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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5
마지막 여정, 로마 방문을 앞두고 돌이켜 보니 이번 여행은 뜻밖에 받은 선물로 38일 간의 꿈 같은 시간-유럽 낮 시간이 한국의 밤에 가까워서인가-이다. 하지만 유럽 관광이 꿈이라면 귀국해서 한국 생활이 꿈이 아닌 까닭을 찾아 봐야 한다. 그런데 그 근거를 못 찾게 되면 유럽에서의 꿈을 깨지 않은 채 한국에서 계속 이어갈 수 있으니 구태여 애쓸 필요가 있을까.
피렌체의 아침, 날이 밝아 창문을 여니 마침 밀라노에서 가끔 보이던 신형 트램이 지나가며 인사한다. 어렸을 때-1950년대 서울 거리에서 듣던 소리이다. 종로 6가-양산골- 210번지 8호에 살았는데 시내와 청량리로 가는 전차 정거장은 동대문 바로 옆에 있었다. 직류 전기를 공급하는 경전은 그 부근에 있었고...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때인가 할머니랑 전차 타고 효자동까지 병원을 다니던 생각이 난다. 나중에 미국에서 수입한 전차가 새로운 디자인에 좀더 크고 승차감이 좋아 기다리곤 했다. 자동차 위주로 교통 정책이 바뀌면서 부적합 판정을 받고 사라진 그 뒷모습들이 쓸쓸하다. 이곳에서는 개량 발전되어 시내 구석구석을 누비며 시민의 사랑을 받으며 여태껏 생활을 같이 하는데...
날씨는 쾌청, 09:50 피사로 출발, 사탑이 있는 지역에 들어서니 사람들이 가득하다. 그야말로 인산인해이다.
평범했으면 유명해질 수 있었을까. 삐딱해서 관광객이 모여드는 명소가 됐으니 그당시 건축 감독이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주변 건물들이 바로 섰으니 사탑斜塔의 기울기가 완연하다. 모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단연 주연主演은 피사의 사탑, 여기저기서 기운 탑을 두 손으로 떠받치는 포즈를 취하는 모습들이 재밌다.
피사에서 햄버거로 점심을 간단히 먹고 호텔에 잠깐 들러서 저녁 찬 바람을 피할 옷가지를 챙기고 피렌체 대성당 관광,
오후, 대성당 주변을 다시 둘러본 후 버스로 미켈란젤로 광장을 가는데 빙빙 돌아가는 노선이어서 오래 걸렸다. 1차선 일방통행로-유럽은 도로 확장보다는 구도로를 일방통행로로 지정하여 교통량을 소화함-에 승용차들이 한쪽 방향으로 일렬 주차되어 있는, 1차선 도로를 여러 번 통과하여 목적지에 닿았다. 광장이 그리 높은 지대는 아니어서 시내 정경이 가까이 다가왔다. 중앙에는 다비드 청동상이 높이 서서 피렌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는데 우리도 그 시선을 따라 피렌체 야경을 감상한 후 돌아오니 21:00가 지남.
11월3일 일요일
드디어 로마 입성을 앞두고 있다. 피렌체에서 직접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않고 시간이 좀 걸려도 영화 Gladiator의 배경이 된 언덕과 포르타 산타 마리아 요새-성 마을에 10여 명이 거주 중이라고 함-를 본 후 고속도로에 진입-정체가 1시간 이상-했는데 표가 안 나와 진입 위치 인증으로 톨게이트 사진을 찍고 로마를 향해 달려 가는데 어떻게 통행료 문제를 해결해야 하나 걱정을 많이 했으나 들어선 로마 톨게이트가 무인이 아니라, 얼굴 표정을 서로 보며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앉아 있다는 자체가 반가웠다. 나이가 어려 보였는데 그렇게 고맙고 예쁠 수가 없었다. 진입한 게이트 사진을 보여주었더니 차량 번호판을 확인하고 들어가더니 뭔가 조치를 취하니 곧 문제는 깨끗이 해결되었으니 어둡고 막연한 예측과 맞이한 현실의 차이가 주는 기쁨이 컸다. 닫혔던 문이 활짝 열린 듯하다.
19:00, 역 부근 iQ Hotel 체크인함으로써 사흘 간의 로마 여정이 시작되었다. 기대된다. 로마 관광은, 지금까지와는 달리 둘째 날은 로마역 부근에서 출발하는 관광버스-패키지-를 이용하는 만큼 안전에 유의하면서 잘 따라가야 한다.
11월 4일 월요일 로마의 아침, 간단히 햇반 미역국 밥을 만들어 먹고 샤워한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시계를 보니 09:19이다. 로마가 기다린다. 어떤 모습일까. 어제는 어두워서 더 그랬겠지만 거리가 칙칙하고 밀라노에 비해 도로망이 무질서하다고 느꼈는데...
한열이, 사흘 간 쓸 수 있는 교통카드를 사 가지고 오니 10:30이다. 로마는 다른 도시와 달리 전차 노선이 몇 개만 남고 폐쇄되는 과정임.
먼저 걸어서 갈 수 있는 교회당(?)에 갔다. 입장료는 받지 않는데 보안 검색-소지품 검사를 해야 했다. 내부에 들어가 보니 엄숙한 분위기이면서도 화려했다. 한쪽 방에 들어갔더니 예복 입은 무리가 줄지어 들어오더니 나이든 사제가 미사를 주재한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에 맞취 성가를 부르는 소리도 났다. 짧은 기도로 에배에 참여한 후 나왔다.
트레비 분수에 감동함. 내가 보기엔 거대한 암반을 깎아 건물 기초를 만들고 앞쪽엔 연못과 조각 분수를 만든 것이다. 우리가 가니 투명 울타리를 쳐 놓고 공사 중이어서 물은 구경도 못했지만 물에 가렸던 내부 구조를 볼 수 있는 드문 기회였으니 행운이라면 행운이다. 분수의 앞 부분만 돌을 쌓은 흔적이 보이고 나머지 바닥과 조각 분수와 건물의 기초는 바위 하나로 이루어졌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로마 유적지 곳곳에서 세척, 보수, 복원 등 공사 중인 곳이 많았다. 내년, 2025이 희년이어서 전세계의 카토릭 신자들이 로마로 모이는데 그 준비로... 가이드 말로는 원래 희년이 100년이었는데 한 세대마다 기회를 주자는 의미로 25년으로 변경했고 4대 성문을 지나면 죄를 용서받는다고 함.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사진 찍었는데 줄이 길어 한참 기다려야했다. 나중에 보면 사진에 나온 얼굴 표정이 진실을 말해 주리라.
오후엔 버스로 두 정거장인 Mercati di Traiano Museo dei Fori Imperiali 박물관을 갔다. 박물관 안팎에는 로마 시대 유적으로 가득했다. 인물, 건축 장식을 위한 대리석 조각이 참으로 정교했다. 머리와 팔다리가 없었지만 로마 군인의 치마(?) 끝에 죽 단 수술까지 섬세하게 표현했다. 지나간 과거가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이야기하는 곳에서 관광객들이 귀 기울인다. 해설 중에 market이라는 단어가 눈에 띈 3층 건물은 벽 양쪽은 얇고 붉은 벽돌을 쌓고 가운데는 벽돌 조각이나 잔돌을 세멘트로 이겨 넣고 천장은 돔 방식으로 상층부의 하중을 감당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층계는 가파른 편이었는데 석재가 아닌 mortar모르타르였고 곡선을 이룬 복도를 같은 넓이의 큰 방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가게 주인이 없는 텅 빈 방들이 이제는 상상력으로 가득 채워 보라며 너무나 늦게 방문한 나에게 손짓한다. 밖으로 나가 보니 건물이 다 무너져 잔해가 흩어졌는데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으니. 언제 제 조각을 찾아 복원될 수 있을까. AI의 역할이 기대된다.
11월 5일 화요일
아침 일찍 버스로 관광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집사람 걸음수를 줄이기 위해 한 번 갈아 탔다. 여유 있게 도착하여 맨 앞자리를 잡았다. 탑승객은 모두 한국인으로 20여 명이어서 자리에 여유가 있었는데 신혼 부부가 많은 것 같았다
07:00 폼페이로 출발, 나폴리를 멀리 보며 지나자 곧 쏘렌토가 나폴리를 마주하고 있었다. 전망대에 내려 쏘렌토 앞바다를 감상했다. 윤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은데 날씨가 좋아 잔잔한 바다는 볼거리를 제공했다. 베스비오산-지금도 활화산-은 깜빠니아 지방이란다.
카푸치노에 크로에상
먹고 08:40 미니 버스를 타고 포지타노로 출발.
폼페이 10:00시 도착, 해설 들으며 관광하니 그동안 말로만 듣던 폼페이를 깊이 알게 되었다.
1890년 영국 사업가가 베스비오산에 푸니쿨라 설치했으나 손님 없어 홍보용으로 작곡을 의뢰한 곡이 cm song '푸니쿨라'인데 인기를 얻음. '얌마 얌마'는 '올라가자 올라가자'의 남부 사투리
폼페이-로마 유적이 르네상스 시대에 많이 파괴되었는데 폼페이는 화산재-79년 화산 폭발, 전조 증상 16년 전에 진도 7 지진 발생-에 묻혀 오히려 잘 보존됨. 그러나 80%의 생존자 중 도굴로 돈 버는 사람들이 생김. 그 무리가 1000년 동안 정보 독점, 귀중품을 다 도굴해서 뒤늦게 시작한 체계적인 작업-70%발굴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미미함. 해설 관광 후 식당 도착하니 11:50임.
베스비오 식당-50년됨, 주변에 다른 식당은 생기면 곧 망한다고 함, 조폭(자릿세 받고 관여, 소매치기가 줄어드는 효과는 있음)이 베스비오 식당 경영한다는 설이 있다는데 파스타, 피자, 새우 오징어 튀김을 먹고 12:40 출발, 날씨가 좋음
경치도 사진도 날씨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 비구름을 몰고 다니는 분들도 있다는데 우리는 날씨 운이 좋음.
나폴리 바다에서 쏘렌토 앞 바다(마주 보는 바다)-지나 쏘렌토 전망대 13:10 도착
포지타노-마을 전체가 일방통행 지그재그 도로- 미니버스 타기 아말피(헤라크레스가 애인을 묻은 곳) 코스트 2차대전상륙한 군인들이 아름다움발견-포지타노 절벽 마을 포함- 나중에 여생을 보내려고 찾아옴 경치 좋은 곳으로 입소문남. 14:00경 2시간 자유시간, 가이드와 한열이가 한참 대화, 16:30 포지타노에서 로마로 출발. 버스 안에서 낙조의 새로운 빛을 감상했다. 구비구비 도로가 해안을 접할 때마다 노을빛의 미묘한 변화에 감동하다.
21:00쯤 로마 도착
내일은 콜로세움이 예약-내부 관람-됨.
17:36 ROMA행 고속도로 진입, 20:30 도착 예정.
로마역-건물이 아주 현대적, 주위의 전통적인 건물과는 전혀 다른 파격으로 현대는 로마 시대가 아니라고 외치는 듯함-에 들어가 좀 앉았다가 역 바로 앞에서 64번 버스 타고 호텔에 들어오니 21:25.
11월 6일 수요일
샤워하고 짐 정리하니 08:00
집사람이 다리가 안 좋아 넘어지는 걸 예방하기 위해 지팡이를 안 짚은 왼손을 잡고 다님.
유럽 전체를 지배한 로마제국의 수도. 제국은 멸망했지만 유적도 폐허도 그 규모가 엄청나다. 사진으로만 보던 콜로세움에 들어가 보니 놀라울 뿐이었다. 둥근 경기장 바닥은 거의 무너져 떠받치던 지하의 벽체만 남았고 관중석은 좌석이 하얀 대리석이었던가, 100여 명 앉을 만큼만 복원되었을 뿐 나머지는 다 얇은 붉은 벽돌을 쌓아 경사면을 이룬 채 폐허로 남아 있었다. 풍화작용도 있었겠지만 하얀 대리석은 귀하니 건축 자재로 다 뜯어가 로마 시내 여기저기에 어딘가 숨어 있거나 작은 조각 작품으로 변신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콜로세움을 보고 나오니 12:00.
81번 바티칸 시국-베드로 성당행 버스를 한참 기다렸으나 안 와서 117번 작고 귀여운 버스 타고 64번으로 갈아탐. 자리가 있어 앉음.
바티칸 시국 입국, 보안 검문 거쳐 베드로 성당에 들어갔는데 구석구석이 그림, 조각, 공예 등의 예술품이었다. 내면보다 외면을 중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종교적인 정성이 축적된 공간 같기도 하고... 유럽인들은 백지 상태의 여백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듯하다. 일반 건물의 창틀 벽체까지도 뭔가 문양으로 꾸미고 있다든지 도시 전체-건물 벽, 교각, 울타리, 지하철 등-를 캔버스로 삼는 '그래프티'가 그런 심리를 설명하는 게 아닐까. 내가 볼 때는 낙서로 미관상 안 좋은데... 점심으로 피자를 먹고 호텔로 가는 버스 기다리며 시간을 보니 15:40,
170번 버스-진실의 입 다녀오던 길에 할머니 한 분이 170번 버스 안에서 쓰러짐-를 타고 호텔로 돌아오니 16:50.
공항 가는 택시 예약 시간은 18:00, 로마 공항에서 22:00 발 대한항공을 탑승할 예정이니 이제 로마에 머물 시간은 5시간여 남아 있다.
17:30 호텔에서 공항으로 출발.
21:20 비행기 탑승 22:03 이륙.
11월 7일 16:40, 서울 인천 공항 착륙, 38일 간의 유럽 여행을 마감하고 관광객에서 생활인으로 돌아왔다. 피상적이었던 유럽 여행이, 앞으로 이 글의 퇴고 과정을 통해서 오래된 장의 깊은 맛을 찾아 내 삶에 두고두고 자양분이 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내 앞에 놓인 현실을 더욱 깊이 보며 한 편 글을 씀으로써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한다.
퇴촌으로 고구마 나머지하고 생강 캐러 가야 함.
피아노 치기, 작곡, 습작에 힘써야,
서울 인천 공항에서 짐 찾으니 17:10
면세점 들름.
18:00 공항 버스 탑승 출발,
관광은 끝나지 않은 듯, 인천과 서울의 야경이 새롭다.
유럽은 고전과 유적 보존이라는 테두리에 갇혀 건물들이 5,6층 건물 위주인데 서울은 옆으로 위로 마음껏 뻗어나간다는 느낌. 도로폭도 넓은 편이다. 유럽의 강에 비해 한강은 강폭이 넓어 교량도 길고 규모가 큼을 느낀다. 라인강이나 스위스의 호수처럼 유람선과 화물선이 왕래하는 역동적인 모습을 그리며 한가하게 흐르는 한강을 바라본다. 도심 공항 터미널에서 한찬이가 기다리고 있다.
20:00, 도심 항공 터미널 도착. 한찬이 성준, 수호도 함께 옴.
첫댓글 와~ 38일간의 튜어~
새로운 인생의 시작을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밀라노 피렌체, 로마, 우린 한 사흘에 휙 훑고 지나왔었는데, 대단하십니다.
즐거운 여행 계속 하시고 다음 여행지에서의 행복한 꿈을 기대합니다.
KBS1FM 방송 신윤주의 가정 음악 금요일 푸로에 나와 오페라를 소개하는 의사이며 음악 전문가 유00 (이름이 금방 떠오르지 않음)
이 말 하는 로마밎 이태리 유명한 곳을 소개하는 것을 들으면 곧 다녀 온듯 자세하고 음악에 연결 시켜 관광을 합니다
그럼 앉아서 이태리 여행을 한 답니다(유종인?)
Evergreen님 풋볼님, 방문 감사!
욕심은 새로운 느낌으로 소설 한 편 쓰고 싶습니다. 수필 소설 시조가 융합되어 재미를 느낄 수 있으면 더욱 좋겠습니다. 소설은 이야기이고 삶도 이야기이니 약간의 허구로 맛을 내면 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