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금) - 8(일) 2박3일동안 부산에 다녀왔습니다. 간만에 좋은 음식먹고 재미있게 놀다가 왔습니다. 깉이 여행 기분 느껴 보시면 좋겠습니다.
1976년도에 입학한 치대생들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어떻게 만나다보니 mighty라는 카드모임으로 발전하여 "마돌이"라고 불리웠습니다.(그 당시에는 마이티가 꽤 붐을 이루고 있었으며, 75학번 마돌이도 유명했음) 총 7명이었는데, 그 중 6명은 재수생 출신이고 나만이 인생공부가 적은 까까머리였지요(참고삼아 말하면 그당시 용산고등학교에서는 머리를 빡빡 깍지 않으면 원서를 써주지 않았습니다).. 예과 1학년 내내 하는 일이 1교시 출석후 정원(마이티는 세명, 네명 다섯명이 할 수가 있는데, 다섯명이 하는 게임이 제일 합리적이고 재미있음. 세명이 하면 삼마, 네명이 하면 사마, 다섯명이 하면 오마라고 함)이 되면 열심히 공부하는 착한 친구들에게 대출을 부탁해 놓고 연대 뒷산의 무덤가에서 하루종일 도시락 까먹으면서 마이티 치는 일이 일년중 10달은 되었을 겁니다. 끝나면 돈을 딴 친구가 저녁을 짬뽕과 더불에 소주 한잔으로 내고... 마돌이끼리 종강파티도하고, 미팅도 하고.. 시험공부도 같이 하고.. 너무 몰려 다니다보니 다른 친구들 눈밖에 나기도 했었지요.. 잊지못할 에피소드 중의 하나는 그당시 히트했던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서 병태가 대학교 교정에서 담배 피우다 어떤 교수에게 뺨을 맞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모델이었던 신학대 학장이던 문상희 교수에게 마이티 치다가 걸려서(우리는 다 도망갔는데 구경하던 친구가 붙잡혀서 협박에 못이겨 우리 신상을 부는 바람에 할수없이 자수할수 밖에 없었음) 온갖 협박(한달간 정학 등등)에 시달리다 뺨을 세대인가 다섯대인가씩 맞고(그당시 나는 축구를 하다가 머리를 다쳐서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어서 한대인가 두대인가만 맞은 것 같음) 반성문 쓴 일입니다.
그렇게 놀기만 하다보니 예과 2학년에 5명이 못 올라가고, 그러다보니 한 친구는 두번 낙제해서 퇴학당하고(지금은 부산의대를 다시 나와 의사가 되어 있음) 한 친구는 데모를 주동하다가 감방에가서 3년 있다가 나와서 14회로 간신히 졸업한 후에 미국에서 잠깐 공부하고 들어와 서울에서 개업하고 있고, 1명은 중간에 위생병(수통 성형외과에서 근무)으로 군대 갔다와서 부산에서 개업하다가 뇌졸증으로 죽다살아났고(지금은 교회에 빠져서 얼굴을 볼수없음), 2명은 그럭저럭 1년늦게 졸업해서 부산에 개업해서 잘살고 잘먹고 있고, 나를 포함한 또다른 두명은 서울에서(유독 서울 출신들만 낙제를 안했음) 개업해서 그럭저럭 잘먹고 잘살고 있고..
본과에 올라가고 수련 마치고 군대 갔다올 떄까지는 서로 생활패턴이 달라서인지 서로 연락을 안하고 지내오다가 20여년전부터 어떻게 연락이 된 후로는 매년 두세번 정도 서울과 부산을 오가면서 마이티 치느라 밤을 새고 있습니다. 아직도 마이티치면서 닭 풀레이다 아니다 니가 옳으니 내가 옳으니.. 얼마나 시끄러운지 아침이 되면 목이 다 쉴 정도입니다.
첫댓글 바다냄새 기대하며 단숨에 읽어 내려왔습니다^^
그 시절에 '마이티'가 정말 유행했었지. '문상희 교수'는 나도 생각난다. 그나저나 그 틈에서 낙제도 안하고 올라갔으니 정말 대단한 데. ㅎㅎㅎ
바다 얘기는 별로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은데..
부산이라는 말에서 벌써 바다를 느꼈답니다^^책 출판을 권유받으실 정도로 글 솜씨 인정받으셨는데요?^^ 겨울,재밌는 얘기 들으려 화롯가에 모여앉은 풍경 상상하시면서..2편!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