 쌍둥이로 변모한 아이들의 설정 역시 흥미롭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작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뀐 영화의 결말은 꽤나 자극적이고, 강렬하며, 또 소름끼치도록 대담하다. 원작의 결말이 지극히 교훈적이며, 시대상을 반영했던 것이라면 임상수 감독의 결말은 매우 충격적이다. 현실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파격적이고, 단순히 자극적이라고 판단하기에는 꽤나 의미심장하고 씁쓸하다. 그래서 아마도 이 부분에서만큼은 많은 관객들 사이에서 논란이 될 듯하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 역시 영화가 전체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의미를 관통한다는 데 주목할 만하다. 이 점은 아래에서 재 언급 하려 한다.
뿐만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를 장악하는 배경적인 요소의 변모도 인상적이다. 장마철 여름을 배경으로 시종일관 천둥소리와 세찬 빗소리로 서스펜스의 분위기를 형성했던 원작과 달리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여기저기 녹지 않은 채 쌓여있는 눈과 황량할 정도로 차가운 겨울을 배경으로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해간다. 이것은 임상수 감독이 보여주는 현실을 바라보는 냉소적이고, 냉정한 시선에서 기인되는 점이기도 하다. 이렇듯 모든 캐릭터의 성격부터 엔딩까지 전혀 다르게 탈바꿈 했지만, 원작과 닮은 구석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것이 원작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들의 매력이기도 하고 말이다. 극중 은이는 아침식사를 준비하던 중 피아노 소리를 듣게 된다. 바로 극중 ‘훈’이 치는 피아노 소리다. 이것은 원작 속 주인공인 동식이 공장 여공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던 교사로 나온 것과 연결된다. 그리고 클래식하면서도 절제되어 있는 음악의 사용 역시 원작의 그것과 닮아 있다. 저택에서 흘러나오는 우아한 오페라 음악과 매 장면마다 흐르는 격정적이면서도 절제된 선율의 음악들은 영화의 분위기를 한층 세련되고, 깔끔하며, 때로는 긴장감 넘치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원작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로 등장했던 공간의 활용 역시 돋보인다. 원작에서 주요 사건의 배경이자 인물 간의 갈등구조를 극대화시켰던 계단의 활용은 이번 영화에서도 주요하게 사용된다. 하녀인 은이로 하여금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계기가 되는 사건이 벌어지는 장소 역시 원작과 같이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원작이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피아노실, 부엌, 방등을 오가며 극적 긴장감을 형성했듯이 임상수 감독의 [하녀] 역시 어마어마한 저택을 중심으로 커다란 거실과 고급스러운 욕실 및 주방, 은이와 병식의 방, 그리고 복도 등 원작에 비해 보다 다양한 공간의 활용으로써 드라마의 긴장감은 물론 그 폭까지 넓혀주고 있다. 또한 창을 통해 인물을 지켜보던 원작 속 카메라의 시선이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에서는 문 틈을 통해 훔쳐 보는 시선으로 옮겨 간 점이나 원작에서 시종일관 인물들의 표정을 비추던 유리창 대신 거울을 이용한 것도 원작에 대한 임상수 감독의 헌사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하녀]를 통해 바라 본 우리 시대의 현실과 사회상!! 그리고 이를 반영한 사실적인 오프닝 장면은 영화가 끝난 후에 되새겨 보시길!!
임상수 감독은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주인과 하녀의 모습을 보다 솔직하고, 현실적으로 담아내려 노력했다. 시끌벅적한 시장에서 식당일을 하며 근근이 살아가는 은이는 나름 자신의 아파트도 마련해서 세도 받고 있다. 게다가 오랜 세월 훈의 집에서 하녀로 일해 온 병식은 이제 어엿한 대한민국 검사의 어머니가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훈과 해라의 하녀다. 극중 해라의 엄마가 아들이 검사가 딘 병식을 축하해주며 내뱉던 대사처럼 병식과 은이에게 있어 '인간승리'와 같은 대단한 일들이 해라 모녀나 훈 같은 이들에게는 그저 대수롭지도 않은 고작 '축하할 일'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그저 물려받은 재산과 타고난 부유함으로 모든 것을 돈으로 갖고, 해결할 수 있는 훈과 달리 은이와 병식은 그에게서 받는 돈으로 삶을 꾸려나가야 할 뿐이다. 그런 점에서 훈의 아내인 해라 역시 그녀들과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훈의 돈으로 먹고, 입고, 또 즐기는 그녀의 역할은 오직 훈의 성적 욕구를 채워주고, 남성적인 본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아이들을 낳아주는 일 뿐이다. 그래서 해라와 그녀의 속물 같은 엄마는 훈의 외도마저도 눈감아주고, 또 직접 나서서 무마시키려 한다. 그러한 삶을 지속시켜 나가기 위해서 말이다. 이러한 점에서 임상수 감독의 노골적이면서도 날카로운 비판이 엿보인다. 가진 게 없는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의 하녀가 되어야 하고, 또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지켜내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또 누군가의 하녀로 살아가야 하는 지금 현실의 세태를 들춰내어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계급제도가 사라진지는 오래 되었지만, 우리 시대에는 언제나 보이지 않게 계급이 존재해 왔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발전으로 이른바 ‘중산층’이 형성된 우리나라의 5~60년대는 주인과 하녀(혹은 식모)라는 관계가 익숙하던 시기였다. 특히, 젊은 여자들이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 와 돈을 벌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남의 집에 들어가 식모살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던 시대였다. 故 김기영 감독은 그러했던 당시 시대상을 배경으로 치정극의 이야기를 빌어 중산층 가정의 몰락을 보여주었고, 욕망과 복수의 화신인 하녀 캐릭터를 통해 부르주아 계급에 대한 비판과 지식인 남성들의 무력함, 그리고 그들의 위선을 신랄하게 꼬집어 냈다. 이러한 계급적 이질감은 주인과 하녀의 방을 1층과 2층으로 나누어 설정한 점에서도 드러나는데, 이것은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시의 상황과 메시지가 지금 우리들의 현실에서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이며, 곧 이것이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를 바라보며 느끼게 될 우리들의 시선이다. 60년대의 그 중산층은 시대가 흘러 이제 ‘하녀’가 되었다. 대신 지금은 그들 위로 이른바 대한민국 1%에 속하는 재벌 혹은 상류층이 존재한다. 그들은 초호화 저택에 살며, 수 천 만원짜리 와인을 물마시듯 들이 키고, 수 억 원에 달하는 미술품을 집 안 여기저기에 걸어 놓고, 명품 옷으로 치장하고 살아간다. 영화 속 훈과 해라 부부의 모습처럼 말이다. 이렇게 우리의 현실은 그 규모와 대상들을 조금씩 바꿔가며 시대별로 언제나 주인과 하녀들을 양산해 왔다. 그리고 그들 사이의 보이지 않는 벽은 더욱 두텁고, 또 단단해 져 있다. 안주인인 해라의 대사 마냥 가지지 못한 자들은 '감히' 함부로 소박한 꿈 조차 꾸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영화의 사실적인 오프닝은 상당히 인상적이고, 의미심장하다. 사실 이번 영화에서 시작과 함께 보여주는 오프닝 영상들의 의미를 파악하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후, 되새겨 보는 오프닝 영상의 의미는 참으로 뜨끔하고, 씁쓸하며, 임상수 감독이 보여 주려한 메시지를 고스란히 비춰주었음을 알 수 있다. 시끌벅적하고 지저분한 유흥가의 밤 풍경, 여기저기에서 내뿜는 담배연기와 욕설들, 바쁘게 움직이며 살기위해 발버둥치는 수많은 사람들과 서민적인 먹거리, 그리고 소주. 하나같이 고급스럽지도, 또 비싸보이지도 않는 풍경들이다. 바로 거기에 은이가 있다. 그리고 건물의 간판 위에서 뛰어 내리려는 한 여자도 있다. 사실 이 풍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우리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평범하고, 값싼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돈을 벌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며, 그저 내뿜는 담배연기와 저렴한 소주 한 병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거친 욕설 한 마디로 세상을 비난해 보기도 하는 모습 말이다. 그리고 이렇게 갑갑하고, 지독하리만큼 불친절한 세상을 견디지 못하는 누군가는 오프닝의 여자처럼 뛰어내려 스스로 세상과의 작별을 고하기도 한다. 이게 우리들이 살아가는 지금의 현실이다. 그야말로 아니꼽고, 더럽고, 메쓰꺼우며 치사한 세상 속 현실의 모습이다.
임상수 감독 특유의 냉소와 조소(嘲笑), 블랙 유머로써 풀어 낸 현실과 사회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 그리고 그의 은근하면서도 통쾌한 꼬집기!!
차갑고, 건조한 오프닝 영상이 지나고, 이어서 은이가 들어가게 되는 저택의 광경은 참으로 이질적이다. 그 곳은 비현실적일 만큼 휘황찬란하고, 고급스러우며, 우아하다. 이렇게 비현실적이라 여길 만큼 이질적인 감정들, 바로 이것이 우리의 현실과 사회에서 자리 잡고 있는 계급에 대한 시선이라 할 수 있다. 임상수 감독의 영화 속에는 언제나 냉소와 조소가 가득 차 있다. 이번 영화 [하녀] 역시 여전하다. ‘은이’를 통해 바라 본 현실의 모습은 지독하게 냉소적이며, ‘병식’으로 하여금 느끼게 되는 상류층의 위선과 허세에 대한 비판은 시원한 조소에 가깝다. 오페라 음악을 들으며 고급 포도주로 목을 축이고, 한 끼 식사에 갖가지 진수성찬이 차려지며, 남의 손을 빌어 샤워를 하고, 피아노를 치거나 요가를 하며 여가를 보내는 등 훈과 해라의 모습은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반면 그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먹어 치우고, 그들이 따라주는 포도주에 목을 축이며, 그들의 몸을 씻겨 주고, 만져줘야 하는 하녀들의 모습은 지독하리만큼 상반된다. 이처럼 극명한 대비를 통해 임상수 감독은 가진 자와 거기에 묶여 사는 자로 구분되는 현실적 계급의 구조를 비꼬아 보여주며, 동시에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일부 상류층에 대한 비판을 특유의 냉소적 유머와 조소로써 보여준다.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은이를 궁지로 몰아가는 해라 모녀의 모습은 악랄하고 치졸하기 짝이 없다. 뒤늦게 모든 사실을 눈치 챈 남편 훈의 모습 역시 야비하고, 이기적이다. 또한 이들은 무엇이든지 돈으로 가지려 하고, 돈으로 무마시키려 한다. 그래서 극중 대사처럼 맹한 백치마냥 당하고만 사는 은이의 모습은 그저 답답하고, 애처롭기만 하다. 그런 그녀를 대신해 관객들의 숨통을 트여 주는 인물이 바로 나이 든 하녀인 ‘병식’이다. 그녀는 자신의 말처럼 뼈 속 깊게 하녀근성이 자리 잡힌 인물로 집 안의 모든 일을 총괄하고, 동시에 모든 비밀을 품고 살아간다. 그리고 인물들 사이를 오가며 그들의 관계를 뒤흔드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는 영화 속에서 누구보다 현실적으로 보인다. 우리들 역시 현실 속에서 병식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 앞에서는 누구보다 반듯하고, 예의 바르지만 뒤돌아서서는 그들을 욕하고, 비난하기도 하며, 자신과 닮은 혹은 불쌍한 이들을 향해 동정을 내비치기도 한다. 그래서 술에 취해 자신의 방에 들어가 실컷 큰 소리를 쳐보기도 하고, 주인들을 배웅한 후 뒤돌아서서 그간 쌓여있던 스트레스를 해소하던 병식의 한 마디는 관객들마저 통쾌하고, 시원하게 만든다. 그녀가 해라와 훈의 뒤를 바라보는 냉소적인 시선이나 은이에게 들려주는 그들에 관한 조소 섞인 비난들은 곧 임상수 감독의 목소리로 들리기도 한다.
원작을 비틀어 오롯이 자신만의 작품 [하녀]를 완성케 한 결말은 잔인하도록 강렬하고, 소름 끼칠 만큼 충격적이다. 그리고 노출과 베드 씬에 대한 짤막한 한 마디!!
무엇보다 영화 [하녀]가 원작의 그늘에서 벗어나 오롯이 임상수 감독만의 작품으로 거듭나게 한 데에는 대담하고, 충격적인 결말에 있다. 29세 노처녀들의 거침없는 성담론, 가족 모두가 바람이 난 콩가루 집 안의 이야기,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암살 등 매번 예민한 소재들을 통해 과감한 이야기를 보여주었던 임상수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결말 하나로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킨다. 원작 속 하녀와 달리 상류층 주인의 치졸하고, 야비한 위선 속에서 매번 당하기만 하던 은이가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는 후반 30여분은 상당한 임팩트를 던져준다. 특히, 시종일관 순박한 얼굴과 깨끗하고 하얀 복장 차림의 은이가 검정 옷차림과 진한 화장으로 변하게 되는 후반부는 소름끼칠 정도로 차갑고, 또 광적이기까지 하다. 특히, 그녀가 홀로 차가운 바람을 맞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내비치는 비웃음과 이후에 보여주는 미치광이적인 모습의 조롱들은 단연 인상적이다. 그리고 그녀가 선택하게 되는 마지막은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를 그야말로 50년 전 원작의 포장 속에서 꽤나 격렬하게 빠져나오도록 해준다. 또한 그에 앞서 하녀 병식이 훈의 가족들에게 일침을 가하던 뜨끔하고, 통쾌한 한 마디 역시 거기에 일조해준다. 그야말로 영화 [하녀]의 결말은 강렬하며, 소름끼치고, 또 잔인하고, 충격적이다. 또 슬프지만 통쾌하고, 아프지만 시원하기까지 하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감정들이 교차된다. 그러니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느껴 보길 바란다. 고로 결말에 대한 언급은 여기까지만 하겠다.
한편, 영화 [하녀]는 일찌감치 화제를 모은 요소가 있다. 바로 출연 배우들의 노출 연기와 베드 씬 수위가 그것이다. 전작인 [처녀들의 저녁 식사]나 [바람난 가족]을 통해 보여준 임상수 감독 특유의 적나라하고, 대담한 베드 씬과 배우들의 과감한 노출은 영화의 내적인 요소들을 제쳐두고 매번 가장 먼저 주목을 받곤 했다. 이번 영화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작들에 비해 베드 씬이나 노출 수위 모두 낮은 편이며, 다만 극중 ‘은이’를 통해 보여주는 노출의 빈도는 다소 늘어났다. 특히, 극중 ‘훈’을 연기한 배우 이정재의 노출 정도가 꽤나 과감한데, 영화 속 베드 씬은 초반부에 몰아치듯이 모두 등장하고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다. 이번 영화에서는 비주얼적으로 느껴지는 에로티시즘보다는 소리와 대사를 통한 에로티시즘이 더 강조되었다. 그것은 극중 은이와 훈의 첫 정사 씬에서 엿보인다. 카메라는 그들의 몸을 클로즈업하여 훑지만 그리 자극적이지는 않다. 대신 노골적이고, 적나라한 대사들과 신음 소리 등을 통해 그들의 격정적인 본능을 더욱 자극적으로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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