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박지리
우연히 인터넷 서점에서 알게 된 책 한 권.
<다윈 영의 악의 기원>
다윈이라고 그 유명한 <종의 기원>으로 유명한 사람이잖아.
책 제목에 다윈이라는 말과 <종의 기원>과 비슷한 <악의 기원>이라는 말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이 연상되더구나.
이 소설에 대한 사람들의 평도 괜찮고 해서 읽어보려고 샀어.
그런데 책 두께가 소위 말하는 벽돌책이더구나.
이렇게 두꺼운 책인지 몰랐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써내는 필력을 가진 사람이 누구지?
이러면서 책날개에 써 있는 지은이 소개를 봤는데, 박지리라는 분이야.
책을 구입할 때 지은이를 슬쩍 보긴 했는데,
아빠가 처음 보는 한국 작가이네, 이렇게만 봤지 자세하게는 보지 않았거든.
박지리 님은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고 하더구나.
그런데 800페이지가 넘는 장편 소설을 쓰다니…
문학의 피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인가 싶었단다.
소설은 어떤 시대인지 확인이 안되는 디스토피아가 된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단다.
소설의 짜임새가 좋고, 긴장을 늦추지 않게 하는 힘이 있었어.
디스토피아 소설의 대가 마거릿 애트우드에 견주어도 지지 않는다고
아빠는 생각했단다.
그래서 박지리라는 분을 아빠의 관심 리스트 작가에 올려 놓았어.
그 분의 다른 책들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런데 얼마 전에 알라딘 인터넷 서점에 제1회 박지리 문학상 수상작품이라며
어떤 책을 소개했단다.
박지리 문학상?
보통 이름을 딴 문학상은 돌아가신 분의 이름을 따서 짓는데…
이상 문학상, 황순원 문학상, 김유정 문학상 등등…
그런데 박지리 문학상? 설마? 아빠가 알기로는 젊은 작가였던 것 같은데…
그래서 인터넷을 찾아왔더니…. ㅠㅠ
박지리 님은 2016년에 32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셨다고 하는구나.
그제서야 박지리 님에 대한 인터넷 글들을 자세히 찾아보았어.
2010년 사계절 문학상 대상을 받으면서 등단을 하고
이후 1년에 거의 한 작품씩 내면서 활발히 활동하셨는데….
왜 그리 일찍 가셨는지…
<다윈 영의 악의 기원>이 박지리 님의 마지막 책이었고,
이 책을 출간하고 며칠 뒤에 돌아가셨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단다.
너무 슬프구나.
천재 작가의 짧은 삶.
사계절 출판사에서는 박지리 님을 기리는 차원에서 박지리 문학상을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착한 출판사로구나.
아빠도 박지리 님을 추모하면서 박지리 님의 작품들을 좀더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자, 그럼 오늘은 박지리 님의 마지막 작품이 된,
역작 <다윈 영의 악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해줄게…
1. 그들이 사는 세상
800페이지가 넘는 이야기다 보니,
구성도 복잡하고, 등장인물도 많이 나와서
너희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정신으로 해볼게.
제대로 설명이 안되면 그 나름대로 스포일러가 덜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정확히 모르겠더구나.
인류 역사상 없는 시스템이라서 미래인 것 같은데,
핸드폰이나 인터넷이 없는 것으로 보아 과거인 것 같기도 하고…
음.. 평행 우주의 또다른 지구에서 벌어진 일일까?
암튼, 소설의 배경이 되는 세상을 이야기하면,
철저한 신분 사회란다.
1지구부터 9지구로 사람들뿐만 아니라 구역도 나뉘어져 있어.
각 지구간의 이동도 제한적이고, 발전 수준도 달라서
1지구와 9지구는 천지 차이였어.
이렇게 구역이 나뉜 것은 오래되었는데,
60여년 전에 이런 차별을 깨기 위해서 9지구가 주도하여 폭동이 일어난 적이 있단다.
12월의 폭동이라고 불렀는데, 이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 사건 이후 차별은 더욱 심해졌고, 지구간 이동도 더 어려워졌단다.
…
주인공 다윈 영은 1지구에 살고 있는 16살 남학생이었어.
프라임스쿨이라고 1지구에서도 엘리트만 다니는 최고 명문에 다니고 있었어.
다윈 영의 아버지 니스 영은 문체부 차관인데,
문체부 차관은 미래의 대통령 자리라고 부를 정도로 명망 있는 지위였단다.
그러니까 다윈 영의 집안은 명문 가문이라고 할 수 있어.
다윈 영이 다니는 명문 프라임스쿨에 대해 좀더 이야기를 해보면,
나라의 인재를 키우는 곳으로 유명한데 모든 학생들이 기숙 생활을 한단다.
예전에는 학기 내내 기숙생활을 했는데,
얼마 전부터 한달에 한번 주말에 집에 갈 수 있었어..
그때마다 다윈 영은 아버지 니스 영과 함께 할아버지 러너 영을 뵈러 갔단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안 계신 것만 빼고는
참 보기 집안 분위가가 좋은 것 같구나.
2. 추도식
니스 영은 매년 어렸을 때 죽은 친구의 추도식을 주최하고 참석한단다.
올해로 벌써 30년째 이어졌어.
30년이라면 가족들도 더 이상 추도식을 안 가질 것 같은데,
니스 영은 해마다 추도식을 주최하고 참석하고 있단다.
그 친구의 이름은 제이 헌터였어.
다윈 영은 아버지를 따라 해마다 추도식에 참석하고 있어.
죽은 제이의 동생 조이도 참석을 하고,
조이의 딸 루미도 참석을 하는데,
다윈 영이 루미를 몰래 짝사랑하고 있었어…
프라임스쿨은 남학생들만 들어갈 수 있는데,
루미는 그에 버금가는 여학교인 프리메라 여학교에 다니고 있었어.
올해 추도식에 니스 영의 오랜 친구 버즈 마살이 찾아왔단다.
버즈 마샬은 유명한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버즈미디어의 대표야.
그리고 버즈 마샬의 아들 레오 마샬도 프라임스쿨에 다니고 있고,
다윈 영처럼 모범생은 아니고 약간 반항기도 있고,
돌출 행동도 해서 프라임스쿨에서 벌도 받고 그랬어.
다윈 영과 레오 마샬은 반은 달라서 서로 모르고 지냈는데,
추도식 이후 학교에서 우연히 만나 친한 친구 사이가 되었단다.
…
추도식이 끝나고 얼마 뒤에 다윈 영은 루미로부터 연락을 받았어.
제이 삼촌의 방에서 구한 사진이 있는 그 장소에 같이 가자고 했어..
사유는 모르겠고, 짝사랑하던 루미가 만나자고 하는데 당연히 만나야겠지.
다윈 영은 그러겠다고 했어.
루미는 허름한 옷을 입고 나오라고 했는데,
그 이유는 사진 속 장소가 9지구이었기 때문이야.
각 지구간 제한적이긴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어.
직접 갈 수는 없지만 하나 아래 지구로 이동은 어느 정도 허용되어
그런 식으로 9지구까지 갔고, 1지구의 사람처럼 보이지 않게 하려고 허름한 옷을 입고 간 거야.
그들이 도착한 9지구는 폐허 사회였고, 멸종해 가는 사회였단다.
아이들은 없어서 미래도 없어 보였어.
다윈 영과 루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9지구에 갔다가 실체를 보고 돌아왔어.
3. 30년 전 사건
다윈 영은 한달에 한번씩 할아버지 집에 간다고 했잖아.
어느 달은 루미와 함께 갔는데, 루미도 다윈 영의 할아버지를 반가워 했단다.
루미도 다윈 영을 좋아하는 것 같았어.
…
루미는 호기심이 많은 아이인데,
루미는 30년 전 제이 삼촌의 죽음을 추적하려고 했어.
제이 삼촌은 9지구에서 온 정체 불명의 사람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알려져 있고,
그 사람을 잡지는 못했다고 했어.
후드 티를 입은 사람이었다는 것만 알고 있었지.
그러면서 다윈 영에게 도움을 청했는데, 루미를 좋아하는 다윈 영이 거절할 리 없었지.
루미의 할아버지 해리 헌터는 유명한 사진 작가셨어.
12월의 폭동 때도 해리 헌터는 직접 9지구에 가셔서 사진들을 찍었다고 했어.
그 사진들은 모두 국가 기록 저장소인 아카이브란 곳에 저장되어 있었는데,
거기는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는 곳이었어.
다윈 영은 아버지 니스 영의 아이디를 알아내어 접근을 했는데,
사진 3장이 사라져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그것이 중요한 단서라는 걸 직감했단다.
루미는 조사를 하면 할수록
제이 삼촌은 1지구의 누군가에게 죽음을 당했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어.
그래서 제이 삼촌의 친구들을 조사했고,
유력한 사람으로, 지금은 검사가 된 로이드라는 사람을 찾아갔는데,
그와 이야기를 해보니 무죄라 생각했어.
소설을 읽다가 중간 부분에 오면
제이 삼촌을 죽인 사람이 누군인지 쉽게 추리를 할 수 있는데,
지은이 박지리 님도 그걸 숨지기 않고 알려주었단다.
이 소설은 그저 제이삼촌을 죽인 범인을 찾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야.
악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니까 말이야.
중간에 범인을 알게 되어도 긴장감은 늦춰지기는커녕 더 세진단다.
이 소설의 강점.
…
그럼 사건의 내막을 알려줄게.
다윈 영의 할아버지 러너 영은 사실 9지구 출신이란다.
러너는 16살 때 9지구에서 일어난 12월의 폭동을 주도한 사람 중에 한 명이었어.
그들의 폭동은 성공적이었고, 8지구, 7지구, 6지구가 차례로 통합되었어.
그러던 중 러너 영은 배신을 하고(이유는 생각이 잘 안 나는구나…)
주동자들을 고발하였어.
그러면서 어떤 2지구의 집에 양아들로 들어갔는데,
폭동이 진압되고 나서 그 공이 커서 그들은 1지구로 승격이 되었단다.
이런 내막이 있었던 거야.
아빠가 앞서 이야기할 때는 다윈 영의 집안이 1지구의 명문이라고 했는데,
사실 9지구 출신이었던 거야.
30년 전 제이는 12월의 폭동에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했는데,
그때 친구인 니스 영의 아버지 러너 영이 9지구 출신이고
12월의 폭동에 가담했던 사실을 알게 돼.
그리고 니스 영도 그 사실을 눈치채고 말이야.
제이가 그 사실을 온 세상에 퍼뜨리기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래, 제이를 죽이는 거야.
그 사실이 온 세상에 드러나면 니스는 참을 수 없는 모욕과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 뻔했거든.
니스 영은 후드를 입고 9지구의 사람처럼 위장을 한 다음에 제이를 죽였던 것이란다.
니스 영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지만,
죄책감은 상당히 컸어.
오랫동안 잠도 자지 못했어.
그 죄책감을 조금이라도 지우기 위한 방법이 바로 추도식이었던 것이고,
오랫동안 해마다 추도식을 열었던 것이란다.
하지만 러너 영이 12월이 폭동의 주도자였다는 증거가 사진으로 남아 있는 것을 알았어.
그것을 접근할 수 있는 것은 고위관리직이라는 것을 알고,
그는 사진을 없애기 위해서는 단 한가지 이유로 문체부 차관이 되려고 노력했던 것이란다.
이것이 바로 30년 전 사건의 전말이었딴다.
…
아무도 이 사실을 30년간 모르고 있었는데,
루미가 다시 캐고 다니는 거야.
사실 아무도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니야.
제이의 동생이자 루미의 아빠인 조이가 알고 있었어…
그런데도 가만히 있었냐고?
사실 조이가 형 제이를 엄청 싫어했거든.
조이는 엄마가 바람 피워 낳은 아이인데,
제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어서 조이를 푸대접하고 엄청 싫어했어.
물론 조이도 제이를 엄청 싫어했어.
조이는 우연히 니스 영이 제이를 죽인 것을 알게 되었는데,
조이는 오히려 그런 니스 영을 더 따르고 좋아했어.
비밀도 끝까지 지켜주었고 말이야.
무서운 비밀들이 있었구나.
4. 결말은 축약해서…
니스 영도 루미와 다윈 영이 30년 사건을 다시 캐고 다닌다는 것을 알고 괴로워했어.
그 사건은 여전히 그에게 트라우마였거든…
그리고 괴로워하다 술을 먹고, 술주정으로 혼잣말로 그 일에 관해 주저리 이야기했는데,
그 말들을 다윈 영이 의도치 않게 들었어.
다윈 영은 사실을 다 알게 된 거지…
아버지에 대한 심한 배신감에 아파하고 괴로워했고,
아버지와 이야기도 하지 않으려고 했어.
하지만 다윈은 아버지가 제이 삼촌을 죽였다는 사실만 알았지,
왜 죽였는지까지는 몰랐어.
…
이 이야기는 앞으로 어떤 식으로 더 진행될 것 같니?
지금부터는 최대한 축약해서 이야기를 할게…
루미가 제이 삼촌이 죽은 날 녹음된 카세트 테이프가 들어 있는 카세트의 존재를 알게 되고
그것은 다름 아닌 레오 마샬의 아빠인 버즈 마샬의 것이고,
그 카세트는 그럼 어디에 있느냐…
그것은 버즈 마샬이 어렸을 때 살았고 레오 마샬의 할아버지 피터 마샬의 집에 있다는 것을 알게 돼.
루미는 버즈 마샬에게 도움을 청했고,
버즈는 그 카세트를 가져오게 되고 그걸 버즈 마샬과 다윈 영이 함께 들어.
다윈 영은 그 녹음테이프에 그 날 있었던 일이 녹음이 안되었기를 바랬지만,
그 테이프에는 제이삼촌이 죽기 전에 니스 영과 제이삼촌이 나누었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었어.
니스 영이 제이 삼촌을 죽였다는 이야기도 모두…
이때 다윈 영의 그때 한 행동은 무엇일까?
너무 뻔한 답일수도 있지만, 마지막 결론만 남겨두고
오늘 독서 편지를 마쳐야겠구나.
책을 덮으면서 정말 대단한 소설이라고 생각했단다.
아빠가 오늘 이야기한 내용은 굵은 줄거리만 쫓아가면서 이야기했는데,
소소한 에피소드들 더 많이 담겨 있단다.
….
지은이 박지리 님께서 요절하시지 않았다면 더 많은 작품들을 남겼을 텐데,
참 안타깝고도 슬프구나.
박지리 님이 남긴 작품들을 하나둘 찾아 읽어봐야겠구나.
다시한번 지은이 박지리 님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빌면서,
오늘 편지는 마치련다.
PS:
책의 첫 문장: 옛 수도원 건물을 기반으로 재건축한 프라임스쿨 교정 한가운데에는 위엄 어린 양식의 종탑이 하나 서있는데, 뿌리를 잊지 않으려는 학교 정책의 일환에서인지 수도원의 색채가 많이 지워진 오늘날에도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이 되면 종지기가 직접 탑으로 올라가 종을 친다.
책의 끝 문장: 루미는 주저 없이 다윈의 손을 잡고 다윈이 이끄는 곳으로 걸어 나갔다.
책제목 :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지은이 : 박지리
펴낸곳 : 사계절
페이지 : 856 page
책무게 : 844 g
펴낸날 : 2016년 09월 20일
책정가 : 28,000원
읽은날 : 2021.08.11.~2021.08.15
글쓴날 : 2021.08.29,30,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