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해 뜨는 마을을 다녀왔다. 해 뜨는 마을은 경기도 포천시 관인면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마을이다. 일반 청소년들이 아니라 가정법원에서 이런 저런 사연으로 형을 받게 된 청소년들을 수탁받아 선도하는 마을이다. 일컬어 ‘비행 청소년’들이라고들 부르지만 나는 이 용어 쓰기를 즐겨하지 않는다. 가정법원에서 형량이 무거운 아이들은 형살이를 하지만 가벼운 죄질의 아이들이 해 뜨는 마을로 보내져 여섯 달 혹은 일년 기간 머물며 보호를 받는다. 해 뜨는 마을은 박수일 목사가 1995년에 이곳에 설립하여 지금까지 일편단심으로 청소년들을 돌봐 왔다. 이곳에 수탁되고 있는 소년들 한 명 한 명의 사연을 들어보면 눈물겹도록 마음 아픈 사연들이다. 김아무개 경우는 이붓 아버지가 자기 누나를 성폭행하여 이붓 아버지를 칼로 죽이려다가 잡혀 온 소년이다. 박씨 성을 가진 한 아이의 경우는 인생의 목표가 엄마와 같이 사는 아저씨를 죽이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에 아버지가 외출하고 난 뒤 엄마가 아저씨를 불러들여 같이 있는 동안에 자신을 보일러실에 가둬두곤 하였다. 그래서 자기는 그런 엄마를 절대로 용서할 수 없노라 하였다. 이런 상처와 아픔 속에서 아이들은 길을 잃고 방황하다 곁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우리는 그런 소년들을 절대로 무관심하거나 외면해선 안된다. 지금 11만 여명의 소년소녀들이 여러 가지 사연을 따라 가출하여 길거리나 PC방을 떠돌고 있다. 그들이 그냥 방치된 체로 지나게 된다면 그들의 장래는 물론이려니와 우리 사회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들의 문제가 어떻게 남의 문제가 될 수 있겠으며 그냥 방관할 문제가 될 수 있겠는가? 더욱이나 잃은 양을 돌보시려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교회는 결코 그들을 외면하여서는 안 된다. 교회의 온 힘과 자원을 동원하여 그들을 돌보는 일에 발벗고 나서야 한다.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던 불우한 환경속에서 세상속 범죄의 현장으로 내 몰리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있다.
한국교회와 당신의 교회가 이런 세상의 아픔을 품고 기도하며 재정을 쏟아야 하지 않겠는가?
신 14:29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
1. '주님의시선' 카페와 카페지기가 섬기는 '마산시민교회'가 더 풍성해 질 수 있도록 기도를 부탁합니다.
제 목 : 거두는 목회, 뿌리는 목회 성 경 : 전 11:9
지금 교회의 부흥은 과거의 신앙의 선배들이 심은 것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를 내다보고 지금 열심히 심어야 한다. <거두는 목회, 뿌리는 목회> 제가 얼마 전에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저희 교회가 최근 몇 년 동안 수적으로 성장하면서 제 안에 자꾸 인간적으로 교만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딜 가든지 교인 수를 자랑하고 얼마나 성장했는지에 대해 즐겨 이야기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최근 새벽기도가 끝났을 때 저에게 아주 귀한 마음을 주셨습니다. "야, 이놈아! 그게 네 목회냐?"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이렇게 말씀하시길래 {그래도 제가 와서 늘었는데요} 하고 대꾸했더니 하나님께서 다시 하시는 말씀이 "그건 원로목사님이 뿌린 것을 네가 거둔 것이지 네 목회의 열매는 아니지 않느냐?" 하시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목회에는 "뿌리는 목회"와 "거두는 목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지금은 제가 거두는 목회를 하고 있는데 따지고 보면 그것은 우리 선배들이 뿌렸던 것을 제가 거두는 것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못됩니다. 그 날 하나님께서는 또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네 목회는 앞으로 5년, 10년 후에, 아니 어쩌면 네가 은퇴한 후에 네 후임 목사가 거두는 것이 네 목회일 것이다." 뿌리지 않고는 거두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 하나님의 법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한국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는 거두는 데 눈이 어두워서 뿌리는 것을 잊었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거두는 게 재미있겠습니까, 뿌리는 게 재미있겠습니까? 당연히 거두는 게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투자가 없으면 결과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한국 교회는 투자는 하지 않고 자꾸 따먹기만 하는 통에 앞으로 5년 후, 10년 후가 걱정입니다. 얼마 전, 제가 어느 신학교에 가서 예배 설교를 하면서 신학생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여러분들은 막차를 탄 사람들입니다"라고 말입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저는 '70년대에 신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그때는 기가 막히게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때는 원서만 내면 신학교에 들어갈 수 있었고, '70년대에 마침 한국 교회가 급성장하는 바람에 저희가 졸업할 때쯤에는 여기저기 갈 교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학생 수는 적은데, 교회는 수적으로 많이 늘어나서 사역 자리가 많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6.25 전쟁 통에 우리 바로 윗선배 세대가 많이 약해져서 그 웃어른들이 은퇴를 하고 교회를 물려주게 됐을 때 한 세대를 건너뛰고 저희가 교회를 전수하게 된 것도 저희 세대가 누린 특권이었습니다. 저도 지금 40대 중반의 나이로 동안교회를 담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제명대로 살게 해주시면 저희 교회 차기 목사는 최소한 20년은 기다려야 될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돌아올 자리가 없는 게 현실입니다. 저희 때하고 비교하면 지금은 상황이 아주 나쁩니다. 또 지금은 우리 때와는 반대로 교회는 성장을 멈추고 신학교는 셀 수도 없이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계산이 하여간 안 맞습니다. 또, 저는 선배들이 뿌려 놓은 것을 거두기라도 했지만 지금의 젊은 교역자들은 거두는 목회도 할 수가 없습니다. 거두는 목회는 저희 대(代)로서 끝입니다. 거둘 사람은 이미 다 들어가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젊은 교역자들은 뿌려서 거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저희 세대 목회자들은 시대를 잘 타고나서 뒷걸음 치면서도 소 잡는 격의 목회를 하지만, 젊은 교역자들은 열심히 계획해서 노력하고 뿌리고 투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거둘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 세대보다는 지금 젊은 2,30대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좋은 목회자가 나올 가능성이 더 많습니다. 물론 저희보다 고생은 많이 하겠지만 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젊은 교역자들은 뿌리는 목회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뿌리는 목회의 대표적인 예가 대학청년목회입니다. <10년 후를 바라보고 사역하라> 제가 어느 교회에 가서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예배당은 새로 잘 지어 놓은 교회였는데 문제는 주일학교와 청년부가 너무 한산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가만 있을 수가 없어서, 나이 지긋하신 담임목사님이 보고 계시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주제넘는 소리를 좀 했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성도들에게 물었습니다. "여러분 한 번 잘 생각하고 대답해 보십시오. 이 교회는 지금이 좋은 교회입니까, 아니면 5년쯤 지나야 더 좋은 교회가 될 교회입니까?" 질문은 던졌는데 아무도 대답을 못합니다. 별로 생각을 안해 봤는지, 아니면 생각을 해보니 썩 자신이 없었는지 아무튼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저희 동안교회는 지금 좋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5년 후가 되면 지금보다 틀림없이 더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건 틀림없습니다. 또한 5년 후보다는 10년 후가 더 좋은 교회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드리기 미안하지만, 제가 보기에 이 교회는 지금이 좋습니다." 이 말이 칭찬입니까, 욕입니까? 지금이 좋다라고 하는 건 앞으로 희망이 없다는 얘기입니다. 용기를 내서 드린 건방진 말이었건만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 제 손을 꼭 잡으면서 좋은 얘기 해줬다며 고마워하셔서 제가 오히려 감사했습니다. 아무튼, 목회는 지금 당장이 아닌 최소한 10년 앞을 내다보고 해야 합니다. 지금 열심히 뿌려서 10년 후에 거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을 생각하면 서 목회하면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쓰게 됩니다. 최소한 10년 후를 바라보고 목회를 해 목회에 승산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청년부를 맡은 교역자들은 그 사역을 담임목사가 되는 징검다리쯤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사역은 실패하고 맙니다. 지금 맡은 사역이 목회의 전부인 것처럼, 그 사역에 생명을 건 사람처럼, 그래서 평생 대학청년부만 맡으라고 해도 할 마음을 가지고 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청년부 숫자가 5명이든 10명이든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다른 사역도 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이 얘기는 기가 막히게 좋은 때에 신학을 공부한 저희 때에도 늘 듣던 얘기였습니다. 저는 청량리중앙교회라고 하는 통합측 장로교에서 자라났는데, 그 교회 목사님이신 임택춘 목사님이 저에게 늘 그런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유초등부 목회 잘하면 목회에 성공하고, 주일학교 설교 잘하는 것이 설교 잘하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제가 실제 경험해 보니 그 말씀이 꼭 옳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부를 잘 목회하는 사람이 결국은 목회를 잘할 사람입니다. 또 중고등부나 유초등부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빨리 당회장 될 생각만 하고 교회학교의 사역을 과정 정도로만 생각하면서, 담임목사만 되면 멋지게 목회할 것이라 생각한다면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