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61:4]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대대로 무녀져 있던 것들 - 유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동안 유다 본국 팔레스틴 땅과 성읍이 황폐해졌던 사실을 가리키며, 나아가서는 본장 전체의 문맥상 메시야의 도래가 있기 전 혹은 메시야를 영접하기 이전의 상태를 나타낸다.
[사 61:5]
외인은 서서 너희 양떼를 칠 것이요 이방 사람은 너희 농부와 포도원지기가 될 것이나...."
이는 새로이 회복될 이스라엘이 이방 가운데서 제사장 나라로서(추 19:6) 우뚝서게 되며 이방인들로부터 물적 조력을 받을 것을가리킨다고 해석되기도 하나,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더 나을 것 같다. 즉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된 이방인들 가운데서, 마치 아론의 후손이 이스라엘 중에서 감당했던 것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방인들 중에서도 제사장과 레위인을 택하리라고 하신 말씀이나 특히 이방인과 유대인 간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질 복음 시대의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이는 문자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사도 바울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겠다 :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은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 61:6]
오직 너희는 여호와의 제사장이라 일컬음을 얻을 것이라 사람들라 할 것이며 너희가 열방의 재물을 먹으며 그들의 영광을 얻어 자랑할 것이며...."
이는 새로이 회복될 이스라엘이 이방 가운데서 제사장 나라로서 우뚝서게 되며 이방인들로부터 물적 조력을 받을 것을가리킨다고 해석되기도 하나,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해석이 더 나을 것 같다. 즉 이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편입된 이방인들 가운데서, 마치 아론의 후손이 이스라엘 중에서 감당했던 것과 같은 위치에 서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나 이방인들 중에서도 제사장과 레위인을 택하리라고 하신 말씀이나 특히 이방인과 유대인 간의 벽이 완전히 허물어질 복음 시대의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이는 문자적 의미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이에 대한 적절한 해답을 사도 바울의 언급에서 찾을 수 있겠다 : "저희가 기뻐서 하였거니와 또한 저희는 그들에게 빚진 자니 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은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사 61:7]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 바벨론에서 당한 고통에 비교해볼 때 메시야 왕국의 도래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은 더욱더 엄청나게 크고 값진 것이 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당한 고통과 메시야 사역으로 인한 축복을 단순히 비교한다는 의미보다는 메시야의 구원 사역으로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이 누릴 축복이
그 무엇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1차적으로는 포로지의 이스라엘에게 큰 위로를 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 여기 '능욕'에 해당하는 '켈리마'의 문자적인 뜻은 '혼돈', '혼란'이지만 바로 앞 구절과 동의적 평행을 이룸을 고려할 때 '수치', '슬픔' 등으로 번역함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분깃'도 메시야의 구속 사역으로 얻게 될 구원의 축복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 한편 원문에 보면 앞 구절과는 달리 본절의 주어는 2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뀌어 있는데, 이것은 본서 저자가 자주 사용하는 화법의 일종이므로 큰 의미없이 동일한 주체를 의도하고 있는 화법으로 보면 되겠다.
[사 61:8]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여 성실히 그들에게 갚아 주고 그들과 영영한 언약을 세울 것이라..."
대저 나 여호와는 공의를 사랑하며 - '대저'는 '키'로서 앞절에 진술된 바벨론 포로 생활로고통받은 자기 백성에게 하나님이 배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사실의 이유를 밝히는 접속사이다. 하나님이 그같이 하실 이유는 그가 공의를 사랑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방의 손을 빌어 그의 백성을 심판하신 것도 공의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바벨론의 교만과 불의의 강탈에 대한 분노로 나타난다. 불의의 강탈을 미워하며(세네 가젤 베올라) - 본문에 대한 번역은 구구하지만 크게 둘로 나눌 수 있는데, 견해가 이처럼 둘로 나뉘는 것은 '베올라'의 '베'를 그대로 두고번역하느냐 아니면 '베'를 빼고 대신 접속사 '와우'를 삽입하여 번역하느냐에 따라 좌우된다.
먼저 후자의 경우를 따르면 '나는 강탈과 범죄를 미워한다'가 된다(시리아역, 그러나 이 번역은 받아들일 수없다. 왜냐하면 본 번역의 경우 필요 이상의 원문 수정을 가했기 때문이다. 반면에 전자의 경우를 따르면 '나는 번죄에 수반되는 강탈(혹은 약탈)을 미워한다'가 된다.
이는 바벨론이 유다 백성을 압제하고 강탈하는 등 필요 이상으로, 월권 행사를 도모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은 그 영적 우매 때문에 하나님의 징벌을 이방이라는 수단을 통해 받았다. 그러나 수단으로사용된 이방 세력은 본연의 임무인 징벌의 집행 외에 과도한 불의를 저질렀다. 바로 이 사실은 공의로운 하나님의 의해 체크되었던 것이다.
[사 61:9]
그 자손을 열방 중에, 그 후손을 만민 중에 알리리니 무릇 이를 보는 자가 그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알리리니 - '구별되게 하리니' 혹은 '명예롭게 하리니'로도 번역이 가능하다. 시 67:2;76:1;79:10등의 용례들이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 인정하리라 -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참자녀들이 세상나라로부터 하나님의 축복을 방은 자들임을 완전하게 인정받는 때는 구원 역사의종말, 곧 재림의 때이다.
그러나 그때가 이르기 전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은 여호와께 복 받은 자손이라는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 인정을 받을 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 올려진다.인정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사 61:10]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의의 겉옷 - '겉옷'은 입은 옷 위에 걸쳐 몸 전체를 가리다시피하는 느슨한 망토 따위를 가리킨다. 이 땅토는 추위 또는 외부로부터의 침해 따위로부터 몸을 보하하는 구실을 한다. 여기서 이 망토가 의미하는 바는 '의'이다. 이 '의'는 이스라엘의 자격, 능력과 관계없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덧입히신 그 무엇으로 메시야의 구원 사역의 결과로 야기된 것이다.
원래 이스라엘은 스스로 영적 파멸로부터 구원하거나 사단의 집요한 공격을 막아낼 수 없었다. 이스라엘 역사가 그 사실을 반영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의 아들 메시야를 보내시고 그로 구속 사역을 이루게 하시어서 그 사역을 근거로 그들을 보호하는 영적인 옷을 입히셨다.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였다. 따라서 영적 이스라엘, 교회는 그분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 61:11]
땅이 싹을 내며 동산이 거기 뿌린 것을 움돋게 함 같이 주 여호와께서 의와 찬송을 열방 앞에 발생하게 하시리라...."
땅이 싹을 내며 - 본서 저자가 여러 차례 사용한 이미지로, 의미하는 바는 적시에 내린 단비로 촉촉해진 땅에서 새싹이 움트듯이, 메시야가 오시면 진리와 의가 돋아 자라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메시야를 보내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그의 택한 백성을 그곳으로 모으시는 목적은 그의 백성들로부터 찬양을 받기 위함이다. 본절에서의 찬양은 교회가 세상과는 다른 구별적, 거룩한 모습을 나타냄으로써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칭송을 듣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