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테티크 비창 소나타*
노혜봉
뇌성벽력!
__넌 귀머거리가 될 거야 틀림없이,
스멀스멀 불안했던 예감은 적중
높은 음역부터 들리지 않았다 긴가민가
쾅!
……먹먹한 귀를 후려친다
멀리서 여리게 귓전을 울리는 소리
비통한 일! 가슴을 쥐여 뜯다 포효하는 파도
운명의 목덜미를 움켜 쥔
전율! 비참한, 귀벙어리의 고통
캄캄절벽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다
애절비절 바이올린 소리
몽돌들 물살에 내밀하게 젓는 첼로 소리
바닷가 불안스레 방황하는 바람소리
붉은 솔방울끼리 부딪히는 샛된 소리
울리지 않는다 캄캄한 귀 내이도 벽에 갇혔다
끝장, 나락으로 떨어졌다 바닥으로 팽개쳐졌다
장엄하고 두려운 분노와 절망, 고독,
__千金 같은 내 귀에 형벌과 파멸을 내릴 수는 있지만,
베토벤! 결단코 네 음악을 절멸, 패배시킬 수는 없지.
소리를 들으려 질풍노도와 같이 피아노를 강타한다
온몸 솜털 구멍 하나 하나까지 죄다
열린 귀로 백만 가지 소리를 갈음할 수는 없나
격렬한 폭풍우가 몰아치듯 건반을 때린다
빠르고 생기있게, 파격의 1악장이 끝났다
꽝! ……긴장감
어둡고 긴 긴 밤 내내,
외롭게 타던 마음불꽃들이 잦아들었다
비장한 정적이 몰고 온 푸른 고요
아름답고 희망적인 선율을 품은 악보
손가락 끝에서 재꽃 음표들이 날개를 턴다
잔잔한 윤슬로 스치듯 애무하는 손가락 나비춤
아다지오 칸타빌레, 고아하고 기품있는 2악장 탄생
호로비츠의 전설적 피아노 연주, 비정한 여운
퍼테티크 비창!.
*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비창」은 그가 28살 때 작곡하면서 「퍼테티크」 (비창)란 제목을 프랑스어로 붙였다. 이곡은 그의 후원자였던 리히노프스키 공작에게 헌정했다.
베토벤은 연주 여행을 하고 빈으로 돌아온 후에 발진티푸스를 앓았는데 그 후유증으로 청각장애가 온 것 같다는 설이 있다.
「비창」 은 고전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준 심미적인 소나타다.
노혜봉 약력
1990년도 월간『문학정신』」「비창 제 1악장」외 신인상으로 등단
시집『색채 예보, 창문엔 연보라 빛』외 5권
시선집 『소리가 잠든 꽃물』
<시인들이 뽑는 시인상> <경기도 문학상 대상>외 다수 수상,
<시터> 동인