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치 ; 구좌읍 하도리 1544번지(문주란로33-1)
시대 ; 일제강점기
유형 ; 위인선현유적(생가 터)
정문봉(鄭文奉. 1913∼?) 지사는 하도리에서 태어나 일본으로 건너가 철공소 주물공으로 일하였다. 1934년 11월 일본공산당 간사이(關西) 지방위원회는 당 재건을 위하여 정암우(鄭岩右), 김치용(金致鏞), 홍원표(洪元杓) 등을 포섭하여 이들에게 지도적 지위를 부여하여 오사카에 있는 20만 조선인의 조직을 하도록 하였다. 1934년 12월 노농구원회(勞農救援會) 오사카지부 승산반(勝山班) 책임자가 되었다. 1935년 1월에는 위 3인과 이시하라 모(石原某) 등 4인은 간사이 지방협의회 재건 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런 가운데 홍원표(귀덕), 김치용(전남)은 잔존 조직을 결집시켜 공산당의 외곽단체인 전협 재건을 위하여 활동하였다. 또 1935년 1월 중순 친목단체 용진회(勇進會)를 좌익화하려고 회원 현봉천(玄奉天) 외 4명을 입당시켜 이들이 일하고 있는 익정(益井)철공소 및 조선인의 사업장에서 취로하고 있는 공장에서 쟁의를 일으키도록 하였다. 정 지사는 동년 2월 중순에는 금속책임자 홍원표의 주도로 김행돈(金行敦)과 함께 東지구를 책임지도하였다. 또 동년 4월에는 양동진(梁東珍), 김행돈 등을 포섭하였고, 5월 중순에는 이영복(李英福), 김만선(金萬善), 김경숙(金京淑) 등을, 6월에는 현상호(玄尙好)를 포섭하였다. 1935년 5월 1일에는 행동대를 조직하여 가두시위를 하였다. 〈노동자 농민들은 전협의 깃발 아래 단결하라〉등의 전단과 노동절의 유래와 뜻을 적은 격문을 살포하였다.
당국에서는 이들의 조직확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1935년 3월 1일 정암우를, 동년 12월에는 홍원표, 김행돈을, 1936년 1월에는 정문봉, 김치용 외 17인을 검거하였다. 모두 오사카지방재판소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언도를 받았다. 정문봉 지사는 동년 7월 17일에 징역 2년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렀다.(제주항일인사실기) 미서훈
《작성 21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