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과 엘저 히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에 묻혀 있는 이 사실을 모를 것이다.
하버드 법학대학원 출신의 알저 히스는 변호사를 하다가 공무원이 된 엘리트로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총애를 받은 1940년대 美 국무성의 실세 고위 관료였다.
그는 국무성에서 동아시아 업무를 담당하였고,
그래서 독립하려고 몸부림쳤던 하바드 출신 선배인 이승만과 필연적 악연을 맺게 되었다.
나중에 그는 UN 창립 총회 임시 사무총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알저 히스가 한국 역사에 직 간접적으로 우리의 독립 과정을 철저히 방해하게 된 것은
그가 미 국무부의 동아시아 담당이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은 그는 공산주의자 이자 소련의 고급 정보원이었기 때문이다.
1940년대부터 끓임 없이 이승만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승인을 수 차 청원했지만
국무성은 임정 승인을 들어주지 않았으며, 그 중심에는 엘저 히스의 방해 공작이 있었다.
한때 이승만은 미국 망명 시절 엘저 히스와 어렵게 면담을 가졌었다.
그는 미국이 임정을 승인하고 무기 대여법을 임시정부에도 적용하여 군사 원조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만약 미국이 임정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소련이 한반도를 선점하여 한반도가 공산화될 수 있다고
역설하였다.
전후 한국에서 공산주의자와 민족주의자 간의 내란 가능성도 지적하였다.
일본 제국이 패망하기 수년 전에 이미 이러한 예측을 한 이승만의 선견지명이 놀라울 뿐이다
이미 이승만은 미-일간의 태평양 전쟁의 도화선이 된 1941.12.7일 발발한 하와이 진주만 기습
사건을 "일본 제국의 야망" (Japan Inside Out)이라는 예견서로 1941년 6월, 6개월 前에 책으로
발간하여 美 국무성은 물론 영국 국방성 조차도 이승만의 저술서를 구매하느라 법석을 떨었다.
"도대체 이승만이란 사람은 누구인가......?"소설 "大地"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펄 벅 여사는
이승만의 예견서를 읽어보고 "이 책이야 말로 금세기의 놀라운 예견서 이다...."라고 놀라움을 표했다.
알저 히스가 이승만을 미워하면서도 일편 두려워했던 것은 이승만의 예리한 예견력과 국제적 분석 감각,
그의 화려한 경력과 노련미에 대한 질시와 나라도 없는 조선에 대한 천시도 한 몫 했다.
알저 히스는 특히 이승만이 당시 미국의 동맹국인 소련을 비난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며 화를 냈다.
알저 히스는 임정이 이승만과 김구 등 반소(反蘇) 민족주의 계열에 의해 주도되고 있음을 확인하고
해방 후 소련과 친소 인사들의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1945년 2월에 열린 얄타 회담 이후 이승만과 미 국무성의 관계는 최악이 되었다.
얄타 회담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소련의 대 일본 참전을 요청함으로써, 소련이 한반도로
진출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고, 미 소 영 중 4개국에 의한 한국의 신탁 통치가 논의되었다.
(얄타 회담에 엘저 히스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수행 비서로 따라갔는데, 엘저 히스가 회담 전에
핵심 서류를 대통령에게 내놓지 않았고, 그 결과 토의가 소련에 유리하게 끌려갔다고 한다.)
1948년 마침내 엘저 히스는 소련의 간첩 혐의로 기소되었다.
엘저 히스는 자신의 혐의를 끝내 부인했고 증거 불충분으로 간첩 죄로 처벌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우익 정치인이었던 리처드 닉슨(후일 대통령)이 끈질기게 파고들어 위증죄로 5년 간 수감 생활을
하게 되었다. 히스는 형기를 마친 후에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였다.
자신이 매카시 선풍의 희생자라고 주장했고 1960-80년대 미국 여론은 그에게 동정적이었다.
하지만 1990년대에 공산권이 무너지고 코민테른 문서가 공개되면서 그가 소련의 첩자였음이 드러났다.
미 국무성에는 엘저 히스 이외에도 57명의 좌익 인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 서독 통일 과정 중에도 상당수의 동독 간첩들이 서독 정부의 요소요소에 잠복하여 암약 중 예상하지
못하게 통일이 급격하게 이루어 짐으로 암약 간첩들의 전모가 들어 나게 되었다.
특히 통일의 아버지로 불리는 "동방 정책"의 창시자인 빌리 브란트 총리의 비서 실장이 동독의 고급 간첩
이었다는 경악할 진실이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 내에도 당시의 독일, 미국같이 정계, 국회, 예술계, 문화계 특히 김대중과 노무현 정부
시절 각료 중에는 상당수의 알저 히스가 포진하고 있었으며, 더욱 위험한 것은 이제는 당당히 노출시키고
연대를 이루어 행동을 하고, 심지어 또 한 번의 정권을 수탈하려 한다는 점이다.
현재 우리 대한민국 내에도 당시의 독일, 미국같이 정계, 국회, 예술계, 문화계
특히 김대중과 노무현 문재인 정부 시절 각료 중에는 상당수의 알저 히스가 포진하고 있었으며
더욱 위험한 것은 이제는 당당히 노출시키고 연대를 이루어 행동을 하고 심지어 또 한 번의 정권을 수탈하려
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돌아볼 때 지금 윤 정부 속에도 얼마나 많은 간첩이 활동하고 있는지 모르며,
더구나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3대 정권이 집권한 결과가 오늘의 대한민국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정부 수립 이후 처음 생긴 국회에 13명의 국회의원이 국회 프락치 사건으로 연루되었다가 형을 받던 중
6.25 남침 이후 탈출하여 그 중 12명이 월북한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독일의 예에서, 월남 패망의 역사에서 우리는 과거 역사로 돌릴 일이 아니라 배워야 할 사실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끝>
<받은 글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