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의 봄맞이
- 강 문 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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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로에 구름인파가 몰렸다. 성탄축제나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하는 행사가 펼쳐진 것이 아닌 2월 둘째 주 일요일 낮에 벌어진 일이다. 설 명절 연휴를 지나자 이틀 간 비가 내렸고 사람들은 비 때문에 갇혔다가 봄기운을 쐬고자 한꺼번에 몰려나왔던 것. 그 속엔 겉으로 구분이 잘 안 되는 중국의 유커들이나 이웃 나라 일본 관광객들도 들어있었을 터였다. 동남아나 중동 유럽 미주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들도 꽤나 눈에 띈다. 서울 명동처럼 이제 광복로도 지구촌에 널리 알려져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사순 첫 주 미사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설 때만 해도 북녘에 눈이 내렸는지 바람은 차가웠다.
광복로 나들이객들도 대부분 두꺼운 방한복이나 외투를 걸친 것은 그 눈바람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철에 올라 사무실로 향하다가 용두산공원이 떠올라 목적지 두 정거장 앞인 중앙역에서 내렸다. 공원으로 곧장 질러가는 길을 두고 남포동으로 걸었다. 이곳에선 국제여객선터미널이 가깝다보니 선원들로 보이는 중장년의 외국인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그들이 걸친 옷은 주로 청바지에 점퍼차림인데 반세기 전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 이들은 자국 문화 탓인지 아니면 낯선 이국땅이 주는 긴장감 때문인지 길거리에서 웃고 떠들거나 장난치는 걸 볼 수 없고 항상 굳은 표정이라 진지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 보행인들이 옆에 사람들이 지나든 말든 시끌벅적하게 막말을 예사로 쏟아내는 걸 볼 때마다 중앙동에서 만났던 이 낯선 이국인들 얼굴이 떠오르곤 했다. 일전 어느 책에서 ‘걷는 것은 사색하는 것’이란 글귀를 본 적 있다. 맞는 말일 것이다. 걷다보면 생각이 떠오르고 또 더 걸으면 그 생각들이 차분히 정리되는 걸 느끼게 된다. 갑자기 인터넷카페지기도 참 피곤한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직업은 무슨 얼어 죽을 놈의 직업이냐고 따진다면 그냥 늘어놓는 흰소리라고 답할 수밖에. 각설하고 본인의 ‘산지기카페’에 올릴 봄소식을 찾다가 정기총회를 앞두고 있는 사무실에 밀려 있는 일이 떠올라 집을 나선 것이다.
봄의 전령으로 매화와 동백꽃 유채꽃 청보리를 꼽은 글은 그 네 가지의 의미를 이렇게 풀었다. ‘눈 밝은 매화나무는 봄 기척에 희붉은 꽃을 피우고 주홍빛 아련한 동백꽃은 떨어져도 쉬 시들지 않으며 바람에 넘실대는 유채꽃은 들판을 샛노랗게 물들이고 청보리밭엔 초록의 향연이 펼쳐진다.’ 매년 찾아오는 새봄이지만 꽃샘추위로 몇 차례나 혹독한 통과의례를 치룬 후 화사한 봄을 펼쳐 보이기에 사람들은 ‘춘래불사춘’을 들먹이며 봄을 잔인한 계절이라 부르는지도 모른다. 봄은 남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며칠 전 부산 연산동에서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가 여실히 증명해보였다.
그러니 사람들은 좀 이르긴 하지만 봄 마중 코스를 남항과 맞붙은 남포동과 광복로로 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처럼 광복로에 차가 없는 날은 길 한복판에서 왕년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거장들이 음악공연을 펼치기 때문에 더욱 활기가 넘친다. 차도 바닥 블록이 군데군데 내려앉았고 용두산공원을 오르는 에스컬레이터도 4대 중 3대가 고장으로 멈춰 섰다. 휴일에 긴급 출동했을 기사들이 수리작업에 매달리고 있었지만 무릎이 신통찮은 내외국인 관광객들은 그곳에 붙어서서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도로도 에스컬레이터도 과부하로 몸살을 앓고 있는 게 분명했다. 공원을 오르자 얼굴을 스치는 바람엔 어느새 봄기운이 느껴졌다.
바둑과 장기를 두는 실버들의 전용공간인 남쪽 느티나무 밑은 대여섯 명의 노인들 한 팀만 나온 때문에 나머지 공간은 휑한 느낌이 든다. 그곳 벤치의 목재 틈새에다 스마트폰을 세우려고 용을 쓰는 소녀를 만났다. 단박에 봐도 그것은 헛수고란 걸 알 수 있다. 두 소녀는 그 흔한 셀카봉 하나도 준비를 못한 것 같았다. 폰을 건네받아서 사진을 서너 컷 찍어주는데 둘은 의외로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그래서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장유에서 왔다고 한다. “장유도 곧 독립시가 된다면서?” “예, 맞아요.” 라고 하더니 “할아버지도 저희와 함께 찍으시죠.” 한다. 그렇게 낯선 소녀들과 기념사진을 한 컷 남겼다.
부산이 낳은 박태문 시인의 '봄이 오면' 시비를 찾았다. 시인이 천재적 재능을 가지고도 그 향기를 제대로 떨치지 못하고 요절한 것은 타고난 가난과 병마 때문이었다. 옆에 선 시비와 달리 마침 박 시인 시비에는 그늘이 드리우지 않아서 빠르게 카메라에 담았다. 공원을 거의 다 내려섰을 때 옛 미화당백화점 골목을 꺾어들던 젊은 여자가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말을 걸어왔다. “저예, 죄송한데예. 용두산공원은 어디로 가예?” 오랜만에 들어보는 토박이 사투리에서 친근감이 묻어났다. 다 왔다면서 방금 내려온 뒤를 가리키자 엄마 손을 잡고 있던 어린 딸아이가 팔짝팔짝 뛰면서 더 신나한다.
오늘 카페지기의 마지막 취재는 길거리음식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은 지구촌 곳곳에서 온 젊은이들에게도 그대로 통하는가 보다. 그들이 운영하는 매대도 활발하고 줄을 서서 사먹는 이국인들도 우리 젊은이들 못지않게 적극성을 보였다. 고픈 배는 허기를 채우는 게 약이 아니겠는가. 씨앗호떡 등 길게 줄지어선 풍경을 몇 군데 카메라에 담고 싶지만 그럴 만한 공간이 나오질 않아 촬영은 이래저래 힘들다. 무거운 방송용 비디오카메라를 든 청년도 그래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비프광장 길 복판에 들어선 길거리 음식 매대를 지나치다보니 인도네시아 볶음 누들인 ‘미고랭’엔 손님이 한 명도 없었다.
그래서 키꼴이 작고 가녀린 두 아가씨 표정이 침울해 보였다. 한참을 지나쳐 걷다가 4천 원짜리 하나라도 팔아주고자 다시 찾아갔지만 서너 명의 손님들이 붙어 서 있었다. 사무실에서 밀린 일을 마무리하고 나선 시각이 저녁 8시. 자주 해오던 대로 가까운 부평깡통시장을 들러서 어묵 한 봉지를 구입했다. '국제시장' 영화에도 소개된 ‘꽃분이네’ 점포 앞을 지나면서 아직도 시장 경기는 살아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실버들로 구성된 광복로 거리공연단 무대에선 올드 팝송 '일요일은 참으세요'가 합창으로 울려 퍼지고 있었다. 그때 자갈치 쪽에서 불어온 것으로 느껴지는 비릿한 바람 한 줄기가 콧날을 스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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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광복동 거리에 봄기운이 느껴집니다~~^^
사진에서도 따뜻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우수가 나흘 앞이고 그로부터 경칩이 보름 앞이니 그럴 것입니다. 새봄엔 경기가 좀 살아나면서 부동산 시장에도 봄 햇살이 비추길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