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드 소령 ‘모기가 매개체’ 증명… 질병 대처 급진전
아르보바이러스에 의한 급성전염병
고열·구역·구토 등 여러 증상 발병
미-스페인 전쟁, 미군 2000명 사망
업적 기리며 ‘월터 리드 육군병원’ 건립
100여 년간 치료·재활에 큰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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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화=김성욱 |
우리나라에서는 대통령이 아플 때 주로 국립병원이나 유명 민간병원에서 진료를 받지만,
미국은 군 병원에서 대통령 치료를 전담한다. 1985년 레이건 대통령의 대장암 수술, 1997년 클린턴 대통령의 무릎 수술, 2014년 오바마
대통령의 역류성 식도염 치료도 모두 ‘월터 리드 육군병원(Walter Reed Army Medical Center, WRAMC)’에서 받았다.
병원 입구에는 ‘미군의 전투력은 우리 병원에서 나온다’는 캐치프레이즈가 걸려 있다.
이 병원은 월터 리드
소령(Major Walter Reed, 1851∼1902)을 기리고자 그의 이름을 붙인 것이다. 리드 소령은 의학적으로 특별한 위업을 남긴
군의관이다.
우리에게는 조금 생소하지만 열대 또는 아열대 국가에서 유행하는 병 중에 황열병(Yellow fever)이 있다. 아르보
바이러스(arvovirus)에 의해 전파되는 이 병은 출혈열증후군의 일종으로 짧은 경과 동안 여러 증상을 나타내는 급성전염병이다.
주요 증상은 고열과 구역, 구토, 두통, 근육통 등이다. 1648년 멕시코에서 처음 발병했고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카리브
해안과 대서양 해안을 따라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넓은 영역으로 퍼졌다.
18세기 초 발병 지역에서 모기가 많이 발견돼, 쿠바
아바나의 내과 의사 핀레이(Carlos Finlay, 1833∼1915)는 피를 빨아 먹는 곤충이 황열의 매개체 노릇을 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황열병은 모기가 전염시킨다는 논문을 발표(1881)했지만, 그것을 증명하지는 못하였다. 당시에는 나쁜 공기로 전파된다는 이론이 지배적이어서 그의
주장은 별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1890년대에 들어서자 미국의 플로리다와 쿠바 간의 교역이 늘고 왕래가 활발해지면서 황열병이
쿠바에서 플로리다로 퍼지기 시작했다.
미국은 스페인 식민지인 쿠바를 합병해 쿠바의 보건 문제를 직접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1898년 스페인과 전쟁을 벌였다. 쿠바에 주둔하던 미군 중 전사자는 400명 이하였지만, 황열로 사망한 사람은 2000명에 이르러 특단의
조처가 필요했다. 이에 1900년 외과의사 리드 박사를 책임자로 한 황열병 연구팀이 구성됐다.
쿠바에 도착한 연구팀은 먼저 아바나의
핀레이를 찾아갔다. 모기가 황열을 전파할 것이라는 핀레이의 설명을 듣고 그가 준 모기 알을 가지고 돌아왔다. 핀레이가 미처 증명하지 못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그에게 자문을 받으며 100번 이상 실험을 되풀이했다. 연구팀의 모기연구가인 라지어와 세균학자 캐럴은 인체실험에 지원했고 그
때문에 라지어는 목숨까지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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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막이 노랗게 변한 황열병
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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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가 옮기는 황열
바이러스. |
마침내 리드는 이집트 숲 모기(Aedes aegypri)가 황열의 매개체라는 것을 증명했고, 사람들끼리 접촉하는 것으로는 전파되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하기에 이르렀다. 이 모기는 거주지 주변의 물웅덩이나 고인 물에서 번식하고 있었다.
이 연구 덕분에 모기가
없는 곳으로 환자를 격리하고 이 질병에 대처하는 방법을 강구하게 됐다.
미국은 1901년부터 쿠바에서 모기 박멸 사업을 벌여 황열을
예방하기 시작했다. 또한 리드는 황열병 원인이 아르보바이러스라는 것을 밝히고 세균과 다른 점도 발표했다. 이를 토대로 오늘날엔 황열 예방접종이
보급돼 우리나라에서도 남미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필수적으로 접종하고 있다.
육군대학 교수로 돌아간 리드는 안타깝게도 1902년
충수돌기염 수술의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1909년, 미 육군은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워싱턴 D.C.에 육군 의료원을 건립했고 그의 탄생
100주년을 맞은 1951년 ‘월터 리드 육군병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 병원은 지난 100여 년간 미군의 치료·재활에 큰 역할을 해왔다.
1,2차 세계대전, 6·25전쟁, 베트남전, 이라크전, 아프가니스탄전에서 부상한 미군들을 진료해 명성을 떨쳤다.
우리나라의
국군수도병원도 월터 리드 육군병원처럼 발전하는 날이 올 것이다. 군 환자들이 민간병원보다 훨씬 신뢰하고 제일 먼저 찾아가는 병원을 만들기
위해서는 “전장에서 살아오는 병사를 다시 전사(戰士)로 부활시키겠다”는 의료진의 의지와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