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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 속에서 주시는 은총 (막6:45-51절)
어거스틴의 기도 중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주님을 알 수 있는 마음의 등불을, 주님을 사랑하는 의지의 힘을 주셔서 주님을 알고 진실로 사랑할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섬길 수 있게 하소서.’주님은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은 닫혀 있어서 주님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어거스틴의 기도처럼 주님의 진리를 알 수 있는 마음의 등불을 달라고 간청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돌봄에 대한 참 된 진리와, 질서를 소중히 여기며, 물질을 낭비하는 않는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떡과 생선을 배불리 먹은 군중들은 오직 기적 자체에만 관심을 가지고 억지로 예수님을 임금 삼으려 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물질적 욕구와 현세적 만족을 채워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적인 만족과 하나님 나라의 축복을 주시기 위해 성육신하신 예수님께서는 유대 군중들의 그러한 시도를 물리치시기 위해 제자들을 재촉하여 갈릴리 바다를 건너 벳새다로 보내셨습니다. 당시 혁명의 본거지라 불렸던 갈릴리 주민들은 예수를 민족 해방을 위한 정치적 지도자로 삼으려고 열광했습니다. 이들은 외관상으로는 예수를 열렬히 환영하였지만 그 깊은 내면은 현세적이고 물질적인 욕망 충족에 연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수님의 신분이나 사역의 본질을 알 수가 없었으며 정치적 메시야로서 그들 위에 계시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악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그곳에서 먼저 떠나보내시고 자신은 점점 고조되는 적대자들의 핍박과 정치적 메시야에 대한 백성들의 그릇된 기대 및 당신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사역을 놓고 하나님과 은밀한 교제의 시간을 갖기 위해 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
*막6:45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
예수님은 ‘즉시’ ‘재촉하여’ 제자들을 앞서 보냈습니다. 즉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강권하여 다른 장소로 옮기셨다는 것입니다. 군중들의 그릇된 메시야관은 위험한 시도로서 제자들이 물들면 안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오천 명을 먹인 후 날이 저물었기 때문에 제자들은 이미 수리를 지나 바다 한가운데 이르렀습니다.
*요6:19 제자들이 노를 저어 십여 리쯤 가다가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두려워하거늘...
요한복음의 원문에는 제자들의 배가 약 25-30 스타디온 간 후에 이 사건이 발생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1 스타디온은 약 185m 임으로 제자들이 약 5Km 정도 간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의 배가 항해하기 시작한 율리어스 벳새다 (눅9:10) 와 상륙지점인 갈릴리 벳새다 사이의 거리를 8Km 정도로 추산한다면 제자들의 배가 바다 한 가운데 있음이 분명합니다. 당시 로마는 밤의 시간을 4단계로 나누어 일경은 저녁 6시에서 9시까지, 이경은 9시부터 12시까지, 삼경은 12시부터 3시까지, 사경은 3시부터 새벽 6시까지로 정하였습니다. 마가는 로마의 시간 법을 인용하여 이 때를 밤 사경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1. 사경은 역경의 밤이었습니다.
이 시간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갈릴리 바다에서 죽음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폭풍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a. 이 밤은 큰 바람이 파도를 일으키던 밤이었습니다.
*요6:18 큰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어나더라.
*막6:48 바람이 거스리므로.. 라고 하였습니다.
갈릴리 바다는 해수면이 지중해보다 훨씬 낮은 약200m 아래에 위치하며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때때로 돌풍이 부는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또한 밤중에 돌풍이 일어나는 것은 사막의 기온 변화로 종종 있었던 일입니다. 캄캄한 밤중에 일어난 돌풍은 바다의 물결을 성나게 만들었습니다. 저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보았던 바로 그 날 밤에,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떡을 먹은 그 날 밤에, 그곳을 떠나 건너 편 게네사렛 땅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거기서 그들은 가버나움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b. 제자들이 고난을 겪고 있던 시간이었습니다.
*막6:48 바람이 거스리므로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마14:24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
본문의 ‘괴로이’ 라는 헬라어 ‘바사니 조메누스’ 라는 말은 ‘고문하다’ ‘지치게 하다.’ 라는 의미를 지닙니다. 이로 보아 제자들 중에는 갈릴리 바다에 익숙한 어부들도 많았지만 당시의 형편이 제자들의 항해 실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최악의 사태임을 보여줍니다. 이 바람과 물결은 제자들이 가는 방향에서 마주 불어오는 역풍으로 배를 목적지에서 자꾸 이탈시켜 항진하는데 굉장한 어려움을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역경의 순간을 만난 것입니다. 저들은 폭풍을 뚫고 죽음의 파도와 싸우며 괴로이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그 어두운 밤에, 바람과 파도와 힘을 다하여 싸우고 있었습니다. 때는 밤 사경이었습니다. 밤은 깊을 대로 깊어만 갔습니다. 적게 잡아도 제자들은 벌써 9시간 가까이 노를 저은 셈입니다. 인간의 한계에 이미 다다른 시간이었습니다.
2. 밤 사경의 은총입니다.
제자들이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이 시간은 도리어 큰 은총을 체험하는 축복의 순간이었습니다. 밤 사경에 받은 은총은 그 내용이 무엇입니까.
a. 예수님께서 지켜보시고 기도해 주시는 은총입니다.
제자들과 작별하신 주님은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주님은 그 곳에서 기도하고 계셨습니다.
*마14:23 무리를 보내신 후에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 저물매 거기 혼자 계시더니..
주님은 거기서 제자들이 괴로이 노 젓는 것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르신 산 중턱에서 바라보이는 호수 저편은 약 5-6Km 정도의 거리였습니다. 때는 유월절 시절이므로 만월의 달빛이 비추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폭풍과 파도와 싸우는 제자들의 고투 현장이 상세히 보였습니다. 주님은 저들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제자들만 보내시고 홀로 편히 계실 주님이 아니십니다. 반대로 주님은 제자들의 신앙을 연단시키고 계셨습니다. 장차 자신이 받으실 수난에 대비하여 어떤 역경에 부딪힐 줄 모르는 상황에서 이러한 불같은 신앙 훈련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또한 구원의 소중함과 신앙적 열의를 강조하고 계셨습니다. 구원의 복음이나 하나님의 신령한 축복들은 간절히 소망해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기 때문에 제자들의 이러한 의식을 바꿔 놓으시려는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만 참 구원이 있음을 체험적으로 가르치고 계십니다. 여기에 제자들의 소망이 있습니다. 여기에 우리 모두의 소망이 있습니다. 마치 운동장에서 죽을힘을 다하여 뛰고 있는 어린아이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부모를 생각할 때에 새 힘이 솟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롬8: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그래서 시편 성도는 노래하기를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 삶의 현장을 바라보시고, 지켜보시며, 기도하고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b. 예수님의 오심을 보는 은총입니다.
*막6:48 밤 사경 즈음에 바다 위로 걸어서 저희에게 오사..
*마14:25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요6:19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 배에 가까이 오심을 보고..
*막6:49 제자들이 그의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의 곤경을 직시하였습니다. 주님은 기도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시고 제자들을 구출하시려고 바다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물위로 걸으셨습니다. 노기서린 성난 파도를 발로 밟으시고 걸어오셨습니다. 주님은 돌풍이 일으키는 파도 위를 유유히 거닐고 계셨습니다. 실로 자연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신적 권능을 유감없이 행사하시는 순간이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예수님 자신의 본성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러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구세주적 본성이 물결에 휩싸여 고난당하는 제자들을 구원하시려고 물 위를 걸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예수는 파도를 밟고 오셨다. 그와 같이 예수는 인생의 넘치는 모든 혼란을 발아래 밟아 버리셨다. 크리스천들이여 왜 두려워하는가.”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심을 눈으로 볼 수 있었습니다. 저들은 파도와 물결로 죽음의 위기를 맞고 있었는데 주님은 그 죽음 위로 걸어오시고 계심을 보았습니다. 그 죽음의 파도 위를 거닐고, 산책하고 계심을 실제로 본 것입니다. 실로 대단한 경험이었습니다. 엄청난 사건이었습니다. 갈릴리 바다 한 가운데로, 약 십여 리 거리를 도보로 걸어서 오시는 이 초자연적 사건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것은 주관적 지식이 아니라 객관적 체험이었습니다. 이 분은 자연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전능하신 통치자였습니다. 절망과 고통의 순간에, 인간의 힘이 다 빠지는 순간에, 만물의 주께서 친히 찾아와 주신 역경의 은총이었습니다.
c.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말라는 은총입니다.
*막6:50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풍랑 위로 걸어오시는 주님을 보고 다 놀라버렸습니다. 그리고 유령이라 하여 무서워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여기에 ‘유령’ 이라는 말은 실제의 몸이 아닌 환상이나 허상을 말합니다. 제자들의 상식으로는 주님이 바다 위를 걸어오리라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공포에 질려 떨면서 비명을 지른 것입니다. 그러나 전일에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잠잠케 하신 사건을 제자들이 기억하였더라면, 혹은 어제 있었던 오병이어의 이적을 생각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었다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제자들의 반응은 불신앙적이요, 미신적 소행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저들의 행위를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세 가지 은혜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첫 번째의 말씀은 “안심하라” 입니다.
이 말의 헬라어 ‘다르세이테’ 는 ‘용기를 가지라.’ ‘담대 하라’ 는 뜻의 강한 명령어입니다. 이 말씀을 주신 것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는 확신을 가지고 담대히 떨쳐 일어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용기를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불안해도 마음을 정하게 하고 편안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내니” 입니다.
“내니” 라는 말 “에고 에이미” 는 마치 출애굽 당시 하나님이 모세에게 스스로를 계시 하시면서 표현한 “여호와” 곧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라는 표현과 마찬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나” 선언은 곧 하나님의 현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명백히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나다.” 라고 하신 것은 바람과 파도와 지구의 중력까지도 정복하시고 바다 위에 우뚝 서 계신 이는 유령이 아니라 바로 제자들이 믿고 따르던 자신들의 스승일 뿐 아니라 모든 공포와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만유의 주이심을 전달하신 것입니다.
세 번째 말씀은 “두려워 말라” 입니다.
이 말의 헬라어 “메 포베이스데” 는 현재 명령형으로 지금 당장 그 무서워하는 것을 중단하라는 참으로 단호한 명령입니다. 이제 내가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사41:13-14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고 함과 같습니다.
공포에서 자유케 하는 위로의 음성이었습니다. 실패와 좌절에서 소망과 용기를 주는 희망의 메시지였습니다.
d. 해결해 주시는 은총입니다.
*막6:51 배에 올라 저희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배에 오르시기 전에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께 가다가 불신앙과 무서움 때문에 물에 빠져가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붙잡아 주시는 기막힌 일이 있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 배에 오르시니 바로 그 시간에 바람이 그치고 파도가 조용해졌습니다. 실로 놀라운 순간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적이 바다 위로 걷는 것에 국한되지 않고 바람을 잠재우는 권능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무언의 명령으로서 바람의 기운을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풍랑을 잠재우기 위하여 주님이 베푸신 이적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계속하여 바다 위를 걸으셨거나 제자들을 바다위로 부르시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예수님이 친히 지치고 힘들어하는 제자들의 배에 오르셨습니다. 그 제자들과 함께 하실 때에 모든 장애는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기적입니다. 예수가 함께 계시니 더 이상 아무것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내색하지 않고 마음으로 심히 놀라며 예수님께 절하면서 고백합니다.
*마14:33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기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
e. 목적지에 이르게 하는 은총입니다.
*요6:21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저희의 가려든 땅에 이르렀더라.
풍랑이 가라앉자 배는 순풍에 돛 단 듯이 미끄러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처음부터 시도하신 뜻대로 되고 말았습니다. 이날 밤의 항해는 더 이상의 고통 없이 가려든 땅에 무사히 도착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는 바다 위를 걸어오시며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이적을 통하여 자연까지도 다스리시는 신적 권위가 예수님께 있음을 알리시는 동시에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이 사건은 오늘도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간을 지나는 사람들을 위해 친히 기도하시며, 찾아오시며, 위로와 용기의 말씀을 주시며, 함께 하심으로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주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여러분 중에 밤 사경에 풍랑을 만난 분이 계십니까. 걱정하지 마십시오.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을 믿고 붙잡고 승리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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