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동구 좌천동에 위치한 일신기독병원에 갔다오는 길에 정공단(鄭公壇)이란 팻말이 발걸음을 멈추게 하였다. 부산광역시 기념물 제10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는 정공단은 부산시 동구 좌천동 473, 474번지에 자리잡고 있는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 문화유적이다.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부산진성을 지키며 군민과 함께 왜적에 맞서 싸우다 부산진성과 운명을 같이한 부산첨사 정발과 그를 따라 순절한 군민들의 충절을 기리고 있는 제단이다.
부산에는 임진왜란 때 왜군과 맞서 싸우다 순절한 분들을 모시는 대표적인 4곳의 단(壇)이 있다. 부산진성을 지키다 순절한 부산첨사 정발(鄭撥, 충장공 1553∼1592)의 충절을 기리는 정공단과 동래읍성을 지키다 순절한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 충렬공, 1551∼1592)을 기리는 송공단, 다대포진에서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다대첨사 윤흥신(尹興信, ?∼1592)을 기리는 윤공단, 그리고 수영에서 평민의 신분으로 7년에 걸쳐 왜군과 유격전을 벌이다 순절한 분들을 기리는 25의용단이 있다.
1592년 음력 4월 14일. 1,000여 명의 병력으로 18,000여 명의 왜군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첨사 정발 장군은 목숨을 걸고 싸웠으나 끝내 왜군의 흉탄에 맞아 장렬하게 전사하자 부산진성은 불과 6시간 만에 함락되고 말았다. 부산진성을 함락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는 왜군을 이끌고 그날 오후 동래읍성으로 몰려갔다. 이튿날(4월 15일) 왜군이 북쪽의 성벽을 넘어 난입하자 동래부사 송상현(1551∼1592)과 양산군수 조영규를 비롯한 수많은 유생과 주민들이 결연히 맞서 싸우다가 모두 전사하였다.
태극 문양이 그려진 평삼문은 정공단의 출입문에 해당한다. 이 삼문을 통과하면 정면 높은 계단 위에 내삼문인 솟을삼문이 있다. 이 내삼문을 지나면 충장공 정발 장군을 기리는 비석과 단이 마련되어 있다.
정발 장군 전망비 쪽에서 본 정공단 출입문의 모습
정공단을 관리하는 정공단보존회 사무실 건물
충장공정발전망비(忠壯公鄭撥戰亡碑)에는 부산진첨사 정발 장군, 부사맹 이정헌, 애첩 애향, 충복 용월의 장렬한 죽음을 새겼으며, 정발 장군은 평소 철릭을 즐겨 입어 별명이 흑의장군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철익은 조선 충장공정발전망비(忠壯公鄭撥戰亡碑) 옆 담장 아래에는 첨사 홍태두 불망비, 첨사 조세망 청덕선정비, 경찰 박기종 영세불망비, 첨사 안광찬 영세불망비, 첨사 박기종 영세불망비, 수사 장인식 영세불망비, 첨사 조광렬 불망비, 첨사 이원룡 영세불망비, 첨사 홍이징 애졸선정비, 첨사 노흡 선정거사비 등이 세워져 있다.
정공단의 내삼문인 솟을삼문의 모습이다. 내삼문 판문에 그려진 태극문양은 성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성리학에서는 우주만상의 근원이며 인간 생명의 원천으로서 진리를 상징한다. 태극문양은 주로 계단 소맷돌, 신방목, 서까래 말구, 사당 대문 등에 널리 나타난다. 태극문양은 불교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사찰건물에서 나타난 가장 오래된 태극문양은 경주 감은사지 석재에 새겨진 삼태극문양이다. 보통 이태극과 삼태극이 혼재하고 있으며, 삼태극은 천지인 삼재(三才)를 상징하는 것으로 홍색, 청색, 황색으로 표현된다.
단(壇)의 중앙에는 ‘忠壯公鄭撥將軍碑(충장공정발장군비)'라 새긴 비를 세우고, 서쪽에는 정발의 막료(정발 장군을 보좌했던 사람)였던 이정헌, 동쪽에는 정발의 첩인 열녀 애향, 남쪽에는 군민들을 모셨으며, 남쪽 층계 밑에는 충직한 노복(늙은 남자 종)이었던 용월의 비를 세운 단이다.
‘忠壯公鄭撥將軍碑(충장공정발장군비)'라 새긴 정발 장군 비와 '贈左承旨李公庭憲碑(증좌승지이공정헌비)라 새긴 정발의 막료(장군을 보좌했던 참모)였던 이정헌의 비이다. 여기서 '贈左承旨'란 글은 사후에 좌승지로 추증되었다는 뜻이다.
‘忠壯公鄭撥將軍碑(충장공정발장군비)'라 새긴 정발 장군 비
정발 장군비의 측면에는 '國紀四千二百八十一年戊子十月 日重建'이라 새겨져 있는데, 이는 1948년 10월에 중건된 것이다.
정발 장군의 첩, 열녀 애향의 비, 烈女愛香碑(열녀애향비)
임진왜란 때 전사한 국민들의 충절을 기리는 비, '戰亡諸公碑(전망제공비)'
정발 장군의 늙은 종, 용월을 기리는 비, 忠僕龍月碑(충복용월비)'
옛단을 묻은 장소임을 알리는 표석, '舊壇埋安感古碑(구단매안감고비)'
보물 제391호 부산진순절도(釜山鎭殉節圖) - 조선 선조(宣祖) 25년(1592) 4월 13일과 14일 이틀 동안 부산진(釜山鎭)에서 벌어진 왜군과의 처절한 전투장면을 그린 것으로, 한 폭(幅)의 그림이지만 처절하고 절박한 상황을 잘 표현하였다. 그림의 크기는 가로 96㎝, 세로 145㎝이다. 비단바탕에 그려진 이 그림은 숙종 35년(1709)에 처음 그려진 것을 화가 변박(卞璞)이 영조 36년(1760)에 다시 그린 것인데, 처음 작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높은 곳에서 전투장면을 내려다 보듯 묘사하였는데, 그림 오른쪽 중간에 부산진 성곽이 배치되어 있고 그 주변을 왜병 및 왜선이 빈틈없이 에워싼 모습에서 그 뒤의 바다도 왜선으로 뒤덮여 있음을 암시하고 있어 아군과 적군의 심한 전력의 격차를 보여준다. 망루 뒤쪽의 건물 안에는 여인이 앉아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는데, 이 여인이 바로 정발 장군의 첩인 열녀 애향이다.
성 아래는 도검난무(刀劍亂舞)하는 많은 왜병으로 뒤덮여 있고, 왜병이 아군보다 왜소하게 그려진 것은 성내(城內)의 소수에 대한 다수를 표현하는데 효과적인 기법이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림의 작품성은 전반적으로 높게 평가되지는 않으나, 나라를 수호하는 민족정기를 보여주는 역사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사진, 글 출처 : 문화재청)
한국 건축물 명칭 알기 - 처마부의 각부 명칭 1. 연함 : 평고대 위에 기와골에 맞춰 파도 모양으로 깍은 기와 받침 부재 2. 이매기 : 부연 끝에 걸린 평고대를 이매기라고 한다. 3. 부연 : 서까래 끝에 방형 단면의 짧은 서까래를 덧붙이는데 이를 부연이라고 한다. 4. 부연 개판 : 서까래나 부연 사이에 까는 판재로서 부연 사이에 까는 판재를 말한다. 5. 착고판 : 초매기 위쪽 의 부연 사이사이 트여잇는 부분을 막기 위해 얇은 판재를 부연 양쪽 볼에 홈을 파서 끼워 넣는데 이를 착고판이라고 한다. 6. 초매기 : 서까래 끝에 걸린 평고대를 초매기라고 한다. 7. 도리 : 서까래 바로 밑에 가로로 길게 놓인 부재이다. 8. 장혀 : 도리 밑에 놓인 도리 받침부재로 도리에 비해 폭이 좁으며 도리와 함께 서까래의 하중을 분담한다. 9. 창방 : 기둥머리를 좌우로 연결하는 부재이다. |
출처: 서백의 사찰이야기 원문보기 글쓴이: 서백(徐白)
첫댓글 건물이 부산 스럽네요. ㅎㅎ 워낙 오르막 내리막이 많은 곳이라서...
역사공부 잘하고 갑니다.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