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8:31~41 진리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
감비아의 한 마을에 살던 쿤타킨테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북을 만들 나무를 구하기 위해 마을 밖으로 나왔다가 노예 사냥꾼들에게 잡혀 미국으로 가게 됩니다. 메릴랜드에 도착한후 네번이나 탈출시도를 하지만 그 때마다 잡혀와서 혹독한 벌을 받았고, 마지막에는 오른발을 잘리게 되고 맙니다. 결국 그는 거기서 적응하며 결혼을 하고 키지라는 딸을 낳게 되고 그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줍니다. 딸인 키지는 주인인 윌리엄의 조카 앤의 시중을 들며 그녀와 친구처럼 지냈고 노예로는 드물게 글까지 배우게 됩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다른 노예를 좋아하게 되고, 글을 알고 있어 그 노예의 탈출에 도움을 주다가 결국 그것이 발각되어 다른 곳으로 팔려갔고, 거기서 주인 톰 리에게 겁탈당해 아들을 낳았습니다.
키지의 아들인 조지 리는 주인인 톰 리의 아들이긴 하지만 이들은 서로 부자관계를 모른체하며 같이 투계장에 다니며 돈을 법니다. 조지는 투계로 결국 돈을 모아서 같은 집에서 일하는 마틸다와 결혼도 하고 영국으로 건너갑니다. 그리고 14년 만에 드디어 꿈에 그리던 자유민의 신분을 획득하는 데에 성공하지만, 가족에게 되돌아가면 다시 노예로 강등당한다는 문제 때문에 가족을 외면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지의 넷째아들인 톰 머레이는 남북전쟁후 노예제가 폐지되자 지상낙원이 될 줄 알고 미국에 갔지만 가서 차별과 많은 폭력을 겪었고, 공갈과 협박을 못이겨 아버지인 조지가 땅을 많이 사 놓은 테네시 주로 도망을 갑니다. 이것은 유명한 뿌리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책의 내용입니다. 이 책의 저자인 알렉스 헤일리는 바로 톰 머레이의 증손녀였습니다. 책이 나올 당시 4대에 걸친 흑인 노예들의 비참했던 역사가 사람들에게 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인간에게 있어 자유란 무엇인가? 를 다시 돌아보게 해주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자유를 위해 100년을 넘게 싸웠던 겁니다.
오늘 본문이 나오는 8장은 그 배경이 7장과 같은 초막절 즈음입니다. 저번에 말씀드린 것처럼 초막절에는 제사장들이 8일내내 하루에 한번씩 실로암 못에서 금단지에 물을 담아와서 제단에 부었습니다. 그들은 특히 마지막날을 지난해의 죄를 용서받을 수 있는 ‘사죄의 날’이라고 믿어서, 그날 제단에 물을 부으면서 사죄의 은총에 감사하고 성령에 사로잡히기를 구하며 춤을 췄습니다. 이 초막절 즈음에 8장의 일들이 기록됩니다.
오늘 읽지 않았지만, 8장의 전반부에는 정말 유명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사건이 나옵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원래 율법에서는 간음한 여인은 돌에 맞아 죽어야 했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걸 어떻게 해야하는지 일부러 예수님께 물어보면서, 그가 돌로 치라고 말하면 예수님이 잔인하다고 말하고, 그가 돌로 치지 말라하면 율법을 어긴다고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함정을 판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몸을 굽혀서 딱 한 마디를 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그러자 사람들이 양심의 가책을 다들 돌을 놓고 떠나갔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과 거기 모인 사람들이 너무 착했던 걸까요? 그 말 한마디에 어떻게 양심을 가책을 받았을까요? 여기에는 아까 나온 초막절 마지막 날이라는 배경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한 마디만 하셨지만, 그 말 속에는 “바로 어제 초막절 마지막날 너희들은 자신이 죄인이라면서 너희들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물을 뿌리고 춤을 추지 않았으냐? 그런데 오늘 한 여인을 잡아와서 하는 말이, 이 여인은 죽을 죄를 지은 죄인이고 너희는 의로우니까 이 여인을 돌로 쳐서 죽이자는 말이냐? 그래 그럼 죄 없는 사람부터 돌로 쳐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12절부터 30절까지 자신이 세상의 빛이신 것을 가르치시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나온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31절에 예수께서 방금 전에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는데 그 내용인 31절과 32절을 다시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일단 여기서 알수 있는 점은 예수님을 믿은 것과 제자가 되는 것은 다르다는 겁니다. 그 사이에 한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씀합니다. 바로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그렇게 됩니다. 이 ‘거하면’이라는 단어의 원래 뜻은 머무르다 거주하다 계속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합쳐서 보면 옆에 계속 머물러서 비슷해지는 상태가 되는 것, 스며드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말씀안에 계속 머물면서 그것이 내 속에 스며들게 하는 과정이 지속될 때 그 사람이 제자가 된다는 겁니다.
1947년 11월 27일 UN에서는 역사적인 투표가 있었습니다. 이날 33대 13이라는 결과로 이스라엘이 2천여년만에 다시 세워진 것입니다. 모든 세계사람들이 놀랐고, 특히 기독교인들에게 이 소식은 마지막 때가 다가오는 신호탄으로 여겨졌습니다. 사실 이 엄청난 사건뒤에는 사건이 일어나기 10년전 1938년 9월 3일부터 시작된 리즈하월즈와 그의 중보기도팀의 기도가 있었습니다. 리즈 하월즈는 이때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도록 기도하라는 기도의 부담을 나누었고, 이후 2차 세계대전중에 유대인 난민 아이들 수천명을 위한 집을 지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고, 십년간 기도하며 싸운 결과 이스라엘이 실제로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리즈 하월즈가 이런 놀라운 일에 쓰임 받기 전에, 그는 평생을 하나님 앞에서 주님안에 주님의 말씀안에 거하며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훈련을 이미 받은 상태였습니다. 이것을 거함의 법칙이라고 하는데, 주님의 말씀안에 거할 때 그는 제자가 되고,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하나님 사이즈의 일에 쓰임받게 된 겁니다.
31절과 32절에서 또 하나 알수 있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말씀안에 거할 때 진리를 알게 된다는 겁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바로 모든 사람이 진리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몇 문장으로 되어있는 따라할수 있는 신앙고백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리는 인격체이신 예수님 자체입니다. 그래서 아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데이트를 할 때 만나고 또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또 하듯이, 예수님과 사귀면서 그분이 하시는 이야기, 하나님의 말씀에 젖어들고 스며들어야 합니다. 물론 처음에도 주님을 알지만 진리를 아는 것이 자라가게 됩니다. 관계가 성장합니다. 그렇게 진리를 알아가게 되면, 그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바꿔 말하면 36절에 나오듯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가 성장함에 따라 더 많이 더 많이 우리는 자유로워집니다.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되고, 저주의 멍에가 부서집니다.
그럼 왜 우리는 예수님을 믿었는데, 이런 자유로운 삶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부분이 많은 걸까요? 쿤타킨테의 가족은 약 4대를 걸쳐 싸우고 자유를 얻기 위해 애써서 결국은 자유를 얻었다는데, 2천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이 그리 자유로워 보이지 않을까요? 물론 복합적인 이유들이 있겠지만, 33절이후에 유대인들과의 대화를 보면 어떤 부분의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고 남의 종이 된적이 없다고 하면서 바로 반박을 합니다. 예수님이 여기서 다시 한번 죄를 짓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는 걸 일깨워주셨고, 바로 인간의 죄 문제를 아들이 자유케 해주실 때에야 진정으로 사람이 자유케 될수 있다는 걸 말씀해주십니다.
이 부분은 간음하다 잡힌 여인의 사건과 이어지는 것입니다. 나 스스로 죄 없다 할 때 자유로움을 얻기 힘들어집니다. 병이 없다는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기 힘든 것처럼 문제가 없다는 사람을 도와주기가 힘듭니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들이 자기가 죄인임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그럴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나의 약함이나 허물이나 죄들을 인정하고 자유케 해주시는 주님에게 나가면 됩니다. 감추고 혼자 싸우지 않아도 됩니다. 변명 안해도 되고, 부끄러워 안해도 됩니다. 이미 주님이 다 알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바로 그것에서 우리를 자유케 해주려고 부르신 겁니다.
그전에 다른 교회에서 샌드아트를 하는 분의 간증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중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러가실 때 웃으면서 가셨다는 말이 있었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표정이 그랬는지는 제가 모르지만 마음은 정말 그러셨습니다. 사53:11을 보면 실제로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진정으로 자유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이미 모든 대가도 치뤘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분께 자꾸 가까이 나가고 데이트를 하고 그 말씀안에 거하면 진정 자유케 될 것입니다.
2020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리 가정마다 주님의 말씀속에 스며들 수 있도록 자꾸 말씀을 가까이 하기를 축복합니다. 자꾸 예배드리며 기도를 통해 영적인 분위기가 가정마다 형성되기를 축복합니다. 이로 인해 더욱 진리이신 주님을 알게 되고, 그분으로 인하여 더 자유케 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