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의 결혼생활을 통해 나자렛 성가정을 닮아간 한 가정을 만났다. 감골본당 안민호(레오, 71세) 황희순(마리아 막달레나, 63세) 씨 가족이다.
두 부부는 같은 회사를 다녔다. 오랜 기간 황희순 씨를 자신의 짝으로 점찍어두었던 안민호 씨는, 사실 결혼에 한번 실패하고 난 후 삼남매를 혼자 키우고 있던 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회식 자리에서 먼저 자리를 뜨는 황희순 씨를 붙잡고, 안민호 씨가 어렵사리 고백을 했다. “날 닮아 우리 자식들도 다 못된 성격이지만, 우리 식구 넷을 사람으로 만들어 줄 사람은 당신 밖에 없는 것 같소. 그러니 나와 결혼해주지 않겠소?”
안민호 씨와 그저 인사만 나누는 사이였던 황희순 씨에게는 갑작스럽고 황당한 고백이었을 터. 그러나 황희순 씨는 뿌리치지 않고, 신앙에 기대어 답을 내렸다. “3일 동안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죠. 그러던 이튿날, 꿈에서 하느님을 뵈었어요. 저는 주님의 자녀이기에 세상의 빛과 소금처럼 살고 싶다고 생각해왔는데, 당신이 주님이시면 좋은 지혜를 달라고 청했지요. 그러자 껄껄 웃으시면서 ‘그건 네가 살아가는 과정이다’라고 하시더군요. ‘어떻게 하거라’ 가르쳐주신 게 아니었기에 곰곰이 그 뜻을 생각하다보니, 내가 찾는 그 빛이 살아가면서 보이리라고 하신 것이라 생각했죠. 내가 아니면 저 사람을 일으켜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아내 입장에서는 밑지고(?) 하는 결혼일 수밖에 없었지만, 황희순 씨가 내세운 조건은 단 하나였다. 남편이 함께 성당에 다니는 것. 그리고 결혼 후 6개월간 신림동성당에서 안민호 씨가 예비자 교리를 받는 동안 그의 곁에는 늘 아내 황희순 씨가 함께였다.
처음 결혼했을 때 자녀들의 나이가 20세, 중3, 중1이었다. “사춘기 시절의 아이들이 잘 커준 것이 고맙다”는 황희순 씨는 야단 한번 쳐본 적 없이 묵묵히 어머니의 역할을 해냈다. 흔한 부부 싸움도, 바가지 긁는 일도 한번 없었다. 오히려 큰 아들이 “어머니, 아버지랑 한번 싸움 좀 해보세요. 저는 어머니 편 해 드릴테니까” 라며 부추긴 적도 있다며 두 부부는 그저 웃기만 했다.
물론 평탄한 길만 있었던 건 아니다. 한 동안 안 씨가 디스크 협착증으로 걸을 수 없을 정도까지 되어 긴 투병생활을 견뎌야 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내의 보살핌과 기도는 그의 건강을 다시 되찾게 했고 지금은 직장생활을 할 정도다. “누워있는 동안 온통 미안한 마음 뿐이었죠. 이 사람이 어려서부터 했던 기도의 힘이 지금 내게 온 것 같아요.” 안 씨가 존경과 신뢰가 가득 담긴 눈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이야기한다.
매일 묵주기도 100단, 십자가의 길, 연도, 성경읽기와 필사. 황희순 씨의 하루 일상이다. 구역장으로 봉사하고 있는 그는 구역 내 쉬는 교우들의 명단을 뽑아 그들을 위해 묵주기도를 봉헌해왔다. 그 기도의 힘 때문인지 몇 가정은 성당에서 다시 볼 수 있기도 했다. 황희순 씨는 “아직 기도가 부족하다”며 더 정성들여 기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기도는 실천과 이어져오기도 했다. 같은 동네에 이사 온 지적장애인을 외면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황 씨는 그분에게 함께 성당에 다니길 권유했고, 식사도 자주 함께 대접하면서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지금은 혼자서도 매일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그 분을 보며 큰 감사와 기쁨을 느끼고 있다.
쉽지 않아 보이는 삶을 택한 것, 그리고 그 속에서 기도와 실천으로 한 가정을 일궈낸 것, 또 그 와중에도 이웃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 온 것. 황희순 씨에게 신앙은 무엇일까.
“주님께서 만드신 것이니까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보려고 할 뿐이에요. 나의 마음이 ‘성전’이고, 이런 내 마음을 봉헌하는 이 세상이 모두 하늘나라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는 지금 하늘나라에 살고 있는 셈이죠. 이런 사람이 상(성가정축복장)을 받은 게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항상 도와주시는 주님께 늘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라는 황희순 씨. 이런 아내를 통해 저절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있다는 남편 안민호 씨도 “봉사하면서 내 생애를 마감해도 좋을 것 같다”며 평생 아내를 후원해주고 싶다고 얘기한다.
성가정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완성해가는 것이다.
연희정 명예기자 사진: 정인호 명예기자 정리: 교구 홍보·전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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